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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 운영자 201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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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1:6~14)

 

어떤 사람이 병원에 입원을 해 있습니다. 장기간 입원을 하다 보니 친구들의 발걸음도 뜸하고 외롭게 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때 자리를 지키던 아내가 쪽지를 하나 건냅니다.

여보. 힘내세요. 저는 영원한 당신의 펜이에요모두가 나를 떠난 것처럼 느껴질 때, 마음이 한 없이 힘들고 외로울 때 건네는 마음을 담은 한마디. 저는 당신의 영원한 펜이에요. 이 말이 병투병을 하는 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요. 수백만원 수천만원으로도 바꿀 수 없는 큰 힘과 격려의 선물이지요.. 제가 투병생활을 할 때 제 아내가 저에게 준 선물이었습니다.

<마음의 주고 받음>

그렇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주고받음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만일 마음의 주고받음이 결여되어 있다면 남남과도 같을 겁니다. 예를 들어 한 지붕 밑에 살아도 가장 가깝다고 하는 부부 관계나 부모 자식 관계라 할지라도 마음을 주고받지 못한다면 멀고 먼 사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의 주고받음이 없다면 그것은 종교생활에 불과하지 신앙이 아닙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의 사랑으로 하나님께 응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고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형식이나 모양도 중요합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 역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식을 가급적이면 아름답고 단정하게 꾸밀수록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우리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배의 순서마다 요소요소에 나의 진실한 마음이 담겨질 때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참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는 법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주일에 이어 예배에 관한 두 번째 메시지로 마음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은혜와 축복이 넘치는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잘못된 예배 생활을 꼬집고 있습니다.

말라기 시대를 살펴보면.. 당시는 구약 이스라엘의 마지막 시대입니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귀환하고 나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고 율법을 배우면서 조직을 다시 정비하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마음이 워낙 황폐해져 있다 보니, 어지간한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고 변화가 없습니다. 사실 은혜를 간직했다가 이 은혜를 잃어버리면 그것 회복하기가 얼마나 힘이드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이 왜 망하게 되었습니까? 정확한 이유는 바로 예배가 타락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이 예배의 타락을 다시 회복한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말라기 선지자도 나라를 되찾고 성전도 다시 짓고 백성들도 포로에서 귀한했지만 근본적으로 예배회복이 이뤄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예배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한마디로 예배의 실패자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에 실패하니까, 결국 그로 인해 도덕적인 부패와 사회적 혼란은 회복될 줄 모르고 다시 가중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라기는 마지막 선지자로써 목놓아 외칩니다. 그의 외침은 무엇입니까? 바로 여러분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비뚤어진 예배를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잠시 살피면서 오늘 우리의 예배생활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반성하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 거절당한 예배 : 마음이 빠져버린 예배

먼저 본문을 접해 보면 하나님의 강렬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6~14절에 9개절이 있는데,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는 표현이 조금씩 형태가 달라진 것까지 포함하면 무려 8번이나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6절에는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 ”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8, 9, 10, 11, 13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13()에서는 “ ...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고 14()에서는 “ ...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단호하신 모습으로 책망하고 지적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잘못된 예배 관행 :

하나님은 지금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백성들을 선도할 제사장들이 얼마나 잘못된 예배 관행에 빠져 있는지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습니다.

7절 보면 하나님의 제단에 더러운 떡을 드린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서 더러운 떡이란 더러운 짐승 제물을 가리킵니다. 22:19~22의 제시된 기준에 의하면 제물은 흠없는 숫컷이어야 합니다. 눈먼 것이나 상한 것 등 조그만 흠이 있어도 안됩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은 흠 투성이인 제물을 제단에 바쳤던 것입니다. 8절 보면 그 구체적인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 등을 드렸습니다. 이런 것들은 상품가치가 다된 것들입니다. 처리하여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께 가져온 것입니다. 기가 막힌 모습이 아닙니까?

그것 뿐 아닙니다. 그들은 철저히 예배를 왜곡시켰습니다.

11절 하반부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예배의 실패자였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이방민족을 불러 모으사 온전한 예배자가 되게 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도 그들은 뭐라고 말하느냐? 12절에 “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온전한 예배가 어디 있느냐? 그러며 예배를 왜곡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예배의 거룩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면 “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온전한 예배에 대한 어떤 기대도 바람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것을 번거럽게 생각하고는 코웃음 치며 대충 대충,,,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와.. 시간만 때우고 가자는 식인 것입니다. 주님은 단호하십니다..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런 왜곡된 제사 모습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상상해 봅니다.

 

예배실패의 원인 : 공경하는 마음이 없음

그들이 이런 예배를 드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꿰뚧어 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공경하는 가운데 예배를 드리는지, 아니면 그냥 건성으로 예배를 드리는지하나님은 딱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공경하는 마음이 빠져버린 예배는 실패한 예배입니다.

6절 보면,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식 관계, 주인과 종의 관계에 빗대서 말씀하십니다.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그런 인간관계들 속에서라도 당연히 공경해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이런 문제는 구약 이스라엘 가운데 고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시대에도 마찬가지엿습니다. 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나중에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15:7~8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음이 빠져버린 신앙과 예배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런 예배를 받으시겠습니까? 아니요.. 그런 예배는 받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묻습니다. 8.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총독에게 드려도 받을 수 없겠거든 하물며 전능자인 나에게 어찌 그러한 모습으로 나아오느냐? 이겁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실패 원인이 바로 이겁니다. 그들은 겉으로 볼 때 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형식적인 예배, 타성에 젖은 예배, 성의없는 예배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부 :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조차도 거부하신다는 것입니다. 9()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예배가 열납되지 않는데 그들을 받아 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지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임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호통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4. “짐승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에게 거부당한 인생이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결국 구약 이스라엘은 비극적인 멸망을 맞이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 마음을 드리는 예배

그러면 과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어떤 것일까요?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이 장차 오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백성을 일으키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들은 비록 이방인이지만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말하는데 하나님을 이들을 통해 온전한 예배가 회복되게 하실 것을 예언합니다. *11절이 그것을 나타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예수 그리스도 오신 이후에는 정해진 장소인 성전에서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장소와 시간을 초월해서 누구든지 영이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예배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가 이뤄질 것인데 이 예배가 참 예배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4:23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배는 성령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과 나의 영이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개, 찬양, 감사 등을 드리는 겁니다. 그것이 참된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따라서 마음을 담지 않은 그 어떤 예배 순서도 무의미합니다. 23:26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 마음을 달라는 것, 이게 바로 하나님이 나를 향해 갖고 계신 유일한 소원인 것입니다.

 

<예화> 어느 아프리카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복음을 전해서 추장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됐습니다. 추장은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바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신발을 선교사에게 가져와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추장의 신발을 원치 않으십니다.” 추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가장 아끼는 말 한 필을 끌고 와서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선교사는 하나님이 말을 원치 않으신다고 대답했습니다. 당황한 추장은 이번에는 추장의 지위의 상징인 깃털이 달린 모자를 들고 왔습니다. 선교사는 여전히 머리를 저었습니다. 추장은 괴로운 표정으로 외쳤습니다. “선교사님, 제가 가장 아끼던 것을 다 내놓았습니다. 이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제 생명뿐입니다.” 그러자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 바로 그겁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원하십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추장은 자신의 생명을 전적으로 예수님을 위해 바치기로 결단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진실한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그것인 참 예배요 참 신앙입니다. 51:16~17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에 보면 고라 자손의 시가 많이 나옵니다. 고라 자손은 성전에서 찬양인도를 맡은 자들인데.. 그들 시의 중요한 특징은 간절한 마음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점입니다. 84:1~2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고라 자손은 무명 인사지만 시편에 여러 편의 시를 남기게 된 이유는 그의 진실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시를 썼기 때문입니다. 이게 참 신앙 고백이요 참 예배인 것입니다.

 

[3] 오늘 우리의 예배 점검 : 참 예배를 위한 체크 리스트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예배 생활을 한번 찬찬히 점검해 보는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예배 순서마다 마음을 담아 드리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마음을 드리는 예배를 위해 무엇보다 우리의 의식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예배를 본다는 말을 씁니다. 그 말은 예배의 기본 정신에서 한참 벗어난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와 축복에 대해 응답하는 것입니다.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콘서트가 아닙니다. 구경하거나 관람, 감상하는 게 아닙니다. 목사가 설교 어떻게 하나 보자, 찬양대가 어떻게 하나 보자, 대표 기도자가 어떻게 하나 보자 이게 아닙니다. 모든 순서 순서에 나의 마음을 가득 실어야 합니다. 감상자가 있다면 오직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관해서는 말도 바르게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예배가 바로 드려질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드리는 예배를 위해 다음의 두 가지 면에서 유의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예배의 준비 : 첫 번째는 예배의 준비입니다.

예배에 우리의 마음이 실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준비의 소홀인지 모릅니다. 정성스런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준비.. 해야 합니다. 주일예배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토요일부터 미리 예배 준비가 이뤄져야 합니다. 설교자나 찬양대원, 대표 기도자, 안내위원 등 예배위원만 준비하는 게 아닙니다. 사실은 모든 성도들이 예배자요 예배위원이므로 성도 각자가 준비해야 됩니다. 한 주간 동안 바로 살아야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세상의 죄악에 물든 게 있었다면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정결한 마음이 준비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이 위대하심과 놀라운 은혜를 묵상함으로써 찬양과 감사의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과 예배 순서담당자, 그리고 모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이런 준비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예배는 정말 엄청난 차이가 날 것입니다.

 

어떤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이 어린 시절에는 물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신앙이 성숙해지면서 지금은 천국에 가 계신 할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르 드랍니다. 청년은 특히 할머님의 예배 준비 모습을 그리웠습니다. 할머니는 토요일이 되면 갖고 계신 옷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잘 세탁하고 다려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헌금할 지폐를 물을 축여가면서 인두로 잘 다려놓았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하도 이상하고 번거로워 보여서 그 이유를 여쭤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오히려 질문을 하는 손자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답니다. “,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고 가정해 봐라. 얼마나 준비한다고 야단이겠니? 그렇다면 하물며 하나님을 만나 예배드리러 가는데 아무 준비 없이 가서야 되겠니?”

 

물론 우리가 이 할머니와 꼭 같이 하자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정성스런 자세만큼은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하리라 믿습니다. 우리 각자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정성을 들여 준비할 때 별 게 아닌 것 같아도 마음 자세가 달라집니다. 그 마음이 예배의 실제 속에 반영되어서 하나님께 올려집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기뻐 받으시고 은혜와 복을 충만히 내려 주십니다.

 

예배의 실제 :

예배를 잘 준비하면 벌써 예배의 살제 상황이 시작되기도 전에 하나님이 기뻐받으시고 은혜를 내리십니다. 그리고 준비한 사람은 당연히 시간도 잘 지킵니다. 간혹 사정으로 시간이 늦어져도 미리 준비한 사람은 훨씬 낫습니다. 그렇지 않고 준비 없이 허겁지겁 달려온 사람은 결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는 위치나 자세도 중요합니다. 마음을 집중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야 됩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편적으로는 앞 자리에 앉는 게 좋습니다. 집중력이 달라집니다.

 

매 순서마다 긴장감을 갖고 임해야 합니다. 딴 생각을 한다든지 다른 일을 하면 그 예배는 실패하기 일쑤입니다.(집에 두고 온 해피가 자 있나!! 혹 가스레인지 불을 안끄고 온 것 아니야!! 문을 열어두고 온 것 같아. 요즘 도둑이 많다든데..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예배은혜는 물건너 갑니다) 그리고 봉사자들은 생각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됩니다. 예배 시간에도 봉사하는 것을 생각하거나 이런 저런 것으로 방해 받으면 곤란합니다.

 

모든 순서에 최선을 다하고, 특히 헌금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분량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많든 적든 반드시 그 속에 마음이 담겨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헌금에 담겨진 마음의 간절함과 진실함의 크기입니다.

 

이렇게 예배 준비 과정이나 실제에 있어 마음을 드릴 때 우리는 예배의 승리자가 됩니다. 또한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은혜를 풍성히 부어주십니다. 삼상2:30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예배에 실패한 엘리 제사장에게 주신 말씀입니다.<합독>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하나님은 당신을 가까이 하는 영혼을 존중히 여깁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엘리는 하나님은 가볍게 여기고 자기 아들들을 더 귀하게 여겼어요. 예배는 가볍게 여기며 자식을 더 귀하 여긴거여요. 경국 엘리는 제사에도 실패하고 가정과 인생에서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예배의 승리자가 된 다윗은 그의 가정에도 인생에도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마음을 다하여 드리는 참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복된 인생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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