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4 - 목자들의 성탄 | 운영자 | 2013-01-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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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8절~20절 목자들의 성탄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만큼 위대한 소식은 없습니다. 이 성육신의 소식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처음 창조하신 소식보다 더 놀라운 소식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성경은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시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육신이 실제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역사의 현장 속에서 생생하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구원의 사건이 단순히 어떤 사람의 주장이 아니라 생생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이뤄졌음을 알고 분명히 믿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오셨나요? 지난 주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장 낮고 천한 곳에 낮은 자로 오셨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셨지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오실 때에는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오셨고, 오시는 순간에도 사람이 머물 여관에 자리가 없어 짐승이 머무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으며 누일 곳이 없어 말구유에 누이게 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주가 이토록 낮은 자로 오셨다는 것은 바로..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려면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함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할 사람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더불어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가난과 고통을 겪으셨기에 그 어떤 고통과 아픔을 당하는 자에게도 친구가 되어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 드렸습니다. <목자는 누구인가?> 오늘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는 그 순간 한 초원에서 양을 치는 목자에게 벌어진 한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8,9절 말씀이다.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 하는지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자들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초원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이었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사람.. 베들레헴 시내에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수도 예루살렘에 사는 엘리트들도 아닙니다. 베들레헴 근교 초원에서 양떼를 치고 있는 목자들입니다. 오늘날 초원에서 양떼를 치는 목자 그러니까? 알프스나 대관령 초원 같은 곳에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플란다스의 개 같은 큰 개 한 마리를 거느리며 양떼를 몰고 있는 그런 장면을 연상하는데 실제로는 그러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지방의 초원은 황량한 광야 같은 곳입니다. 제가 예루살렘에서 5개월 가량을 살아서 잘 아는데 유대광야는 민둥산과 같은 곳입니다. 나무도 거의 없고 풀만 듬성듬성 나 있는 그런 곳이에요.. 풀이 많았다면 뭐하러 밤에 까지 풀을 먹이러 다니겠어요. 풀이 많이 없으니까? 밤에도 풀을 뜯어 먹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목자들은 참 힘든 삶을 산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또한 여기에 목자들은 지금 자기 양을 먹이는 자들이 아니에요. 그들은 남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써 거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초야에 묻혀 양떼를 돌보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일상속에서 만나는 은혜> 여러분, 우리가 목자의 이 모습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나요? 본문을 놓고 볼 때 어떤 환경 속에서 메시야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까?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메시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자를 만나기 어떤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같은 곳이 있어야 메시야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좋고 고상한 장소에서 메시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는 그런 곳에 찾아오지 않으셨어요. 아무리 화려하게 지어진 성전이라도 아무리 멋지고 고상한 장소라도.. 하나님을 향한 아무런 기대도 바람도 없는 그런 곳에는 오실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목자들이 머무는 광야의 한 현장처럼 아무리 평범한 장소라도, 내가 머무는 직장의 한 공간이라도, 주부가 자녀를 기르며 살고 있는 거실 한 부분이라도. 학생이 머리를 싸메고 공부를 하고 있는 도서관의 한 장소라도.. 그곳이 하나님을 기대하고 소원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처소..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메시야는 월마트나 지우꽝 백화점처럼 화려하게 장식된 그런 곳을 주목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고 붐비지만 메시야에 대한 그 어떤 열망과 소원도 없는 곳... 성탄케롤은 울려 퍼지지만 메시야를 기다리는 마음은 조금도 없는 그런 곳에 주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예루살렘도, 베들레헴도 아닌 그 근교의 한 목초지에서 그것도 낮도 아닌 밤에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나셨음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들은 비록 낮은 신분의 사람이었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너무나 평범한 일생을 지키는 사람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찾아가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목자를 찾아주신 하나님이 우리의 일상가운데도 찾아오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 속에.. 일 때문에 밤 잠을 설치는 여러분의 그 현장 속에,, 자녀로 인해 눈물을 쏟고 있는 그 현장 속에, 미래에 대한 염려고 고민하고 있는 그 삶 속에.. 하나님이 찾아오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리하여 놀라운 성탄의 메시지.. 구원의 메시지 은혜의 메시지를 여러분에 전해 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자세> 그러면 이 목자들이 메시야를 만나기 위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을까요? 먼저 목자들은 항상 그 마음 속에 메시야 신앙(즉 구원자가 오셔야 한다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어디서 그것을 알 수 있느냐 하면 11,12절의 말씀과 그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천사가 나타나서 “오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게 되며 포대기에 싸여서 구유에 뉘인 아기를 보게 될 것인데 그것이 바로 표적”이라고 말해 줍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천사가 여러분에게 느닷없이 나타나 이 말씀을 전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있지!!” 이렇게 생각하든지 아니면 무서워 도망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양을 치는 목자들은 이 천사의 말에 당황하지도 않고 귀담아 듣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메시아를 기다리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은 그 장소가 베들레헴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미가 선지자의 말씀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15절에 천사들이 떠나가고 나서 서로 말합니다.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하고”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지요.. 세상을 바라보면 소망이 없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타락할대로 타락한 그런 시대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예루살렘은 성도(聖都)라고 일컬어지지만 신앙의 세속화는 극에 달해 있었어요.. 아마 그들이 처량하게 초야에서 양을 치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초야에 묻혀 살아가지만 오매 불망 선지자가 약속한 메시야!!가 오셔야 하는 것에 대한 기대와 신앙이 있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어떤 사람이 성탄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나요? 세속주의에 물든 기성세대들, 성공주의 철학을 쫓아가는 현대인들. 타락 할대로 타락한 종교인들.. 그런 자에게 성탄의 소식은 하나의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 성탄의 소식은 기다리는 자에게 들려지는 것입니다. 간절한 사모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그 말씀이 내게도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그 사람에게 이 복된 소식은 전해질 것입니다.. < 성 실 > 또한 이 목자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믿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목자들은 성실했습니다. 믿음은 있지만 게으런 백성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로마에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롬12: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잠언을 보아도 “[잠13:4]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 주님을 섬기는 백성이 구원에 대한 소망만 가지고 초야에 묻혀 무위도식하며 산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본문을 보게 되면 목자들의 한결같은 특징이 있다면 그들의 부지런함입니다. 얼마나 부지런한가 하면, 밤이 되도록 바깥에서 자기의 양떼를 지킬 정도로 부지런 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양들을 그냥 우리에 몰아넣고 일찍 잠자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남이 보든 보지 않든 부지런히 그들의 양떼를 돌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게으럼은 죄악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부지런 했는데 이곳에서 게을러졌다. 그러면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세계무대에 이렇게 까지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엇입니까? 부지런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민족의 신앙위에 근성으로 가지고 있는 부지런함을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뭐니 뭐니해도 부지런한 자 못 당합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부지런함으로 섬겨갈 때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부지런함이다. 시편을 보게 되면 하나님을 묘사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주의 인자와 ‘성실’이다. 만약 하나님의 성실이 없으셨다면 우리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천사의 메시지> 이런 목자를 향해 천사가 나타나서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10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목자들이 천사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도 들려진 이 성탄의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성탄의 이 소식이 “온 백성에게 미칠.. 범위를 온 백성으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그 소식의 정도를 최고조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마 천사가 표현할 가장 최대요 최상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흔히 자식에게 누구야 너 아빠 얼마나 사랑하니.. 그러면 자식이 하늘만큼 땅만큼... 지금 천사가 표현하고 싶은 표현은 이 땅에 머문 모든 사람에게...가장 놀라운 기쁨의 좋은 소식... 최고로 기쁘면서 좋은 소식을 말해주려 합니다. 그 소식이 바로.. 오늘 우리를 위해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오신 소식은 최고의 기쁨이요 최고로 좋은 소식입니다...
왜 성탄의 소식이... 최고의 기쁨이요 최고로 좋은 소식일까요? 따라해 봅시다.. 나를 위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무리 좋은 소식이요 기쁜 소식이라도 나와 상관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런데 지금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구주가 나신 이 소식이 바로 나를 위한 소식이기 때문에 가장 최고의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 죽었던 나 도저히 세상에는 그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어던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천사들의 찬양> 그래서 이 소식을 전하는 천사가... 너무 기쁘고 좋아서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3,14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기쁘면 찬양이 나오기 마련이지요. 성탄의 소식은 인류가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이었기에 천군 천사들이 찬양합니다. 이 세상은 오신 주님에 대해 침묵하여도 하늘은 너무 기뻐고 좋아서 난리인 것입니다.. 목자들은 이 천상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 기쁨의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구주가 나신 이 일만큼 기쁜 일이 없는 것이구나!!” 그들은 크게 흥분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에게 무엇이 기쁨이 되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저는 얼마 전 저희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분들을 보면서 이 장면을 하나님이 보시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한국도 아닌 이 중국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 받으시는 이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런 생각을 하니...저도 너무 기분이 좋은 거여요.. 마찬가지입니다. 이 성탄의 소식을 하나님이 너무너무 기뻐하여 천군천사를 보내 그 기쁨을 이와 같이 표현하였다면.. 이 기쁨을 우리들 또한 만끽하며 우리의 이웃들에게 전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성도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옆엣 분들께 인사> 이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눕시다!! 천사들의 찬양의 내용을 보게 되면..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 탄생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성도에게는 평화의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시작이요,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였기 때문에.. 이 구원과 사랑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께 마땅히 올려드려야 할 영광을 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이 주님의 탄생은 이 땅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즉..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은 사람들 중에는 평화의 소식이다.. 여러분, 예수님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있었나요? 우리가 그 은혜를 입기 전까지 참된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요? 원래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이웃과 파괴된 관계 가운데 살았습니다. 심지어 나 자신과도 파괴된 관계였습니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심으로 인해.. 그 예수님께서 나에게 찾아오심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아빠~ 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 아들의 신분을 얻게 되었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었으며 나 자신의 과거도 현재도 용납하게 되었습니다. 평화가 이뤄진 것입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 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어소서..”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예수님 오심으로 이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믿는 목자의 반응> 그렇다면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이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 목자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15,16절 말씀이다.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그들은 천사가 전하여 준 그 소식을 듣고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탄의 그 소식을 보기 위해 베들레헴을 향해 빨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때까지 양떼를 돌보고 있던 그들이지만 성탄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양들을 빨리 우리에다 몰아놓고는 마리아와 요셉이 있는 곳.. 말구유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특별히 16절에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찾는다는 것은 바로 태어난 곳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여관을 뒤지면서 찾아다녔음을 의미한다.. 여러분 구원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들에게도 이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복되고 놀라운 소식을 듣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주님께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예수님 계신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이 나에게 좋은 소식이기는 해도 그것이 내 운명을 바꿀 정도로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두 번 찾다가 안되면 포기해 버립니다. 교회를 나오기는 해도 그분을 온전히 만나는 일에 자신을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면 안됩니다.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구원자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어요. 시급한 일 또한 없습니다. 내일 모래 미뤄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립니다.. 때가 있고 시기가 있습니다.
목자들은 그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들은 성탄의 소식을 들었을 때 빨리 예수님께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댓가를 치러면서도 그 현장으로 달려가 주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경배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주님을 만난 이 사건이 그들 인생의 놀라운 터닝포인트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 성탄은 우리 인생의 가장 놀라운 터닝포인트인 줄 믿습니다.. 이 성탄의 계절 모두가 주님께로 달려 나가 경배와 찬양을 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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