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를 만난 성도의 마음가짐 | 운영자 | 2013-01-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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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장 5절~19절 말세를 만난 성도의 마음가짐 영원한 세계에 대한 사람의 관심은 끝이 없다. 지구 외에 또 다른 행성에 생명이 살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우주선을 쏘아 올린다든지. 아니면 생명과학을 통해 생명복재를 연구한다든지 혹은 UFO(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든지 하는 것은 바로 영원이 살고 싶은 인간의 관심사에 대한 발로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영국의 온라인 신문 텔레그래프에서 UFO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의미있는 하나의 발표를 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향후 10년 뒤에 이 UFO 대한 논의가 사라질 것이라는 보고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이상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협회의 데이브 우드 회장은 말하기를 "추측을 벗어나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다는 것은 실제로 UFO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어 "목격담만으로 증거가 되는 시기는 지났다"며 "이러한 현상에서 얻을 수 있는 하나의 결론은 사실 지구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상상해서 만들어 낸 그러한 허상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짜가 말해주는 그런 영원한 생명에 대한 관심은 곧 진짜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이야기 한다. “[히9:27]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그리고 또한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여러분, 영생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데 엉뚱한 곳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죄인은 절대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 우주는 거대한 감옥인데 이 감옥에 살고 있는 죄인이 스스로 연구하고 개발하고 발견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육적인 감옥은 혹 무죄나 감면을 받아 나올 수 있을지 몰라도 영적인 감옥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죽음이라는 운명의 감옥에서 누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구원해줘야 하고 건져줘야 합니다. 바로 그분이 구원자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 때문에 오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고 오늘도 세상을 새로운 세계관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육은 이 땅에 있지만 영은 하늘 아버지와 교통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머물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순환론적 역사관> 일반사람들은 역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정의하고 사람이 죽어도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순환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윤회론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성경은 이 땅은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종말적 세계관을 말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지면 순환론적 종말론입니다. 즉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지만 결국 세상은 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맛보기로. 노아의 홍수사건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사건입니다. 결국 심판이 있게 될 것입니다. <말세를 만나는 우리의 마음가짐> 오늘 본문 말씀도 바로 그러한 관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대 시대를 보면서 장차 우리가 만날 말세를 예언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세를 만난 우리 성도가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 저는 봉독한 말씀을 가지고 3가지로 한번 살펴보기 원합니다. 1. 화려한 건물보다 더 아름다운 믿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얼마 전 예루살렘 성전에 계실 때 어떤 사람들이 예루살렘성전 건물을 보며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대 예루살렘 성전은 엄청나게 화려했습니다. 1세기 역사학자인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헤롯이 세운 이 예루살렘 성전은 엄청 규모가 컸습니다.성전이 쓰인 돌 하나가 가로 11,4m, 세로 3.7m, 높이5.5m가 되는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 전을 짓기 위해 수많은 헌물이 바쳐졌는데 당시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낸 헌물 가운데 사람 키만한 황금으로 된 포도송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로 꾸며져 있었으니 얼마나 삐까번쩍 화려했을까요?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은 이 성전이 수도 예루살렘에 세워져 있는 것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화려함에 대해 예수님의 대답은 어떠했습니까? 참 의외입니다. 6절 말씀 “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주님의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이 타락하게 될 때 아무리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며졌어도 주님은 거기에 큰 미련을 가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단호하십니다.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결국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성전의 외형적 모습은 한낫 모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전 속에서 행해져야 할 예배와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는 타락할대로 타락해 있는데 겉만 번지러하면 그것으로 무엇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예배의 타락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로 부터 900여년 전에 태어난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정말 화려하게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성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큰 복을 받습니다.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지내오면서 이 예배는 서서히 타락해 가고, 형식적이어 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에서 사라져 가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 예배당에 이방 신을 함께 섬기는 그런 일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되자 결국 이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의 침입에 의해 파멸되고 맙니다. 당시 예배의 분위기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사1:12~15)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떠나버린 성전,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전 드리는 자의 모습이 구별되며, 예배가 살아있고, 거룩하고 영적이고 진실된 모습으로 온전한 예배가 드려지게 될 때에 그것이 제대로 된 성전인 것입니다. 아무리 시간을 내어 예배를 드려도 삶과 동떨어진 형식에 치우쳐 버리는 예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그것은 성전으로써 기능을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들은 헤롯이 세운 성전을 중심으로 다시 모였지만.. 그들의 예배는 회복될 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오죽했으면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까지 했을까요? 이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은 영원히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AD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이 성전이 완전히 파멸되고 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믿음이 없는 성전, 하나님이 없는 성전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역사는 결국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인간은 결코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만 지어 놓으면 그들 스스로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지없이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결국 인간이 만든 성전은 무너지고 말 것이지만.. 본인이 새우는 새 성전은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주고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새 성전이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새롭게 세우시는 성전은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성전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전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인해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예배하는 것은 어떤 의식이나 건물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간사하기 때문에 자꾸 외적인 것에 기대려고 하고 외적인 것에 관심을 더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구에 불과하지 본질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망각하면 유대인과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됩니다.. 예배당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도구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이 예배당이라는 건물에 목숨을 건다면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건물도 잘 짓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건물안에 있는 성도의 신앙입니다. 복음이라는 본질이요, 믿음이라는 본질입니다. 이 본질을 외면한 채 건물에만 메달리는 것 위험합니다. 여러분, 큰 교회, 화려한 건물 결코 부러워 할 필요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요즘 한국교회가 앞다퉈 빚을 내어서라도 크고 화려한 대형교회를 세우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50년 100년 뒤를 내다 보아야 합니다.. 1980~90년대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많은 청중을 끌어 모으며 큰 인기를 끌었던 로버트슐러 목사님이 당시 세계에서 정말 아름답고 멋진 크리스탈 수정교회를 지었습니다. 1만개가 넘는 대형유리를 사용하여 지어진 건물인데 미국에 가는 목사님들이 꼭 보고 오고 싶은 곳으로 추천될 만큼 멋진 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지난 7월 로마카톨릭 성당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한때 수만명의 출석 성도를 자랑했지만 리더십의 교체와 성도들의 이탈로 인해 운영비와 늘어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카톨릭으로 넘어가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 카톨릭 성당에서 매각된지 얼마 되지 않아 신천지 이단의 창시자 이만희씨가 말씀을 전했다는 것이다. 복음전도의 파수꾼인 교회가 타종교로 넘어가고 이단이 그곳에서 말씀전하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저는 이러한 소식들을 들으면서 정말 남일 같지 않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건물은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믿음은 영원한 것입니다. 저는 화려한 건물보다 더 소중한 것이 바른 신앙이라고 믿습니다.. 은혜의 교회는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아름다운 성도들이 넘쳐나는, 바른 신앙을 가진 성도들로 넘쳐나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말세에 나타날 현상들 두 번째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정확한 복음을 믿고, 미래를 예견하고, 종말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도록 안내합니다. 그냥 주님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고는 알아서 종말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세에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때를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미혹하는 자가 나타날 것> 그렇다면 말세에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8절 말씀을 보십시오. “8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먼저 말세에는 미혹하는 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성전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이 사라지면 이상한 말로 현혹하는 이단들이 기성을 부립니다.. 바로 자칭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이야기 하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현혹시키는 것입니다. 진짜가 있기 때문에 가짜가 기성을 부리는 것이지요..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가 바로 그러합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 이래 이단들이 오늘날처럼 설치고 다닌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자칭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50명이나 된답니다. 대표적 인물이 얼마 전 성추행으로 구속된 JMS 교단의 교주 정명석, 85년에 죽은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얼마 전 죽은 문선명, 그리고 곧 죽을 신천지 이만희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이들이 바깥에서 포교를 했는데 요즘은 교회안방까지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할 뿐 아니라 목사를 몰아내고 교회자체를 집어 삼키려고 하고 있어요... 정말 무서운 세상입니다. 말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방심하면 얼마든지 여러분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벧전5: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마귀가 누구를 찾습니까? 자기 수하에 있는 자를 찾지 않습니다. 믿는 자 성도를 찾습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이단들이 활개를 치고 다닐까요? 심지어 교회에까지 들어와 겁 없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말씀의 능력을 잃어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복음의 능력과 말씀의 힘을 잃어버리면 이단이 교회를 우습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위기 중의 위기입니다. 말씀의 위기입니다. 진리의 위기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인 것입니다. <난리와 소요가 있을 것> 그리고 세상은 난리와 소문이 있을 것입니다. 9절입니다. “9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얼마나 많은 난리와 소요가 일어나는지요!! 정신이 없을 지경입니다. 옛날에는 일간신문이 새로운 기사였다면 오늘날에는 실시간으로 새로운 사건사고가 올라옵니다. 그만큼 난리와 소요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사람 한 명 죽여도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 한명 죽였다고 크게 보도되고 그러지 않습니다. 너무 자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점점 악해져 가니 도저히 있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전쟁의 소식> 그것 뿐만이 아닙니까? 말세에 전쟁의 소식이 있습니다. “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민족이 민족끼리 전쟁을 일으킵니다. 지금도 이슬람에서는 다수파인 수니파와 소수파인 시아파가 끊임없이 전쟁을 합니다. 한민족인 북한과 남한은 여전히 휴전중입니다. 나라간의 전쟁도 멈출 줄 모릅니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이 그러합니다. 일본과 우리나라 중국의 영토분쟁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은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시리아와 터키도 전쟁직전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 자연재앙 > 또한 하늘과 땅에서도 징조가 보입니다. 11절입니다. “11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최근 몇 년 사이에 전 세계에 유례없는 대지진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습니다. 쓰나미나 허리케인 같은 것은 수시로 발생하고 있고요.. 또한 나라마다 비가 오지 않아서 가뭄이 계속되고 있고, 이 일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만 갑니다. 오늘 하루에만 6만명이 넘는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이즈나 신종플루 같은 전염병이 끊임없이 발생하여 인류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하늘과 땅에서 큰 징조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납니다. 말세를 만날 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3. 핍박과 박해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입니다. 12절입니다. “12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성도가 말세를 만나게 될 때 당면하게 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영적인 전쟁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다시 오시기까지 이 세상은 우리 믿는 자들과 악의 세력사이에 치열한 영적전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오시는 그 순간까지 사탄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우는 가장 큰 전쟁은 바로 복음전도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마귀는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핍박하고 박해하며, 옥에 가두기도 하고 임금이나 관원 앞에 끌어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상관 앞에 서는 것도 두려워하는데..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나약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왕 앞에 서야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온 우주의 왕 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면 왕 앞에라도 설 수 있는 그런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온갖 힘을 동원하여 우리를 넘어트리고 멸망시키고 망하게 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경에서 이름과 같이 우리는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절대 복음전도에 있어 세상과 타협하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핍박을 받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이기를 폐해야 할까요? 그러면 우리는 세상의 권세에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럴 때 일수록 더욱 기도하며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마귀는 핍박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께로 떨어트리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이 핍박을 통해 더욱 더 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13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저는 중학교 때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교무실에 불려가고 교감선생님 앞에 불려가고 그러면서 제가 믿는 예수님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때 핍박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7,18절에도 뭐라고 말씀하나요? “17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18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어떠한 때는 가족이 나를 미워할 수도 있고요. 형제들이 나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이 나를 멀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예상해야 할 과정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나면 나의 주인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되지만 저들은 아직까지 마귀의 자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절대 우리 머리털 하나 상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결론> 결국 말세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데 우리가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일까요? 마지막 19절을 큰 목소리로 읽어 봅니다. “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런 내외적인 환경의 변화 가운데 시대를 분별하는 믿음을 가지고, 주변의 핍박과 박해 가운데서도,, 가까운 가족 친지의 미움을 받아도 믿음을 지키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결국 하나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분이 이 사실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일생의 가장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코 쉬운 길만은 아니니다. 거기에는 힘든 일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로 우리의 영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끝까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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