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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지수를 높이십시오 운영자 2013-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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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지수를 높이십시오 에베소서 5:20-21

 

저는 어떤 행사를 가든, 모임을 가던 꼭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봅니다.

어떤 모임에 가보면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편치 못합니다. 환하지 못합니다. 염려와 걱정을 가득 짊어지고 가는 사람 같은 그런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모임에 가보면 사람들의 얼굴이 해처럼 환한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말하는 것도 참 밝고 긍정적입니다. 웃음이 있습니다.

교회도 그러합니다. 어떤 교회는 사람을 만나면 인상들이 모두 좋고 편안한 그런 교회가 있어요. 웃음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교회를 가보면 친절하게 하는 것 같은데 왠지 자연스럽지도 못하고 불편하고, 사람들의 얼굴은 굳어 있어요..

 

제가 참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은혜의 교회 지체들은 얼굴들이 하나같이 밝고 환하고 활기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단 저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저희교회에 처음 나오시는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남성분들은 어딜 내어 놓아도 미남이요. 잰털맨 들이고요.. 여성분들 같은 경우는 어딜 내어놓아도 뒤지지 않는 미인들 아닙니까? 사실 이 라는 것은 성형하고 화장하고 꾸미고 한데서 생긴 그런 미도 있지만 내면에서 풍겨나는 미가 있어요. 진짜 미는 외모에서만 보이는 미가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풍겨나는 그런 미입니다. 은혜의 교회 성도들은 모두 미인이세요.. 내면에서 풍겨나는 미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여러분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라보느냐? 어떤 신앙의 자세로 살아가느냐? 그것이 우리의 내면을 결정하고 그것으로부터 사람들에게 풍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그 얼굴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풍겨나게 됩니다. 그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저는 오늘 우리의 그 아름다움을 더욱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을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바로 감사지수를 올리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는 사람인지 한번 돌아보며 감사의 지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께 감사하라 >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여러분,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종교 개혁자인 마틴루터는 말하기를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기준은 감사를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모두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대상과 그 이유가 분명할 때 바른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감사합니다그러면 감사를 베푼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도움을 준 그 사람이 나의 감사의 대상이 됩니다.. 죽을 위험에 놓였을 때 누군가 나의 목숨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우리가 누구에게 감사하라고 말씀하나요?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바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분이 유일하신 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인류가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순간에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을 알게 된 순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나의 생명을 누군가가 구해주어도 평생을 그 은혜 잊지 못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데.. 영원히 멸망받아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분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 범사에~ 항상 >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바울이 어떤 감사를 하라고 말씀합니까? 감사를 하되..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기서 '범사'라는 말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무조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시종일관, 어떤 상황을 만나도 변함없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실 감사를 한 두번 하라!!’ 그러면 감사하는 것이야 어디 어렵습니까? 그런데 어떤 형편을 만나도 무조건 감사하고,, 어떤 상황을 만나도 변함없이 감사하는 것...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거여요.

이 말씀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많은 가책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저부터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라는 직분이 원래, 모든 부분에 있어 본이 되어야 하는 직분인데.. 특히나 말로 전한 것은 실천을 해야 하는 그러한 직분인데. 솔직히 제가 전한 것을 제가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만약 제가 말한 것만 제대로 실천해도 저는 예수님을 쏙 닮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아 참 고통스러울 때가 많이 있어요..

누구나 말은 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감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1988년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한창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을 때 중요한 이슈가 사형 폐지론이었다고 합니다. 민주당 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라는 후보는 사형 폐지론을 주장했습니다. 사형제도는 없애야 된다며 전국을 누비면서 유세를 했습니다. 어느 날 CNN의 토크쇼에 그가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쇼에는 유명한 버나드 쇼라는 앵커가 담당을 하고 있었습니다. 듀카키스를 앞에 놓고 이 버나드 쇼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사형제도를 폐지하라고 주장 하신다죠?" ", 그렇습니다." "참 훌륭한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 묻겠습니다. 선생님, 만약에 선생님의 아름다운 그 부인이 괴한에게 끌려가서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당했다고 합시다. 나중에 그 범인이 잡혔을 때 선생님은 여전히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서 이 사람은 당황했습니다. 머뭇머뭇하고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수천 만 명의 시청자들이 보고 있었는데 이 장면에서 그들이 받은 인상이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자기와 상관이 없으니까 사형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지, 진짜 자기 일이 되면 그런 소리를 할 사람 아니라는 인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토크쇼 때문에 그가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남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내 이야기가 되어질 때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항상 감사하십시오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진지하게 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어 가는 아내를 쳐다보는 남편이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요?

오랜 지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아무리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고쳐주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병은 점점 더 깊어 가는 자신을 보면서 과연 그 입에서 감사가 나올 수 있을까요?

평생 무거운 십자가가 될 장애를 가진 자녀를 맞고 살아가는 그 부모의 입 속에서 정말 감사가 나올까요?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력서를 수십 통 써 가지고 다니면서 취직을 해보려고 하지만 회사에서 면접 한 번 하지 못하고 연거푸 퇴짜를 맞는 젊은이의 입에서 과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나올까요?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저나 여러분이나 이런 입장에서 이 말씀을 한번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라는 이 말씀은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비현실적입니다. 이상론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이 말씀을 대충 듣고 넘어가 버립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은 진리이며 우리의 삶의 기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지킬 수 없는 말씀을 주신 적이 없으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라!!는 이 말씀에는 삶의 모든 문제와 고통을 해결 할 수 있는 놀라운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꼭 깨닫기를 바랍니다. 먼저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지?” 그리고는 왜 범사에 항상 감사하라고 하시는지?” 이 두 사실을 깨달으므로 우리의 감사지수가 더욱 높아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첫째로,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할까요? 성경은 범사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이름으로'라는 말을 '때문에'로 바꾸어도 전혀 잘못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 가진 것 없어도, 성공하지 못했어도, 배우지 못했어도.. 내 속에 예수님 계시기에 그 예수님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거여요..

 

왜요? 예수님 나를 위해 하늘 보좌 다 버리고 이땅에 오셨지요!! 갈보리 언덕에서 나의 죄를 위해 살찟고 피흘려 친히 죽어주셨지요. 내가 이 예수님 믿음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새생명을 얻고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으니..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나의 운명이 바뀌게 되었는데요..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마귀의 종에게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도함을 받게 되었는데요. 그 예수님이 내 가운데 계시는데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스트라스버그의 타울러는 14세기의 위대한 성자요 신비주의자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이름 없는 거지 한 사람을 길에서 만났습니다. "형제여, 하나님께서 형제에게 좋은 날 주시기를 바라오" 하고 인사를 건네자, 거지가 "저는 한 번도 나쁜 날을 가져 본적이 없습니다." 하고 재빨리 대답합니다. 이 맹랑한 대답에 깜짝 놀란 타울러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친구여, 하나님께서 친구에게 행복한 날 주시길 바라오" 하고 다시 인사하자, 그 거지는 또 다시 대답합니다. "저는 한 번도 불행해 본적이 없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말에 타울러는 난감해졌습니다. "아니, 한 번도 불행해본 적이 없다고? 자네, 그 말이 정말인가?" "그렇고 말고요. 날이 좋을 때나 비가 올 때나 저는 하나님께 똑같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먹을 것이 많을 때나 먹을 것이 없어서 굶을 때나 역시 하나님께 고맙게 생각하지요. 하나님의 뜻이 결국 저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언제나 저를 기쁘게 만들지요. 그러므로 제가 한번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왜 불행하다고 말해야만 합니까?"

타울러는 이 괴상한 거지의 대답에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자네는 도대체 누군가?" "저는 왕입니다." "? 자네가 왕이라고! 그러면 자네의 왕국은 도대체 어디에 있지?" 넝마 속에 초라하게 있던 이 거지는 조용히 그러면서도 확신에 찬 음성으로 "저의 심령에, 저의 마음에 바로 저의 왕국이 있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심령에 예수님 찾아오시면 어떤 형편에도 감사가 저절로 나올 줄로 믿습니다. 찬송가 438(495)의 가사처럼,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찬양이 우리의 찬양이 될 줄 믿습니다.

 

일전에 소개해 드린 송명희 여사를 여러분이 기억하실 것입니다.<그림> 그는 뇌성마비로 한번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온 몸이 비비 꼬여서,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면 죽다 살아나는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해야 할 정도로 일급 장애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시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 시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가슴에 저미어 오는 감동이 있지 않습니까? 그가 쓴 시 가운데 ''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가만히 음미를 해 보십시오.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까? 뇌성마비로서 남이 가진 것의 90%를 못 가진 자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러자 무엇이라고 감사합니까? 남이 갖지 못한 것 내게 있고 내가 가진 것 남이 없는 것을 비교하면서 오히려 '주님, 나는 세상 사람이 가지고 즐기는 것 없어도 예수님 한 분 그분의 사랑을 받고 그분을 눈으로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항상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아름다운 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저가 이런 수준의 감사를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소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나의 존재 자체로써 온전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삶...

여러분,, 감사는 결코 그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많이 가졌다고 감사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건강한 사람 중에 감사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자기 뜻대로 다 소원성취 하는 사람 입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 보셨습니까? 입술로는 감사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자는 별로 없습니다.

 

진짜 감사는 누구에게서 나옵니까? 예수님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면 진정한 감사가 나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왜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항상감사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바로 감사는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명령하시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명령하실 때에는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뒤따라 보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 저는 못합니다." "그래도 범사에 감사해. 내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줄게."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라." "어떻게 항상 감사합니까?" "할 수 있어. 내가 네게 능력을 준다." 바로 그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감사하라는 명령을 지키는 것만큼 우리에게 축복된 것은 없습니다. 이걸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감사하게 되면 어떤 축복이 임하게 될까요?

 

우리가 감사하는 것만큼 믿게 됩니다. 누구를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앞길이 막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옵니까? "하나님, 제 앞길 캄캄하지만 주님이 제 앞에 있는 구름을 걷어내고 어둠을 쫓아 주실 날이 올 줄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시니 이런 고난을 주시는 줄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속에서 드리는 감사의 믿음은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거여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말씀하시는 거예요.

감사하는 것만큼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어느 정도 믿고 계십니까? 감사하는 것만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것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100평 짜리 아파트에 살아도 감사가 없으면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스무평 짜리 아파트에 살아도 눈만 뜨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그 심령이 감사가 넘쳐나면 그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행복을 누가 빼앗아갈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감사하는 것만큼 다릅니다. 누구하고 다릅니까? 세상 사람하고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입만 열면 불평이 심합니다. 불평은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감사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입에서 계속 감사가 나옴으로써 내가 그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는 은혜의 지체들이 감사함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것만큼 강합니다. 여러분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으십니까?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강해집니다. 만약 신앙생활은 오래토록 했는데 감사가 없다면 여러분은 이미 마귀에게 지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이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고 어려워도 감사하게 되면 그만큼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어떤 부모가 목사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우리 애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복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사실 말이 아닐 것입니다. '복은 무슨 복인가?' 우리는 당장 그렇게 느낍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우리 애 때문에 가정이 얼마나 화목한지 모릅니다. 우리 애 때문에 우리 아빠가 예수 믿고 돌아왔습니다. 아마 애가 저러지 않았으면 아빠는 예수 안 믿었을 것입니다. 우리 애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아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 애 때문에 세상에서 천대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 고통 당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 애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복이 보통 많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이 사람만큼 강한 성도가 어디 있습니까? 누가 이 사람을 꺾을 수 있습니까? 아무도 꺾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 좋아집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 집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세상 사람 앞에 매력적인 존재가 됩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늘부터 돌아가셔서 의도적으로라도 감사하십시오. '나는 예수님 믿는 사람이다. 예수님 때문에 나는 무조건 감사할 수 있어.' 하면서 감사하면 하나님이 더 큰 은혜로 체워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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