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 >
어려울 때의 신앙 김진일 2013-01-08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055

http://szgrace.org/bbs/bbsView/124/2422983

어려울 때의 신앙 눅21:1-4

 

성경은 우리 인간이 목숨이 붙어 있다고 그 사람을 생명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생명은 항상 예수그리스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하나님이 보시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본인을 가리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신 것처럼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이 있는 자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 어떤 형편이든 하나님을 최선을 다해 섬기는 자입니다.. 그가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배웠던 배우지 못했던 그것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27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태생적 환경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그가 처한 환경 속에서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을 보시고 그를 평가하십니다.

 

<사르밧 과부 이야기>

성경을 보면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최선을 다해 섬긴 많은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구약시대 북쪽 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 엘리야 예언자가 나타나 수년 동안 그 땅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것은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가뭄은 3년 반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한해만 비가 오지 않아도 큰 흉년인데 3년 넘게 가물었으니 나라 전체가 온통 가뭄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 자신은 그릿 시냇가에 숨어 지내면서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떡으로 연명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시내도 마르게 되자 북쪽 시돈에 속한 사르밧에 사는 한 과부의 집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그리로 가 머물게 됩니다.

사르밧 과부에게는 한 움큼의 밀가루와 약간의 기름이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이 과부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이제 이것을 먹고 자식과 함께 죽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것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먼저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염치없는 말입니다만,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와 그 가족이 다함께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주께서 이 땅에 다시 비를 내려 주실 때까지, 그 통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그 말을 믿고 그대로 실행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고 항상 먹을 만큼 남아 있어서 비가 그 땅에 다시 내릴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은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이야기>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과부는 정말 살기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은 과부가 되어도 악착같이 살면 사는데는 크게 지장이 없지만 그 당시는 과부가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과부가 고아와 더불어 사회적 최하위 약자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한 과부가 정말 살기 힘든 형편을 무릎쓰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자기가 가진 생활비를 다 바친 것입니다.

 

과연 이 여인은 무슨 마음으로 자기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을까요? 넉넉한데서 일부를 드린 것도 아니고 정말 춥고 배고픈데..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런 모험을 한 것일까요?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이 과부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결코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신의 형편을 외면하는 분이 아니시라는 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모험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저는 그 당시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자의 대명사였던 이 두 과부의 모습을 보면서 어려울 때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가?” 그 교훈을 한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을 붙잡으라>

먼저 우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르밧 여인은 어차피 자기 능력으로는 그 가뭄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근 때문에 모든 사람이 살기 힘든데, 과부의 몸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마지막 남아 있는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는 자식과 함께 죽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나타났고 그 마지막 밀가루를 가지고 떡을 만들어 선지자에게 주면 그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그녀는 엘리야를 통해 들려진 그 약속을 믿었고 그대로 행하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두 렙돈을 바친 여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돈은 사실상 한 끼 식사값 밖에 되지 않는 적은 돈이었습니다. 그걸 가지고는 전혀 그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못됩니다. 차라리 그녀는 그것을 하나님께 바침으로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사실상 우리가 극한적인 어려움에 처할 때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든지 아니면 위를 쳐다보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든지 하는 길입니다. 두 여인은 어려울 때 하나님께 의지하였고, 그를 붙잡았던 것입니다.

 

시편 말씀을 보면 곤경에 처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들이 많이 나옴을 봅니다.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18:6)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62:5-8)

그렇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정치나 경제 혹은 과학의 발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고난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온 것이므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 역경에 처하였을 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그에게 부르짖고, 그에게 매어 달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시고 구원하시며 우리의 회복해 주실 것입니다.

 

194466일 아이젠하워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은 프랑스에서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노르망디 해안이 험한 절벽인데다 그 전날 밤에 폭우와 안개가 겹쳤습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당시 미국의 32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장장 17시간이나 기도를 했습니다..

마침내 연합군은 그 역사적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을 할 수 있었고 그것을 발판으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사람을 찾지 마십시오. 어려울 때 일수록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118:6]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할렐루야!!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경제 위기는 하루 이틀에 끝날 위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어제 오늘 힘들지 않다고 한 적이 있습니까? 주변의 환경은 우리를 점점 더 옥죄올 수 있고 힘들고 어렵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선제적 대응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 또한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현실 속에 우리 하나님의 백성이 희망을 둬야 할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6:1]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며, 그분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분께 기도하며, 그 앞에 나가 그의 은총과 도우심을 간구하여야 하겠습니다.

 

원래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 조금 등따시고 배부르면 누울 곳을 찾고 편한 곳을 찾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면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향해서는 더 큰 욕망과 욕심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을 향한 욕망 갈급함은 급속히 식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런 간절함이 회복될 필요가 있습니다.

차라리 과거에 없을 때는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기도도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생활의 여유를 즐기느라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더 많은 경제적인 부를 얻고자 신앙생활을 뒤로 미루어 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정신없이 쫓아다닙니다. 여러분, 잠시 멈추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는 이제 게을리 하였던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시고,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환란은 그것 회복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사인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힘드십니까? 아무리 바쁘게 달려보아도 일이 잘 안 풀리고 꼬이기만 하는 그런 경우를 보지 않습니까? 잠시 멈추십시오.. 그리고.. 주님께로 달려 나오십시오.. 다윗처럼 주님의 손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주님, 지금까지 저는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한 번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제 힘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너무 자만했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주님의 손을 붙들기 원합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붙들어 주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회복해 주십니다..

[50: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른 봉헌 생활>

두 번째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 배울 교훈은 성도의 바른 봉헌 생활입니다.

사르밧 여인이나 본문의 이 과부는 자기들이 가진 것을 다 드렸다고 말합니다. “어려울 때 있는 것마저 다 바쳐 버리면 무엇을 먹고 살라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바로 믿음의 갈림길이 있는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밀가루 한 움큼이나, 한 끼니의 밥값밖에 되지 않는 두 렙돈을 붙잡느냐 아니면 풍성하신 하나님을 붙잡느냐 하는 믿음의 갈림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있어도 궁핍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께 내어 놓으므로 믿음의 모험을 시작함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가난한 과부의 그 하잘 것 없는 것들을 요구하시겠습니까?” “하늘의 창고가 모자라서 과부의 가진 것을 원하실까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봉헌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시금석(試金石)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는 시험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풍성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하나님께 내게 있는 것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부자 청년이 영생을 사모하며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 어찌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청년이 대답하기를 어릴적부터 그 계명들은 다 지켰다고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번에는 자신이 가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이 청년이 그 자리에서 발을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왜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시는 걸까요? 그것은 그의 돈을 빼앗으려 하심이 아닙니다.. 다 버리고 가난뱅이가 되라 하심도 아닙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심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지.. 그 믿음을 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의 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십일조는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지만 그것은 열의 하나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드리는 의미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신앙고백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의 전부를 드린다는 마음으로 십의 일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 십일조의 정신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음을 기억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셨는데.. 멸망 받아 죽게 된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셨는데.. 우리가 드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나요? 목숨을 바쳐 살아도 부족하지요.

 

어떤 사람은 자기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가족을 위해서 목숨을 바칩니다. 옛날에 추노같은 드라마를 보면 남자 주인공 대길이가 사랑하는 은연이를 목숨바쳐 가면서 그녀를 지켜주지요.

그런데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못하겠어요..

 

성경에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라"(6:5)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다한다'는 말의 뜻은 전체를 다 받친다는 것입니다. 일부분이 아닌 전부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최선의 사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은 하나님을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시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6: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도 있다는 뜻입니다. 봉헌은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향하여 있는지를 나타내 주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필라델피아 템플 침례교회 주일학교에 한 가난한 집안의 소녀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교회는 어린이를 위한 교육기관은 거의 없는 형편이어서 좁은 방에 많은 아이들이 복작거리고 있었습니다.

교실이 너무 좁아 새 학생을 받지 않고 있었으므로 이 소녀도 교회에 나갈 수 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 이 소녀는 불치의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죽은 소녀의 베개 밑에는 짧은 편지와 동전 57센트가 나왔던 것입니다.

이 편지는 그 교회 목사님에게 쓴 것입니다.

 

"목사님, 더 넓은 교회를 짓도록 제가 모은 헌금입니다. 넓은 교실도 지어 주세요."

목사는 소녀의 편지를 장례식에서 소개하였으며 이 감동은 기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이 교회 교인들의 헌신으로 인해 큰 성전뿐만 아니라 병원도 짓고요. 명문대학인 Temple University까지 짓게 되었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 신뢰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 >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와 같이 어려울수록 더욱 더 하나님을 붙드는 자에게 더 큰 은총을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르밧 여인은 엘리야의 말씀을 따라 한 움큼의 밀가루를 하나님께 드렸을 때 3년 반 동안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자기 가족만이 아닌 예언자까지 함께 모실 수 있었으니 그에게는 큰 은총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외아들이 병들어 죽었을 때 엘리야가 그를 다시 살려 주었습니다. 이 여인은 작은 투자를 통해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였습니다.

기쁨으로 모든 것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뿐 아니라 더 넘치는 은총으로 채워주실 줄 믿으시기 비랍니다.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3:9-10)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3:10)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을 말로만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드리기 쉬운 물질로 존경하라고 하심입니다. “땅에서 얻은 첫 열매로 주님을 공경하라!!”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놓아라

 

여러분이 진정으로 풍성한 주의 축복을 맞보시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십시오. 말로만 사랑하지 마시고, 내가 가장 하기 쉬운 사랑의 표현인 내게 있는 물질을 아낌없이 그분께 드리십시오. 그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챨리 페이지는 직장도 없는 무일푼의 청년이었다. 하루는 거리를 지나다가 구세군의 가두전도를 보게 되었다. 찬송과 전도설교가 끝난 후에 한 젊은 여성이 탬버린을 바구니 삼아 들고는 헌금을 걷으면서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다. 그 여성이 페이지 앞에 왔을 때 페이지는 그녀에게, 자기는 헌금을 하고 싶으나 돈이 하나도 없고 실은 음식 사먹을 돈조차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 여성은 자기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더니 페이지에게 넘겨주는데 그것은 당신돈 1불이었다.

그러면서 그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이 돈을 받으세요. 그 중 10센트를 여기에 헌금하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수입이 있을 때마다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세요. 이렇게 평생 동안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세요. 그러면 돈이 떨어져서 고생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페이지는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돈을 받았고 그 중에서 10센트를 헌금했다.

얼마 후에 그는 곧 직장을 얻게 되었다. 그는 그 여성의 말을 믿고 계속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을 했다. 세월이 흘렀을 때 챨스 페이지의 이름은 백만장자의 명단에 올랐다.

그는 하나님께 십일조뿐만이 아니라 여러 개의 병원을 지어서 바쳤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자선 사업도 하였다. 멋있는 출발이었다.

 

여러분 과부가 두 렙돈을 바친 것이 왜 예수님께 칭찬을 얻었나요? 그것은 믿음으로 바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칭찬을 얻는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더욱 믿음으로 사십시오. 더욱 주님을 붙드십시오.. 주님을 더욱 사랑하십시오.그리하여 어려움이 여러분을 더욱 복되게 만들는 그런 기회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감사지수를 높이십시오 운영자 2013.01.08 0 868
다음글 부활 신앙 백승엽 2012.11.07 0 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