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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의 시민 백승엽 201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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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9~26

두 나라의 시민
 

<소속이 어디냐?>

이솝우화에 나오는 박쥐 이야기가 있습니다. 땅에 사는 동물나라와 하늘을 나는 새나라에서 싸움을 일어났습니다. 싸움을 하는데 땅에 사는 동물나라가 유리해지니 박쥐가 난 쥐처럼 생겼으니 땅에 사는 동물이야라고 하며 동물나라 편에 붙었습니다. 그 다음 싸움에서 하늘을 나는 새 나라가 유리해지니 박쥐가 마음을 바꾸어 난 날개가 있으니 새야라고 하며 새 나라로 날아갔어요. 그런데 나중에 질서가 재편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시간이 되자 땅의 동물도 하늘의 동물도 소속이 불분명한 이 박쥐를 모두 싫어한 것입니다. 그래서 박쥐가 낮에는 활동을 못하고 밤에만 날아다닌다.. 그런 말이 있죠..

 

소속이 어디냐? 사실 우리가 외국에 나와 생활하다 보면 소속이 아주 애매한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주재원으로 근무할 경우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한국에 본사가 있고 중국지사에서 근무해야 합니다. 그 때는 본사의 지시를 받아야 할지, 아니면 이곳 지사의 지시를 받아야 할지, 소속 때문에 혼란을 겪게 되는 그런 경우들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어디에 소속이 되어 있든 하나님의 백성은 처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파견 근무>

예수님은 하늘에서 파견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이 땅에 죽어가는 죄인을 구원해야 하는 임무를 받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고 새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이 땅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법을 어기거나 하신 일이 없으셨습니다.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이 땅에 법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는 오늘 살아가는 우리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며 동시에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이 되기도 합니다..

 

일전에 시사주관지인 <시사인>이라는 잡지에서 가장 신뢰하는 종교가 무엇입니까? 설문조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한 종교가 천주교였습니다. 조사자들 가운데 61.8%가 천주교를 신뢰한다고 답변했어요. 그리고 2위는 불교로 55.1%였습니다. 3위가 기독교인데 28.1%로 나타났어요. 한국에 기독교인의 인구가 20%인 것을 감안해 보면 불신자 가운데 기독교를 신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체 10%도 안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조사를 해 봤더니 천주교는 현실적인 사회 문제에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어려운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 같은 경우도 젊은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며 그들의 마음을 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래 그런 일을 교회가 나서서 해야 될 일입니다. 사회의 약자를 돌아보며, 소외되고, 아파하고, 고통 당하는 자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을 보듬어주고, 치료해 줘야 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왜 그런 일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로 부터 외면을 받고 있나요?

 

교회가 굳이 사회를 향해 어떤 대단한 목소리는 내지 않더라도 상식적인 선에서 어긋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식을 벗어나면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종교인은 더더욱 그래요.

얼마 전 어떤 종교에서 지도자들이 모여 상습적으로 도박을 했는데.. 그것이 몰카에 찍혀 세상에 알려진 적이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로 그런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성도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될 때 사람들은 신뢰를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신뢰같은 뭐가 그리 중요하냐? 믿기만 잘 믿으면 되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는 세상의 인기에 영합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욕을 얻어먹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하셨어요. 세상에서 빛을 비춰야 하고, 소금같이 부패한 곳에 들어가 정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저께 바자회 했어요.. 감사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바자회를 마치고 그 다음날 되니까 바로 비가 와요.. 그 전날도 비오고 다음날도 비오고 쏙 그 날만 구별해서 비 안내리시는 하나님.. 얼마나 감사하든지요.. 뿐만 아니라 진행도 참 메끄럽게 잘 되었어요. 음식하나하나.. 옷가지 하나하나 우리 남편 대접하듯 잔치집 손님 대접하듯 최선을 다해 만들었어요. 어떤 분 밤잠을 설치신 분도 계실 겁니다. 그리고 가격도 참 착하게 정한 것 같아요.. “우리가 과하다 너무 비싸다 이런 말들을 하면 교회가 저래서 되겠느냐? 이런 소릴 들을 것인데..” 음식도 잘 만들었을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게 팔아서 사시는 분들에게 잘 샀다.. 기분좋다이런 생각을 가지도록 만들어 줄 때 얼마나 가슴이 부듯한지요..

너무 호응이 좋아가지고 김치 같은 경우는 점심시간까지 다 팔려버렸어요. 음식도 일찍 팔려서 오후 2시정도 되니까 거의 파장분위기가 되었어요.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거든요..

 

더군다나 이번에는 링롱완 관리소에서 지난 해에 하는 모습 보면서 주민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전화를 걸어와 이번에도 어떻게 할 수 없느냐? 그래 가지고 그곳에서 큰 소리치면서 열었다는 것 아니겠어요.. 물론 큰소리 치지는 않았지만 전에는 허락해주나 안해주나 조마조마해가지고 사정사정 해가지고 했는데..

 

여러분 우리 교회가 굳이 어떤 대단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상식선에서 최선을 다하여 섬기기만 해도 세상은 고마워하고 감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은혜의 교회가 상식이 통하는 교회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서기관과 대제사장의 논쟁>

오늘은 이스라엘 종교지도자인 서기관과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잡기 위해 간계를 꾸미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당시 서기관은 산헤드린 공회를 장악하는 사람들로써 오늘날 국회의원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의 눈엣 가시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그 기득권을 깨트리고 하나님을 향한 새 질서를 만들고 계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할 수 있으면 예수님을 없애고 자신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스파이를 파견해서 당시 시대에 굉장히 민감한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궁지에 빠트리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바로 가이사에게 새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권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21,22절 말씀입니다. “21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는 상황이었다. 흔히 그렇듯 식민지배를 받게 되면 지배국에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세리들을 세워서 세금을 거둬들이게 해가지고는 일부를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바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돈문제 그러면 사람들이 가장 민감한 문제인 것처럼 당시에도 궁핍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돈문제는 상당히 민감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를 것이 없고 궁핍한데다 자기 나라에도 바치기 힘든 세금을 가이사에게까지 바치도록 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지금 서기관에게서 파견된 이 스파이는 이 사실을 교묘히 이용을 해서 예수님을 책잡고 죽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보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은 잘 섬기는 것 같은데 세상 법인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은 가볍게 여기거나 아니면 아예 가르치지 않은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묘하게 질문을 던져가지고 예수님을 궁지에 빠트리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쳐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이 질문에 가이사에게 세를 바쳐야 한다!!’ 이렇게 대답하면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어떻게 가이사를 섬길 수 있는가?’ 하면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는다고 반발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대답하면 예수님은 반역자로 몰려 당장 잡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도 세상의 질서도 모두 가볍게 여기시는 분이 결코 아니셨음을 보게 됩니다. 나라가 식민 지배를 받고 있지만 그 권력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 것은 은밀한 의미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당하게 된 형벌이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로마의 귄위를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예수님은 그 권위도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권위 아래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심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직장을 다니시는 분들이 조직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조직에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권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참 어렵습니다.

별 차이도 없는데 조금 회사 일찍 들어왔다고, 권위적으로 명령하고, 도저히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면 거기에 적응하기란 정말 죽을 맛입니다..

 

직장 전문사이트 <사람인>에서 설문조사를 한 것을 보면 현대 직장인 가운데 상사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이 80% 이상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상사, 무기력한 상사,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상사, 무조건 하라고 억박 지르는 상사, 언어폭력을 일삼는 상사, 사사건건 참견하는 상사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 성도는 그런 상사를 만나더라도 이러한 조직 문화를 일단 받아들이고 권위를 세우고 인정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이 세웠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땅에 오셨고 그 어떤 자에게 판단받지 않으셔도 될 분이셨지만 주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얻으시는 순간까지 이 땅의 질서를 따라갔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지 않는다면 철저히 상식과 법을 지켜가심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나라의 백성>

예수님의 대답을 들어보게 되면 “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24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6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굉장히 중요한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위한다 셈 치며.. 세상의 질서는 함부러 해도 상관없어!! 세상의 것은 대충해도 되!! 이런 식의 사고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교회를 향해서도 절대 덕이 될 수 없고 자기에게도 도움이 안됨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20여년 전에 다미선교회라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있었어요. 당시 1028일에 휴거(공중으로 산채로 들려올라가는 것)가 일어난다고 하면서 성경에도 없는 이상한 주장과 예언을 하여 수많은 사람을 현혹시켜 가지고.. 집팔고 논팔고 직장도 그만두고 학교도 그만두고 하면서 종말을 준비하도록 한 그런 일이 있었어요.. 결국 휴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때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허탈한 나머지 인생의 폐인이 되고 말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 어디에 종말을 준비하면서 세상의 것을 다 버리고 기도만 하고 전도만 하면 된다는데가 있습니까? 비록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우리가 처한 곳에서 최선의 삶을 살며 그곳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에 속해 있는 자인 반면에 또한 이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 나라의 백성으로 그 백성에 합당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예배를 드려야 하며, 열심히 기도도 해야 하고 교회봉사도 해야 합니다. 헌금생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자기를 위해서만 최선을 다해 쓰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세상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직장인은 직장생활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잘리지 않고 승진도 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원하던 대학도 들어가고 직장에 취업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애국,, 그러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면 그것으로 애국 다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애국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애국이 아닙니다. 애국은 정말 이 나라를 위해 우리가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돈도 벌고 최선을 다해 나라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때 그것이 애국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곳 중국까지 나와서 열심히 일하는 것 열심히 교회를 세워가는 것 그것도 애국하는 것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사셔야 합니다..

 

지난 20일 우리나라에 아시아로는 최초로 국제규모의 기구인 유엔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이 유치되었습니다. 유엔과 IMF보다 규모에서 더 큰 세계적 기구입니다.

이런 세계적 기구가 세워지면 우리나라 위상이 껑충 뛰어오르게 됩니다. 북한 이런 나라들이 함부러 우리나라를 넘보지 못해요. 국민들도 세계무대에 한발짝 더 다가가게 됩니다. 마인드를 세계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미 우리나라는 이 좁은 나라에서 UN 사무총장이나 세계은행 총재 같은 세계에서 걸출한 리더를 배출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기도만 할 뿐 아니라 기도에 걸맞는 사람이 되어 가기 위해 또한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 우리민족이 세계에서 복을 나누는 나라가 되게 해 주세요” “세계에서 뛰어난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해 주세요” “세계를 리더 할 지도자가 나오게 해 주시고 부흥의 시대를 이끌 나라가 되게 해 주세요그렇게 기도하면서 실제로 그런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런 자가 되도록 우리의 자녀를 기르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 없는 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의 자녀들도 충분히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향한 도리만 다하는 자가 아니라 이 세상을 향해 도리와 의무를 다하는 자입니다.

 

<세상에 비해 불리해도 형통함은 온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게 되는 딜레마가 하나 있다면 우리만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똑같이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성도들은 교회일도 하면서 세상에서 승진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 올인한 사람 같습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합니다. 주일도 없습니다. 주일도 자격증 공부하느라.. 자기 개발하느냐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도 하면서 이런 것들도 해야 하니 얼마나 불리합니까? 솔직히 그런 불리함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들은 너무 부러워 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한 기준만 있으면 됩니다. 세상 사람은 밤낮 모르고 세상적인 방법만 메달리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간다는 기준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출세 해 보려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해, 사람에게 줄을 대고 뇌물을 쓰고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부정직한 방법에 열심을 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노려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방법이 최선의 길이라고 보지만 우리는 그런 꼼수를 절대 부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 길을 가야 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세상적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약 이러한 세상적 꼼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능력과 지혜와 형통함을 주십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적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힘도 능력도 없고 빽도 없습니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선이라는 열심을 잊지 않고 믿음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삶을 다짐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자녀를 붙들어 역사하십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고전127~29) “27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땅의 기준으로 별것 아닌 환경에서 부름받았더라도, 하나님은 그 별것 아닌 하챦은 기준으로 세상의 더 나은 조건의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요셉>

제가 요셉을 보며 감동받는 것은 요셉은 정말 비천한 환경 가운데 부름 받았지만 그가 부름받은 그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온전함을 드러낸 사람으로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17살에 노예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주어진 환경에 불평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충성 봉사 합니다. 우리 같으면 골백번 도 더 마음을 바꿔먹을 수 있는 환경임에도 요셉은 그렇게 하질 않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하는 일을 바로 주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

보디발이면 보디발, 간수면 간수 앞에서 그는 주님께 하듯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섬깁니다..

 

비록 내가 지금은 노예 신분이지만 때가 되면 나도 높아질 때가 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인생을 보면 잠언 2229절 말씀이 떠오르니다.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할렐루야!!

한술에 배부른 사람 어디있습니까?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 일에 능숙한 자가 되는 것이고 그 일을 능숙히 하다보면 때가 되매.. 왕 앞에 설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힘드십니까? 조금만 더 참고 견디십시오.. 그리고 직장에서 일하는 것 바로 주께 하듯 해 보십시오.. 요셉을 생각하십시오.. 요셉보다 힘든 환경에 있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그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쳐야 합니다세상의 일은 속된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본인이 맡은 일 그것을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하며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의 생애를 보십시오. 성경은 이렇게 그의 생애를 정의 합니다. 39:2,3“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우리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일을 최선을 다해 아주 잘 함으로 영광을 드리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요셉의 이 일생을 자주 연상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 속한 지체들이 직장에서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힘들든 회사가 은혜의 지체들이 그곳에 근무하면서부터 형통함의 은혜가 임하게 하옵소서..

위기의 회사가 우리 성도들이 근무하고 그 회사를 위해 기도하면서부터 형통이 임하게 하옵소서

 

왜 안됩니까?(Why not?) 성도는 복의 근원인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인데.. 우리가 머문 이 땅에서 최선의 열심을 경주함으로 이런 은혜를 덧입을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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