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익한 종이라 | 운영자 | 2012-06-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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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7절~10절 무익한 종이라 지난 주 메스컴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형교회의 원로 목사님이 공개석상에서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준 것에 대해 회개하노라고!! 하나님과 사람앞에 용서를 구하는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큰 교회를 이루다 보면 받기 쉬운 유혹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교회는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회사나 기업은 자손들에게 물려줘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 회사를 잘 경영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교회는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절)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주체는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우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고, 다스리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방법으로 어떻게 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언제부터인가 세속적인 관점에 사로잡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 놓고 교회의 이름을 내고 사람의 이름을 내는 그런 모습이 있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의 일생을 보면 큰 실수 두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비뚤어진 젊음의 욕망으로 인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충성스러운 제자 우리아를 죽이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노년에 저지러게 된 실수입니다. 바로 교만의 죄입니다. 어떤 교만인가 하면 모든 이웃 나라가 다윗에게 복종하며, 조공을 바치고, 나라의 영토가 건국이래 가장 크게 확장된 시점에.. 다윗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죽기 전에 내 나라가 어느 정도인가 한번 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군대장관 요압을 시켜 전 국토에 인구조사를 실시하게 합니다. 인구조사 하나 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나쁜가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구조사를 하느냐가 중요한데 다윗은 인구조사를 통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했고, 백성 앞에 자신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다윗의 교만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그를 마음이 합한 자로 여기며 기뻐하셨고 그의 기도를 들으셨어요. 하지만 하나님 앞에 낮아질 줄 모르고 자신의 힘, 자신의 권세를 내세우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여지없이 그의 교만을 꺾어 버리심을 보게 됩니다. <높은 자가 되면 안됩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높아진 마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은 여지없이 그 사람을 낮추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높아도 낮아지면 하나님이 그를 더 귀하게 보시며 계속적으로 들어서심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높아졌어도. 아무리 힘이 있어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삼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경기도 안양의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러시아 모스코바에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가 전적으로 후원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수억이 넘는 돈을 들여 건물을 마련하고 내부공사를 완료해 설립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설립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목사님이 이런 문구를 보게 되었어요. 그 교회 입구에 “이 예배당은 ( )교회 ( )목사님과 성도님의 도움으로 세워졌습니다”라는 문구를 보고는 화들짝하여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당장 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만드신 분이 오늘 하루만 걸어놓겠다고 사정사정을 해서 그날 하루만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 아닐 수 없어요. 물론 그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목사님과 그 교회가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을까요? 그러나 그 노력과 수고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특별하다면 그렇게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역사가 특별한 것이지요.. 그 일은 교회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성도는 그 일에 쓰임받은 것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관점, 예수님의 관점>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낮은 자리로 내려가라’ 그러면 꽃 방귀를 뀝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논리는 낮은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자리로 나아가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큰 것을 보게 하고, 높은 자리를 부러워 하게하고, 높은 지위를 자랑하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너도나도 장 자리에 앉고 싶어 합니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합니다.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합니다. 사람에게 그렇게 비난을 받음에도 대통령이 되려고 합니다. 직장인들도 사원이 되면 과장이 되고 싶어 하고, 차장 부장 사장 회장... 그냥 평사원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에도 그런 현상이 있습니다. 영향력이 높아질수록 힘이 생기는 자리일수록 사람들이 용을 쓰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 교회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아십시오.. 예수님의 가르침은 높은 자리가 아닌 낮은 자리로 가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쭉 살펴보았지만 17장 1절부터 보게 되면 주님의 관점은 일관됩니다. 소자를 실족케 하지 말라. 네 형제 중 작은 자가 죄를 범해도 용서하라..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을 가져라. 오늘은 이어서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바로 종이 되라고 하시는 겁니다. 종은 자신의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고 낮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종의 자세는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교훈이기도 하십니다. <종이 되신 예수님> 우리가 잘 아는 빌립보서 말씀에 예수님에 대해 뭐라고 기록하고 있나요? (빌2:5~8절)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친히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이 되었고 자기를 낮추사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길이 인류를 살리는 길이요 구원할 길임을 아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이런 삶을 살라 하시는 것입니다. < 종의자세 >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종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종이 있는데.. 이 종이 하루 종일 바깥에 나가 밭을 갈기도 하고, 양을 치기도 하며 무척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고를 했음에도 그 주인이 하는 말이 앉아서 “이제 앉아서 좀 쉬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어디 이렇게 매정한 주인이 있습니까? 인정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주인이 아닙니까? 어디 그 뿐 아닙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나서도 “같이 먹자”이런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도리어 식사하는 동안 ‘옆에서 수종을 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을 시켜 놓고도 하는 말이.. 그에게 사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임에도 종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세요. “주인님! 나는 무익한 종인데 제가 할 일을 한 것 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당시 종은 오늘날의 비서와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종은 노예입니다. 종은 농사를 위한 가축과 마찬가지로 일하기 위해서 존재했습니다. 종을 굶주리게 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되지만 종이 일을 하고 왔다고 해서 특별히 주인에게 은혜를 베푼 것은 아닙니다. 종은 바로 일을 시키기 위해서 돈을 주고 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노예제도를 혐오합니다. 그러나 고대세계의 노예제도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드려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이미지입니다. 어떻게 충성해야 하고, 헌신해야하고, 순종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이미지가 됩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믿음을 더해 달라는 제자들의 부탁에 예수님이 겨자씨 한 알의 믿음만 가져도 뽕나무가 뽑혀 바다에 심기는 이적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겨자씨의 믿음은 생명을 얻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겨자씨 믿음은 영향력 있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사람이 변화 될 수 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남의 대중교회에 이범규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젊은 시절 놀음에 빠져 엄청 방황을 했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는 분이 있을 것인데 내기 화투에 빠지게 되면 눈에 불을 켜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덥빕니다. 이 분이 화투에 빠져있을 때 이틀밤을 자지 않고 눈도 깜박이지 않고 놀음을 했었답니다. 그런데 이분이 극적으로 복음을 받고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 받고 기도를 하는데 기도를 하면 왜 그렇게 잠이 오는지,, 놀음할 때는 하루고 이틀이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했는데 기도를 하면 한시간도 안되어 잠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매일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할 때 마다 찬송가 273(구331장)을 부르는데 얼마나 눈물이 많이 흘러내리는지.. “그 귀한 세월 보내고 나 이제 옵니다. 나 뉘우치는 눈물로 이제 옵니다” 이 기도 가운데 이분이 변화되어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에는 확실한 소속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거룩한 백성으로서 삶을 살아야 하는 소속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이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까요? 바로 본문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믿음을 가진 제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를 말해 줍니까? 먼저 첫째는 종의 신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종은 자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인의 것을 먹고, 주인이 주는 대로 살고, 주인이 주는 잠자리에서 자야하고,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하며, 주인이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것이 종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내 것이 하나도 없다는 철저한 종의 신분의식이 있어야 해요.. 여러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하나님 앞에서 내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종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적인 축복, 좋은 지위를 주셨을 때에 반드시 “하나님! 왜 저에게 이렇게 좋은 지위, 재물, 특권을 주셨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면서 그 질문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이런 귀한 것 주셨구나’라고 생각하시며 그렇게 살아가야 할 줄 믿는다. 우리 한국교회에 훌륭한 많은 장로님들이 계셨지만 특히 외정시대에 황해도 재령에 계셨던 정찬유 장로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수리조합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버셨고, 그 시대에 그 지역에서 가장 갑부였습니다. 장로님은 자기 집을 지으려고 재목과 모든 것을 준비해 두시고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어떤 분이 나타나서 한쪽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르치며 “저기 동쪽을 보아라. 허물어진 성전이 보이지 아니하냐”라는 음성이 들려 그 순간 잠이 깼습니다. 장로님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 하나님의 성전보다 내 집을 먼저 지으려고 하니 이렇게 보여 주시는군요”라고 하며 그 재목을 다 바쳐서 성전을 짓고, 그 당시 돈으로 3만 (현재 돈으로 20억 정도)원을 들여 예배당을 잘 지었습니다. 교회를 다 짓고 나서 교회에서는 “아무개 장로님 기념예배당”이라고 교회벽에 붙여 놓아서 이 장로님이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를 나오시지 않고 시골교회로 출석하셨습니다. 목사님과 교인들이 왜 교회에 오시지 않느냐고 묻자 장로님은 “나는 주님의 교회에 나가지 사람교회 안나간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은혜 의식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종에게는 보상심리가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 할 때에 언제 시험을 받습니까? 실컷 수고했는데도 교회와 목사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들 때.. 그때 시험들기 딱 좋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칭찬받고 인정받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십시오.. 마귀가 틈타기 가장 좋을 때가 바로 그런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의 예를 들어 주님이 설명하십니다. 여기서 종과 주인은 바로 성도와 주님과의 관계를 말씀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의무를 다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받으려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논리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이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은혜 때문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4장을 보면 24장로들이 금면류관을 쓰고 있는데 어린양이 나타날 때 그것을 어린양께 다시 돌려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예수님 믿으면서 이 땅위에서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상급을 받은 후라도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으니 하나님께만 영광을 받으시옵소서”라는 신앙고백의 모습인 것입니다. 저는 은혜의 모든 성도님들이 이런 마음의 자세로 교회를 섬겼으면 합니다. 우리가 일을 하다가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알아 주지 않아도.. 하나님만 영광받으면 됩니다!! 이런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마음 자세만 있다면 봉사를 함에 자신감이 생기고요.. 담대함이 생기고, 자유함이 생기는 거여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연예할 때.. 누가 알아주나!! 눈치보며 연예하나요? 아니죠? 연예는 사랑하는 그녀만 알아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의 자세로 주를 섬겨야 하는 것은 바로 연예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따라해 봅시다. “눈치 보면서 연예하지 마세요!!” 보상을 바라며 연예하면 불행해 집니다. 주를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종의 의무만 기록해서 매정한 주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 주님은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가 당신만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고 섬길 때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종이 되어 우리를 섬겨보셨기에.. 우리도 주를 위해 종처럼 섬긴다면 주님은 우리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어쩔 줄 몰라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종에게는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인의 것을 잘 관리한 후에 주인 앞에서 계산하고 결산해야 할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청지기입니다.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내 것이 무엇입니까? 내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 폰이 있지만 이 폰은 내 마음대로 줄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폰은 내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생명은 여러분의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내 생명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므로 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마음대로 못합니다. 자녀가 나쁜 길로 빠져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 불러 가신다면 붙들 수 있습니까? 붙들 수 없습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건강도, 명예도, 재산도 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명예를 하나님께서 떨어뜨리시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올리시면 올라가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고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청지기 의식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그 어떤 일이든.. 기쁨마음으로 충성하십시오..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주님이 맡기신 것으로 주를 위해 다 드리며.. 헌신 봉사하십시오.. 주를 위해 일할 수 있을 때 일하세요.. 나중에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할 때가 올 것입니다.. 내가 가르치는 주일학교에서, 목장에서, 성가대에서, 기관에서 이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아낌없이 섬기세요.. 후회함 없이 봉사하세요.. 제가 짧은 시간 목회했지만 어떤 분을 보면 정말 목사인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교회를 사랑하는 분이 계셰요.. 그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고 물질을 내고 땀을 흘려가면서 영혼을 돌보고 섬기시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이 이런 모습을 보신다면 얼마나 감격하실까? 생각해 봅니다.. <결론>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인 되신 예수님을 위해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아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구원자, 세상의 통치자, 지금도 살아계셔 세상을 다스리시는 우리의 주님.. 예수님을 위해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분을 위해 종으로 봉사한다는 것은 단순히 의무를 떠나 그것은 믿는 자만이 누리는 특권인 것입니다. 누구의 종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단순히 죄와 불의의 종이 되느냐? 아니면 주님의 종이 되느냐? 나의 종이 되느냐? 주인의 종이 되느냐? 우리가 주님의 종이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을 다 한 후에... 이런 고백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익한 종이오니..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일 다 한 후에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할 일 다 한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자랑할 것이 없는.. 봉사하는 그런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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