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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한알의 믿음 운영자 201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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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5~10절 겨자씨 한알의 믿음

 

<소원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소원이 있나요?

요즘은 이런 노래 잘 안 부르지만 과거 제가 어릴 적만 해도 국민들 사이에 많이 부르던 통일의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런데 요즘은 이런 노래를 잘 안 부릅니다. 왜냐하면 꿈에도 소원이 통일인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꿈에도 이루고 싶은 소원은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제 두 아들에게 너희들 뭐가지고 싶니? 물으면 대답이 장난감 가지고 싶다고 그럽니다.

조금 크면 뭘 가지고 싶을까요? 스마트폰 가지고 싶다든지 아니면 태블릿pc 이런 것 가지고 싶어 할 것입니다.. 어른들은 무엇을 가지고 싶나요? 집이나 회사, 부동산 이런 것을 가지고 싶어 할 것입니다.

이런 소원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땅에서 물질을 이용하고 누리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적인 욕망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가지면 또 하나를 가지고 싶고 하나를 이루면 또 하나를 이루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성도는 그런 욕망에 갇혀서 살아가면 안됩니다.

 

<세상적 소원의 한계>

세상적인 욕망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많이 가져도 인간 내면에서 생겨나는 문제는 해결하기 못합니다. 죄의 문제는 세상 것을 아무리 많이 취한다고 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공허합니다. 갈증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욕망으로는 인간관계 속에 생기는 갈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형제를 미워합니다.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저께 기사를 보니까 일산에 사는 어떤 부부가 공원에서 심하게 말다툼을 하다가 남편이 부인에게 찔려 죽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남편이 헤어지자고 하는 말에 부인이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건의 자리에 5살 먹은 딸이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인간이 가진 비뚤어진 욕망은 결국 파멸을 가져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성도는 이러한 세상의 가치보다 더 위대한 가치를 가지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 가치가 무엇인가요? 바로 믿음의 가치입니다. 성도는 육적인 소원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영적인 소원으로 만족할 줄 알고 영적인 소원으로 육적인 소원을 다스릴 줄 아는 자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한번 따라해 봅시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성도가 가져야 할 많은 소원 가운데 꼭 필요한 소원이 있다면 바로 이 소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예수님,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옵소서

오늘 여러분은 이 소원이 있나요? 여러분이 가진 믿음이 더해졌으면 하는 소원... 더 나은 믿음 더 큰 믿음에 대한 소원이 있나요?

 

<믿음이란>

누가복음의 또 다른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지나가고 있을 때, 갑자기 광풍이 일어납니다.. 그 때 예수님은 배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예기치 않는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배는 흔들리고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호수 가운데 있죠. 물은 차 들어오고 있지요. 바깥에서는 여전히 폭풍이 몰아치지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가운데 제자들이 급하게 주님을 찾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제자들의 부르심에 잠이 깨시더니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며 잠잠케 하시고는 제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 던지십니다...“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사실...이 말씀은 믿음 없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이 동일하게 던지시는 말씀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시련을 만날 때, 어려움을 만날 때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우리들을 향해, 주님이 던지십니다.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크고 작은 문제 속에.. 죽겠다고 한숨을 몰아쉬는 우리에게 주님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진일아,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제자들의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 되기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저에게도 믿음을 더해 주옵소서!!”

 

<믿음의 정의>

여러분, 믿음은 기독교의 근본이요.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이 시작되고 믿음으로 우리는 살아갑니다.. 믿음이 시작이요 과정이요 끝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져줍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 이 믿음의 정의가 루터와 칼빈의 심장에 불을 당겼고,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바로 믿음으로 받습니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 할렐루야!! 행위로써가 아니라 예수님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받게 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조건 보지 않으시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곳에서 어떻게 예배드릴 수 있나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대상도 없는 것 같은 이 곳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나요?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어떤 믿음인가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다는 믿음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되었기에 자녀된 자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 그 믿음으로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 나아온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 뿐 아닙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은 우리로 구원을 얻는 믿음을 말하는 것 뿐 아니라 이미 구원 얻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사는 믿음을 말합니다.

바로 우리의 선조들이 경험하고 증거했던 믿음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으로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419~22“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여기서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은 구원 얻은 백성이 가져야 하는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성도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의존하는 가운데 고백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죽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을 보세요. 다윗이 믿음이 돋보이는 장면은 우리가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거인 골리앗과의 전투입니다. 당시 수많은 이스라엘 군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하나님 유일신앙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대한 힘, 엄청난 문제 앞에 꼼짝달싹 못하는 겁쟁이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어나 그 믿음을 조금도 활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신앙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비록 어린 젊은이의 나이임에도 불과하고 자기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향한 농도 100%의 믿음으로 골리앗 앞에 나아갑니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상17:45~47)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다윗이 엄청난 위기 앞에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다윗의 손에는 물매와 물매돌 5개만 들려져 있습니다. 그 앞에는 거인 골리앗이 엄청난 무기로 중무장 한 채 서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싸움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싸움이 안되는 것 같은 그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맛썰 수 있는 자입니다. 믿음으로 맛서는 것입니다. 비록 내 힘은 이것 밖에 안되지만 하나님은 천하보다 크시기 때문에 하나님 백 믿고 원수를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입니다. 바위로 바위를 치는 것이 아닙니다. 도저히 안되는 것 같은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오늘 제자들은 이런 믿음 좀 가지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나아와 부탁을 합니다. 주님은 믿음 붙들고 살려고 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절대 외면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런데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대답은 참 의외에 대답입니다. 다음 대답을 읽어보십시오. 6절 말씀입니다.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여기서 주님은 제자들이 믿음을 더해 달라는 부탁에 겨자씨 한 알을 비유해서 믿음을 설명하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어도 기적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핵심이 바로 이 겨자씨 한 알 믿음입니다..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

우리 주님이 제자들의 믿음을 더해 달라는 부탁에, “알았다 내가 네게 더 큰 믿음을 주겠다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매우 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생각에 믿음을 큰 믿음, 작은 믿음... 많은 믿음 적은 믿음 이런 개념으로 바라 본 것 같아요. 그래서 큰 믿음, 많은 믿음이 있으면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많고 적음의 개념이 아니고, 크고 작음의 개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겉으로 측량할 수 있는 그러한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잘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겉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할 때, ‘하나님 저에게 큰 믿음을 주십시오. 산을 옮길만한 믿음 이야기 하니까 마치 태산처럼 큰 믿음이 있는 줄 알고 그것 주십시오그렇게 구하는데 주님의 대답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에 대해 겨자씨 한 알을 보고 배워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겨자씨가 무엇입니까? 이 겨자씨 한 알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1. 먼저 그것은 비록 작아 보이지만 생명력 있는 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그러합니다. 그것은 비록 작아 보여도 생명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게 겉으로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입니다. 겉모습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가장 결정적 차이는 무엇입니까? 생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요일5:11,12]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죽으나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은 자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11:25,26) 아멘~ 지금 죽어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거할 수 있는 생명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없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여러분, 마음 속에 이 믿음이 있나요? 이 믿음이 없는 자는 속히 믿음을 가지고 영생을 선물로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것은 겨자씨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운명을 좌우하는 차이입니다. 그것은 생명과 죽음의 차이요. 영생과 영벌의 차이임을 알아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이 겨자씨는 겉으로 미약하게 보이지만 그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큰 것임을 말해줍니다. 믿음이란 사람의 눈으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겨자씨가 겉으로는 눈에 보일랑 말랑해도 나중에 자라게 되면 3m 높이의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고 그들이 져서 사람들이 쉬기도 합니다.

그깐게 무엇을 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하지만 믿음은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6절하)

 

우리안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어도,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라 하였으면 그것이 순종하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뽕나무는 매우 흔한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뽕나무는 뿌리가 얼마나 견고한지.. 아무리 큰 폭풍이 밀려와도 뽑히질 않는 나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뽕나무의 뿌리가 뽑혀서 바다에 심기라고 하여도 그것이 순종하였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뽕나무의 뿌리가 뽑히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데.. 그것을 식물이 살 수 없는 바다에 심겨지게 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것은 기적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불가능하게 보아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대단하다는 것은 내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이 대단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때 아들을 낳을 것임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을 때,, 하나님은 100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없는 것도 있게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에, 불가능 하게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하는 그 부탁에 주님은 뭔가 특별한 것을 더해 주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지금 제자들이 가진 믿음의 비밀을 깨우쳐 주시고 계십니다.

네가 가진 믿음을 바로 알아라는 것입니다. 네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놀랍고 큰 능력을 가질 수 있는지 깨달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환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무엇인가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늘로부터특별한 어떤 능력이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능력을 구합니다.

 

그러나 정작 내가 가진 이 믿음이 얼마나 큰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미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길 원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있는 믿음이 능력으로 역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더 큰 믿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전혀 순종하지 못하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대로 순종하면 놀라운 기적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시는 장면을 보면 우리는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고 따른다고 주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한 순간은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입니다.

베드로야!!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이때 베드로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5:5)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결론>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여러분, 뽕나무가 뽑혀 바다에 심기는 기적을 경험하고 싶으십니까?

여러분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기도의 제목이 있나요?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까?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은 생명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바라보지 않고 내 경험과 내지식 내 노력만 의지하면 절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나의 일을 하면 내 능력 까지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 만큼 할 수 있습니다.

 

이 은혜의 교회가 세워질 때 저는 저의 능력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저의 경험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사람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가 사람 바라봤다면 교회를 시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나라도 순종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 믿음 따래 행한 것 뿐인데 하나님이 교회를 이끌어 오셨음을 고백합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 여러분, 이 믿음을 마음껏 누리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십시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여러분 인생에 기적과 같은 하나님 능력을 마음껏 맛보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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