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김평화목사 설교) | 운영자 | 2012-06-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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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욘 4 : 6-11 제목 : 죄인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 주제 : 하나님은 죄인을 간절히 구하기 원하신다. 주님안에서 다들 평안하셨습니까? 저는 지금 복건성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평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소주한인 은혜의교회 성도님들 앞에 설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섬겨주신 소주 한인 은혜의 교회의 섬김과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도입> 3년년전 안식년때 한국에서 한번은 핸드폰을 고치러 서비스센타에 갔다. 작은 것 하나 고치러 갔는데도 황송할정도로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도와주었다. 그때 고객감동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이 회사가 달려온 결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회사가 그런 광고를 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객감동에서 더 나아가 고객졸도까지 가야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고객감동과 같은 영업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고객의 마음을 먼저 읽고 헤아리는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물건을 팔기위해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이렇게 애를 쓴다면 그리스도인인 저희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는데까지 나아가야한다. 하나님은 이런자를 무척 기쁘하십니다. 이 시간은 요나서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 마음을 품고 사는지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전개> (욘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여명이 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니느웨의 위치 - 현재 이라크 북부 모술 인근지역(자이툰부대 상주) *당시의 니느웨 - 초강대국 앗수르의 수도 - 교만이 하늘끝을 찌르고 잔인하기로 소문난 앗수르인들 - 권력과 돈이 모인곳임. -> 쉽게 썩음 : 심한 타락의 도시가됨. 그래서 이런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요나1:2)“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 하나님은 심판가운데 있는 니느웨인들을 구하고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요나를 통로로 선택하신다. 그런데 가끔 이 통로가 말썽을 일으킨다. 그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거부한다. -니느웨의 반대방향인 다시스로 감 (스페인쪽으로 , 지중해 방향, 서쪽으로 / 니느웨는 동쪽방향) -요나서를 읽을때마다 드는 생각 : 요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다르다는것. 예)사춘기를 심하게 겪는 자녀의 마음과 부모마음이상의 차이 다 아시다시피 요나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후 큰 물고기 배속에 들어가는 사건을 겪은후에야 비로소 하나님말씀에 겨우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나가 니느웨에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놀랍게도 왕부터 시작해 모든 백성이 베옷을 입고 자신들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사상 초유의 니느웨 대 회개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예)평양 대 회개운동보다 더 대규모(왕에서 짐승까지였으니) 이런면에서 성경학자들은 이 요나서를 신약시대 선교의 예언서요 구약의 사도행전, 구약의 선교행전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본 요나는 기쁘하기보다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도리어 화를냅니다. (요나4:1-3)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것보다 죽는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읽는 참 당황스러워지는 말씀입니다. 예)시장에서 장난감 사내라고 생떼를 쓰며 앙탈하는 4살짜리 아이의 모습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몰락하는 니느웨를 꼭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니느웨가 보이는 동쪽기슭에 나뭇가지로 만든 텐트를 쳤습니다. 그래도 이 나라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실낯같은 기대를 안고 자리를 잡았다 (욘 4:5).‘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하니라’ 그런데 저희들이 요나를 불순종했던자, 하나님앞에서 억지를 부리는 자라고 치부하기전에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저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부하는 이유(선민의식과 강한 민족감정) *이스라엘 상황 -앗수르, 바벨론, 애굽 : 3강대국의 세력대결가운데 이스라엘 *지도사용 : 고래사이에 새우같은 존재(고래싸움에 새우 등터지는 일 당함)
*성경의 사건 : 히스기야왕때의 이야기 -(왕하 18:13-16) “히스기야 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 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13) -> 궁궐의 모든 은과 심지어 성전문과 기둥에 입혀놓은 금까지 다 긁어 갔습니다.(15-16) *예수님의 비유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 밭에서 보물을 발견하면 재산을 팔아 밭을 사지 않겠는가의 배경설명 *이런 역사들을 통해 심한 민족감정, 개인감정이 깊음 (지금도 :이라크/이란) *그런데 요나의 태도를 인간적면으로만보면 지지받을만한 태도임. 자기민족을 그렇게 괴롭힌 자들의 멸망을 원하는 요나는 애국자?매국노? 예)일본의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를 규탄하면 애국자?매국노?
*요나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한국인의 입장과 비슷함.(민족적인 감정) -지도사용설명 : 중국(대륙세력) - 한국 - 일본(해양세력) 일본을 친다는 명목으로 중국이 침략하기도했음. ⇒ 중국의 침략(900번이상) : 여인들이 잡혀감 / 세자책봉도 눈치봄 오랫동안 조공을 바침 -> 사극보면 화남. ⇒ 알게 모르게 정치, 경제적으로 은근한 압력들이 대단함. -만약 요나선생님이 이 자리에서 이 말을 듣는다면 저희들과 함께 맞장 구를 치며 충분히 공감할 공통점이있다. *개인적으로 안좋은 감정이 생길수 있는 나라임(개인적인 감정) -중국에 직접 살기 때문에 더 중국이 싫어질수 있음 : 상처, 따돌림(현지학교), 결정적인 상황에서 이용당함 / 오래살수록 가까워질수록 상처도 각오해야함 / 사역자도 마찬가지 상황 -4년의 중국생활을 하고 빈털터리로 돌아가는 어느분의 말씀 ->‘ 남은건 악밖에 없네요 ’ -중국의 언어, 문화, 음식을 넘는것보다 때로는 개인적인 감정의 벽을 넘 는것이 더 힘듬. 부인하고 싶지만 많은 경우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개인의 감정, 민족, 국경을 훌쩍 뛰어 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다. 오늘 본문말씀에 바로 이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욘 4 : 6-9)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나님이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 합당하니이다.“ 뜨거운 날씨에 니느웨의 멸망을 기대하며 앉아있는 요나를 위해 하나님은 박넝쿨을 준비하셨습니다. 시원해진 요나는 무척 기쁘합니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에 하나님께서 벌레를 보내 박넝쿨을 시들게 하십니다. 그리고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지중해의 동풍(열풍) 시로코(Sirocco)라고 불리우는 동풍은 북아프리카에서부터 지중해 연안으로 불어오는 열풍이다. 시로코가 불면 기운이 급상승하고 때로는 밤에도 기온이 올라가 대낮의 기온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한다.(심한 열대야)
더운 태양아래 요나는 급기야 정신이 혼곤해 졌습니다.(더위먹음) 니느웨의 멸망을 보려다가 도리어 자기가 죽게 생겼다. 그러자 또 하나님께 화를 내며 말한다. “죽는게 사는것보다 낫겠습니다.” (습관적인 말투) 이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네가 이 박넝쿨 때문에 나에게 화를 내는것이 맞느냐? 요나활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이제는 식식대며 하나님께 대어든다. (전형적인 하극상) (사극이라면 아마 옆에 있던 대신들이 이렇게 말)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 따위 말버릇이냐.여봐라 끌고가 메우쳐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요나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교법까지 사용하시며 항변하는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것인지 좀 헤아리기를 바라시면서 말입니다. (10-11)“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여명이 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 할말 없음. 이렇게 요나서는 끝남. 저희들이 이 요나서를 통해 꼭 붙들어야할 중요한 것중의 하나는 비록 죄인일지라도 민족과 국경을 초월해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하나님과 동일한 마음을 품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교적인 마음이고 선교의 출발점입니다. 이런 마음을 품고 기도하며 사는 사람의 신앙은 건강하고 빠르게 자랍니다. 예)선교와 개인신앙의 성장관계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은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이땅의 디아스포라 한국인들과 더 나아가 이땅의 많은 중국영혼이 속히 주님앞으로 돌아오는것입니다. 바로 2000여년전, 이 마음을 품으신 예수님께서 저희들을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저희를 사랑하는 마음에 사무쳐 그분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 형틀에 던지셨습니다. 그리고 끔찍한 심판가운데 있는 저희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제, 이렇게 구원받은 저희들을 통해 민족과 국경과 심지어 인종까지 초월해 잃어버린 자들을 속히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비록 여러 가지 장벽이 있다할지라도 훌쩍 넘어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만으로는 어렵다. 성령께서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입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 마음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이 마음을 부어주실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자를 찾고 계십니다. <결론> 아무쪼록 이 아침에 여기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주인공들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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