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넬료의 가정처럼 | 운영자 | 2012-06-27 | |||
|
|||||
고넬료의 가정처럼 행10장 01절 ~ 8절 저는 어릴적부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태어날 무렵 저희 동네에 교회도 함께 세워졌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와 인접 동네 중간 지점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부모님과 4남매가 있었는데 누님들이 가장 먼저 신앙생활을 했고 저는 누님을 따라 거의 반강제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어린 제 가슴에 복음이 심기어지고 믿음이 생겨서 스스로 신앙생활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제가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한 것은 초등학교 때입니다. 그 때 어린 저의 마음에 신앙생활은 저 혼자만 해도 되는 것이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좀 시근이 들고 나니까 ‘가정’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정이 하나가 되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은 진로를 선택할 때였습니다. 저는 신학을 하고 싶었는데 저희 부모님은 반대하셨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찬성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길을 가려는 제 마음만은 이해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때 제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 부모님의 영혼구원을 위해 참으로 기도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을까요? 그런 기도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저희 아버님은 직장을 그만두시자 바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신앙으로 하나된 것이 우리 가정에 참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을 하고 목사를 하고 있는 이 일이. 만약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채 있었다는 평생 저는 불효자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모두 예수님을 믿고 나니 저는 자랑스런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저의 평생기도후원자가 되었어요. 어디 그뿐 아닙니다. 가정의 대소사에 항상 하나님이 우선입니다.. 옛날에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였다면 이제는 예배드리기 위해 모이고, 굳은 일이 있어도.. 항상 하나님께 합심하여 기도하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이번에 저희 아버님께서 대장암 내시경을 하고 이상증세가 보여 조직검사를 했다고 말씀 드렸었는데.. 이번에 결과가 좋게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희 어머님과 통화를 하는데 결과가 좋게 나온 것이 기도 응답이라고 말씀하시며 얼마나 기뻐하시던지요.. 더불어 이번기회에 아버님께서 하나님 바라보는 신앙이 놀라보게 변화되었다고 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환란을 주심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연단하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5월 가정의 달 마지막 주일입니다. 여러분 가정 올 5월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희 가정은 큰 변화는 없지만 그래도 부부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자식에게 화내는 것을 절제하는 그런 훈련도 한 것 같습니다.. 또한 아침저녁으로 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하고 들려주는 그런 시간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식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자식과 함께 기도하는 그런 훈련도 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비단 5월만이 아니라.. 평생을 걸쳐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 이 가정을 홈 스위트 홈이 되도록...Happy Home 되도록 함께 노력하는 시간이 되길 축원드립니다.. 아멘~ <고넬료> 오늘은 성경 안에서 가장 모범적인 가정 중 하나인 ‘고넬료의 가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가정의 모습을 통해 우리 가정을 조명해 보고 더 아름다운 가정으로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는 어떤 사람일까요? 1절을 봅시다.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고넬료는 이스라엘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인 가이사랴에 주둔하던 이달리야라는 로마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백부장은 말 그대로 100명의 군인을 통솔하는 장군을 말합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중대장급인데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였으니 그 권세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들은 아주 잔인했습니다. 정복자로서 횡포를 부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넬료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식민지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해 환상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누가 고넬료에게 신앙을 전수해 주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유대인에게서 하나님 섬기는 신앙에 대해 전수받았고 그 신앙에 몰입하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여타 일반적 로마장교라면 유대교인을 하대하고 무시하기 쉽상인데.. 종교심이 있는 이 고넬료는 경건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고 그 가르침에 심취하게 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신앙이 나중에 베드로를 만나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으므로 꽃을 피우게 되지만 그가 처음 믿은 믿음의 삶과 그 가정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고넬료의 삶> 저는 이 고넬료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형편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고넬료처럼 우리도 온 가족이 외국에 나와 생활하지요. 타문화속에서 살아가야 하지요. 좀 쓸쓸하고도 외롭지요.. 상대적으로 현지인들보다 누리면서 살아가지요... 저는 이런 환경 속에 고넬료가 만난 하나님.. 고넬료가 만난 예수님을 우리들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가 만들어 갔던 행복한 그 가정을 오늘 우리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아멘~ 자 그러면 고넬료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믿음의 가정은 어떤 가정일까요? 어떤 가정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의 모습일까요? [1] 신앙이 있는 가정 2절 전반부에 보면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넬료는 혼자만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다 함께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합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가정 행복의 기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온 가족이 예수님 믿는 것이 행복의 기초가 될까요? 그것은 우리 인생이 신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 지붕 아래 믿는 신이 두 개라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신앙과 삶은 함께 가는 것인데..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대화가 제대로 되겠으며, 뭘 해도 하나가 되겠습니까? 그게 얼마나 힘들고 불편한지 모릅니다. 저희들도 온 집이 예수님 믿기 전에는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릅니다. 특히 명절이 되면 부모님은 제사를 지내야 마음이 편한데 저희들은 제사를 지내는 것이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래서 타협점으로 일전에는 제사상은 차려놓고 절은 안하는 그런 애매한 일이 벌어졌어요. 그런데 나중에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명절되면 그런 갈등없어지고 하나님께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니 얼마나 좋은지요... 하나의 예를 들어서 그렇지 신앙이 다르게 되면 오는 갈등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남편은 주일날 여행을 가고 싶은데 다른 가족들은 교회 예배드리러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신앙이 다른 가정을 보고 뭐라고 말씀하신지 아세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 신앙이 통일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불신앙으로 통일하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죠. 그것은 다함께 멸망하는 길입니다. 신앙은 내세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고 결정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그렇지, 사실은 현세보다 내세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으면서 다음 세상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가장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지난 주에 저희교회 성도님 회사의 직원이랑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청년이 혼자 앉아 있길래 제가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 싶어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 젊은 청년은 완전히 불신자였습니다. 청년이니 얼마나 궁금한 것이 많았을까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이야기의 결론은 내질 못했지만 제가 그 친구에게 의미 있는 말 한마디 해줬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말미암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는 분명한 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바로 사는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지한 가운데 살아가다가 멸망하는 인생만큼 어리석은 인생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에는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궁극적으로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어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이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전번에 살펴봤던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는 그것을 분명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비참한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았기에 천국에 들어가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부자는 모든 게 다 있어도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없습니다. 돈을 의지했지 죄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죽어서 음부에 들어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 음부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아브라함에게 요청합니다. 나사로를 시켜서 물 한 방울만이라도 갖다가 혀에 축여달라고. 그러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합니다. 이 둘 사이는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큰 구덩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세상에 있는 자기 형제들에게 이 비참한 사실을 알려줘서 제발 오지 않도록 전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거절당합니다. 얼마나 비참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온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이 가정복음화는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해 시작됩니다.. 그 가정에 예수님 제대로 믿는 한 사람만 있어도 복음은 그 가정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해 봅시다. “나는 우리 가정의 제사장이다” 내가 제사장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가정의 제사장이 되어 모든 가족의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께 나아가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십시오.. 때가 되면 반드시 구원하실 것입니다. 아멘~ 한 피를 나누고 한 지붕 밑에 살아가면서 하나는 천국, 하나는 지옥 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영원한 이산가족’이 되는 겁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 할 줄 믿습니다. 물론 선조로부터 신앙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으면 참 좋겠죠. 그러나 초대신앙도 축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초대신앙의 경우 시험도 많고 갈등도 많지만, 그래도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몰라요. 지금까지 대대로 내려오던 불신앙의 고리를 끊고 나로부터 앞으로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자자손손 믿음의 가문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이를 위해 특별히 자녀들에게 신앙을 잘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산 물려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공부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 물려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조금 주는 것이다. 공부시키는 것은 많이 물려주는 것이다. 신앙을 물려주는 것은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부디 여러분의 가정이 고넬료 가정처럼 온 가족이 자자손손 예수 믿고 복을 누리는 가정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사랑이 있는 가정 본문 2절 다시 보면 “온 집안과 더불어” 그랬습니다. 이 말은 온 가족이 신앙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더 나아가 한 마음 한 뜻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가득한 화목한 가정이었음을 의미합니다. 행10:24 보면 사람을 보내서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했을 때 일가친척까지 다 모여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정도면 화목한 가정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모릅니다. 저희 가족이 일년에 한번씩 한국에 가면 (중국에서 저희들이 왔다고)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저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지난번에는 경주에 콘도를 빌려가지고 거기서 먹고 자고 함께 지내다가 왔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가정은 하나님의 마지막 창조물이며,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한번 따라해 봅시다. “가정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창1:27 보면 인간을 창조하되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가정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고 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그냥 좋았더라고만 하셨는데 가정을 만드시고는 그 완벽함에 심히 좋아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만드실 때 행복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아가기만 하면.. 가정이 천국과 같이 아름답고 행복해집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살아가면 가정은 지옥과 같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뭐겠습니까? 한 마디로 ‘사랑’이죠. 사랑으로 살기만 하면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비유컨대 ‘가정의 산소’와 같은 것입니다. 새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입니다.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것입니다. 가정에 사랑이 없으면 질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위기와 어려움이 있어도 가정에 사랑이 있다면 가정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가정들 가운데서도 과거 지옥 같은 고통 속에 있다가 예수 믿고 변화되어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천국 같은 가정으로 변화된 케이스가 적지 않으실 겁니다. 제가 오늘 칼럼에 적어 놓았지만 현대인이 만나는 가정 파괴의 현상 속에 이 가정을 지키려는 한 선배가 있었습니다. 가정은 이루기는 쉬워도 가정을 지키기란 참 힘듭니다..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도 자기 중심적 죄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선배가 장및빛 환상을 가지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한 후에 자신의 죄성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식을 낳았지만 나중에 이 죄성 때문에 가정이 깨어질 위험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 본인이 잘못한 것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사모님은 자식을 두고 미국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는 절대 이혼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이혼을 하지 않고 부인이 다시 돌아오기를 노심초사 기다립니다. 그런데 한번 입은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습니다.. 그러기를 벌써 7년... 그동안의 세월은 정말이지 죽기보다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선배는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기다립니다.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이 만져주셨듯이 부인의 마음도 만져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결국 미국에 계신 사모님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찾아가게 되는데 사모님이 받아줄지 말지도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거기서 하나님이 이 두 사람을 각자 만져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 십자가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실수와 잘못에도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을 아름답게 여기고 간직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아멘~ 그러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 사랑부터 실천할까요? 저는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관계회복의 간편한 실천을 하나 말씀드리려 합니다. 어렵지 않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그러나 귀한 것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말이 뭐 대수냐!! 그러시는 분 계십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는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 때문에 가정의 행복의 행복이 회복되기도 하고 행복이 깨지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사랑의 언어가 얼마나 부족한지 모릅니다. 이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사실은 엄청나게 큰 문제입니다. 제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언어에는 하나님이 신비로운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한마디로 천지만물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말 한마디로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셨고 풍랑을 잠잠하게도 하셨습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좋은 말을 표현해 보십시오..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며칠 전 저희 큰 아들이 학교에서 선생님께 꾸중 듣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저에게도 꾸지람을 들었던 지라 무척이나 낙심되었는지 평소 때 그러지 않던 습관이 나옵니다. 저에게 전화를 해서 배가 아파 집에 조퇴해야 겠다는 겁니다.. 제가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을 만나보니.. 아주 중요한 시간에 옆친구랑 장난을 쳐서 야단을 받은 것입니다.. 4명의 친구가 함께 받았는데 유독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선생님 보는 앞에서 저에게 오더니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겁니다. 눈치를 채고는 아들에게 괞챦다... 아침의 일도 괜챦고 선생님께 야단먹은 것도 괞챦다고 말해 줬어요. 그러더니 금방 좋아져서 다시 교실로 가는 것을 봤어요.. 여러분 가정에서 이런 말들을 많이 해 주십시오.. 그 언어가 사랑을 싹트게 하고 관계를 회복시키고 행복을 가져올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서 어머니가 헨드폰을 구입해 딸에게 문자메시지 보내는 것을 처음 배워 가장 먼저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여보 사랑해!! 그런데 문자가 날아가자 마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 지금 뭐 하는 거야?” “뭐긴요, 나도 문자 배웠지” “근데 왜 ‘여보 사망해’라고 보낸 거야?” “예? 나는 ‘여보 사랑해’라고 했는데 ... ” ㄹ자판 누를 걸 옆에 있는 ㅁ 자판을 잘못 눌렀던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한 실수였습니다. 이처럼 어색하고 서툴더라도 자꾸 표현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가정에 사랑이 충만해 질 것입니다. [3] 사명을 다하는 가정 본문 2절을 다시 보면 하반 절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고넬료가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랬습니다. 그의 가정은 받은 축복을 이웃과 나누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을 뿐 아니라.. 믿음대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힘과 축복을 자신만을 위해 섰다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나누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22절에 보면 이 고넬료가 유대 모든 사람에게 칭찬이 자자한 자였다고 소개합니다.. 얼마나 멋있는 가정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영향력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풍조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리더해 가는 것입니다. 저는 은혜의 식구 가정이 정말 이런 가정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가진 것으로 자기 배만 채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것으로 이웃과 나누므로 이웃에게 존경받고 칭찬받는. 그래서 당신이 있음에 이 동네가 행복하고 이 마을이 행복해요. 당신은 우리 마을의 보배입니다.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는 진짜 예수 잘믿는 가정입니다. 고넬료는 구제만 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통로가 되어 복음을 나누는 것도 보게 됩니다.. 24절을 보면 이 고넬료의 집에 베드로가 오게 되는데 베드로가 방문했을 때, 그의 일가친척들은 물론이고 친구들까지 불러 모아놓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 귀한 가정아닙니까? 이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어요. 고넬료가 이미 복의 통로가 되어 있었기에 가족 친지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믿고 그가 믿는 하나님을 자기도 믿고 싶기 때문에 그가 그 귀한 자리에 초청했을 때 모두 응했던 것을 봅니다. 여러분, 전도는 말로도 되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행함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존경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먼저 겸손하십시오. 먼저 베풀고 먼저 희생하십시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우리가정을 부르셨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되라!! 하시고 축복의 통로가 되라 하십니다.. 은혜의 교회 표어처럼 복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기 바랍니다.. 대단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예수 믿고 우리 가정이 예수믿는 가정이고, 우리 가정이 사랑으로 충만하면 누구나 이 복을 나누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우리의 가정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자자손손 복을 받고, 받은 그 복을 자자손손 나눠주며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