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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를 위한 준비 운영자 201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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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61~9절 다음세대를 위한 준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시대를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은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나 단체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하면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009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평균 수명이 남자가 78.3, 여자는 85.8세라고 합니다. 그리고 평균 퇴직 연령은 56.3세라고 합니다. 이를 놓고 보면 사람이 태어나서 27년은 공부하며 직장을 준비하고 27-28년 정도를 직장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25년 정도는 퇴직하고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퇴직한 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시간도 만만치 않게 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살아가야 할 시대는 이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퇴직 이후를 위해서도 잘 준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면 망합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였고, 저명한 경제사상가인 <짐 콜린스>가 쓴 위대한 기업은 어떻게 망하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한 때 세상을 주름잡던 기업들이 몰락하는 과정을 적어놓았습니다. 거기에 보면 기업이 망하는 단계가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우선 최고의 기업이 되면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원칙 없이 욕심을 부리는 단계>입니다.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자기 분야도 아닌 곳에 준비 없이 대량 투자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금방 위기를 만납니다. 그러나 <위험과 위기를 깨닫지 못하고 부인하는 단계>가 그 다음입니다. 그 후 뒤늦게 위기를 깨닫고 허둥대면서 <구원투수, 해결방법을 찾아 헤매는 단계>가 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회생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단계>가 옵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게 끝납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잘 되는 기업이 현실에 도취된 나머지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면 몰락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코닥 카메라>는 한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필름 회사였습니다. 코닥은 1880년대에 유리판 필름을 개발한 이후 카메라와 필름 업계를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코닥은 너무 현실에 도취된 나머지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올 것이며, 그 때가 되면 자신들의 주력 상품인 필름이 필요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현실의 명예와 부에만 안주했던 것이지요. 결국 이 코닥은 서서히 사람에게서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부자라고 자만하면 안 됩니다. 가난하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준비하지 못하면 끝납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도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면 미래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래서 <부도 3대를 못 가고, 가난도 3대를 가지 않는다>는 란 말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공의 도취가 바로 몰락의 지름길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성공에 도취되지 않고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미래를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그것에 적응하면 계속 흥왕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앞으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새로운 먹거리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에너지를 비롯하여, 해양산업, 고속철도, 로봇, LED 산업, 2차전지, IT산업 등을 선정하여 최선을 다해 투자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도 이에 발맞추어 심각하게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70-80년대 큰 부흥을 경험했지만 사실 미래를 위한 대비와 건강한 투자가 부족한 것만은 사실이었어요.

 

한국 교회가 했어야 할 건강한 투자란 무엇을 말합니까? 지금 모든 사람들은 웰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웰빙시대에 웰빙하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몸집만 불리는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웰빙하지 못하는 소외층을 찾아 품어 주어야 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발생을 하나요? 정부가 일일이 그것 해결해 줄 수 없어요.. 교회가 그 문제를 찾아 나섰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교회는 이 사회에 필요한 공동체로 존경을 받았을 것입니다. 요즘 들어 큰 교회마다 그런 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늦은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준비하는 최적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재물과 시설을 준비하는 것은 나중 문제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과 놀라운 시설이 준비되었어도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서구 구라파에 그 멋진 예배당과 부가 준비되었지만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었습니까?

가장 중요한 미래 준비는 사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가정에는 건실한 자녀들이 있어야 합니다. 학교는 건강한 학생들로 넘쳐나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학교가 부흥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은 우리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들은 미래를 위해 사람을 준비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적으로 보면 저출산이 인해 매우 심각합니다. 아기를 낳지 않습니다. 또 어렵게 낳아도 그 자녀들이 사회의 타락한 문화 속에서 죽어갑니다. 정신과 영혼이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어느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 전체의 문제요,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우리 자녀 세대 전체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의 세대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딜타이>는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 성장하지만 이전 사람들과는 다른 정서적, 사회문화적 특징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세대차이라고 합니다.

 

제 나이 때는 배낭메고 도시락 메고 다니며 타오르는 꿈을 안고 사는 젊은이여~ 우리 모두 함께 흥겨웁게 노래해요~” 이런 노래 부르면서 낭만을 꿈꾸었고, 젊음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노래에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다기보다 좋아하려고 해도 좋아지지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 세대 사람들은 요즘 청년들이 좋아하는 노래나 토크쇼를 들으면 시끄럽다는 생각만 듭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 세대가 가지는 사회문화적 특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요즘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있으십니까? 요즘 소위 <유비 노마드족, Ubi Nomad>이 생겨났습니다. “디지털노바드, 잡노바드족이라고도 하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 어디서든지 네트워크에 접속 가능해지면서 이제는 사무실에 앉아서만 일을 보는 게 아닙니다. 이제는 스마트폰이나 테블릿 pc, 길거리를 가면서도. 기차 안에서도 업무를 처리합니다.

 

타임(Time)지가 2010년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이제 나이 겨우 28세 밖에 되지 않은 <마크 주커버그>란 젊은이입니다. 그는 2011년 현재 무려 21조의 재산을 가진 세계 9번째 갑부입니다. 그가 만든 <페이스북>은 전 세계적인 열풍을 몰고 왔습니다. 젊은이들은 그 속에서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성 세대는 이런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국에 계신 저희 아버님은 제가 전화를 하면 한 5분만 지나도 빨리 끊어라!! 전화비 많이 나간다!! 그럽니다.. 070으로 전화하면 시내통화료밖에 안나간다고 그렇게 설명을 해 드려도 그것이 이해가 안되시는 겁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전세계로 네트워킹하면서 무료로 서로 통화하고 사진도 실시간 주고 받고 화상회의도 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이런 사회 문화적 특징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해해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숨겨진 위험성>

그런데 문제는 이런 문화가 좋은 점도 있지만 또한 그 문화속에 숨겨진 무서운 독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젊은이들은 가상 공간에서 많은 친구를 만나지만, 실제로 인생을 함께 할 친구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인관계를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예절과 도덕을 잘 모릅니다. 그 문화는 영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말초적이고, 즉흥적입니다. 그리고 타락과 방종에 무한정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단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사단의 노예가 되어 멸망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서울 신촌 도시한복판에서 대학생이 흉기에 찔려 처참히 살해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원인을 추적해 보니까 이 사람들이 네크워킹을 통해 악령 귀신같은 것을 숭배하는 그런 사령카페에 가입했다가 그런 일을 저질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시대에 점점 이런 가상세계와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문제점들이 대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과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런 젊은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을 어떻게 준비시켜서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심각한 것은 교회입니다. 가정은 좀 낫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부모와 통하든 안통하든 그들은 피로 맺어졌기 때문에 가정의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국가도 그렇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특징이 어떻든 그들은 대한민국 안에 있습니다. 가정이나 국가는 벗어날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싫든 좋든 그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싫으면 떠날 수 있습니다. 이미 어린이, 학생, 젊은이 세대는 교회를 떠났거나, 교회 안에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기독교인이 전 인구의 20% 정도 된다고 합니다만, 청소년들은 5%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대로 10-20년을 지나면 한국 교회는 인구 대비 5%의 초라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기서 우리에게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 전략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최고의 전략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의 사회문화적 특징들은 계속 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사회문화적 특징들은 오래지 않아 낡은 것이 될 것입니다. 현재의 젊은이들도 얼마 후에는 그 후 시대를 이해하기 힘들 때가 올 것입니다. 그들도 세상에서 소외되어 고통 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심취했던 것들이 자신들을 구원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늘 변하고, 문화는 늘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변하는 것으로 승부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우리는 시대가 변해도, 사회와 문화가 변해도 변치 않는 영원한 것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축구를 보세요. 축구도 자꾸 변합니다. 한 때 네덜란드는 체력을 기반으로 전 선수가 수비를 하고, 공격을 하는 <토탈 싸커>를 유행시켰습니다. 그러다가 프랑스는 자로 잰 듯한 정교한 패스로 문전까지 쇄도해 들어가다가 예술적인 슛으로 골을 넣는 <아트 싸커>를 선보였습니다. 요즘은 스페인 바로셀로나와 같은 점유율 축구가 대세입니다. 이처럼 축구도 변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선수들의 체력과 기본기입니다. 체력과 기본기가 없으면 그 어떤 전략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체력과 기본기에 해당하는 것을 우리 자녀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것만 잘 갖추어지면, 나머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체력과 기본기에 해당하는 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모세의 시대에도, 다윗의 시대에도, 이사야의 시대에도, 예수님 시대에도, 종교개혁시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생명의 능력입니다. 시대가, 문화가, 기술이,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성도가 갖추어야 할 기본기요 체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바로 이것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영적 체력과 기본기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본문 설명>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을 강조한 부분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엄청난 문화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진한 양과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애굽 사람 밑에서 430년을 지냈지요. 애굽에서 나왔지만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지요.. 문화가 무엇인지,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지. 어떤 습관을 따라야 할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그런 시점에 하나님이 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바로 말씀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그것을 자자손손 후손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것만 되면 어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복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절입니다. “1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우리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2절 말씀처럼 이는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우리가 그렇게 할 때 3절에 뭐라 말씀하십니까?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그런데 실제로 정작 이 말씀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 명령을 가볍게 여겼고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방나라의 포로신세가 되는 꼴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그 이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 명령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다시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포로생활로 시작하여 토라를 가까이 하고 연구하고 토라로 교육하려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세계곳곳에 흩흐졌지만, 흩흐진 곳에서 회당을 세우고 랍비를 세우면서 토라를 끝까지 붙들었다. 회당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이 말씀을 교육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자녀교육의 근간으로 삼습니다. (부모들이 학교는 안보내도요. 가정에서 이 토라교육은 시키는 거여요) 본문 6절에 이스라엘아 들아라!!라고 나오지만 원래는 들으라!! 이스라엘아!! 쉐마 이스라엘~ 이렇게 나옵니다.. 즉 쉐마 본문이라고 그럽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이 본문을 아침저녁으로 암송을 합니다. 그리고 신명기 전체를 모든 삶의 근간으로 삼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현시대에 와서 쉐마본문의 위력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 유대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그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증명이 되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날 유대인은 전세계 인구는 0.2%정도 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노벨상을 25%수상한 것을 비롯 하여, 세계의 경제, 정치, 교육, , 예술, 과학, 문화 등 이름만 대면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게이츠를 비롯 앞에서 언급한 마크 주크버그도 유대인의 피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그런 축복을 나타내는 것일까요? 그들에게 특별한 피가 흐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스텐포드대 심리학 교수인 젠센 교수는 유대인을 연구하면서 그들이 머리가 뛰어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신앙교육 때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신앙을 통해 의지력, 사명이 분명해지고 가슴에 끓는 열정을 넣어 준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가르치라>

사실 쉐마 본문인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축복과 더불어 오늘 우리에게 놀라운 명령을 주십니다.

그것은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여기서 관심을 가질 대목은 <>입니다. 집에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 것입니다. 부모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것만 확실히 되면 다른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복음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염려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외부로 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습니다. 핍박과 박해를 받았을 뿐 아니라 이단의 공격도 엄청났습니다. 그런 공격에도 교회는 슬기롭게 대처해 나갔습니다. 각종 철학과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공격을 가해왔을 때.. 적극적으로 복음을 변론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철학과 수사학을 동원해서 기독교를 변호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은 철저히 복음적이었습니다. 겉에는 그 당시 철학이나 문화의 옷을 입었으나, 속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방법으로 기독교 복음을 증거했고, 결국은 로마 제국 전역에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다양한 문화 사조를 무조건 거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능동적으로 복음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수용을 하되 영혼까지 휩쓸리면 곤란합니다. 우리는 그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 십자가의 복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미래를 짊어질 인재들을 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청년들이 유행을 따라 머리칼은 노랗게 물들였어도, 심령은 예수님의 보혈로 붉게 물들이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가능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문화가 변해도, 정치가 달라져도 여전히 변치 않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하길 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말씀 교실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리 교회 교회학교가 더 능력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길 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하는 일은 자녀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가르치려면 먼저 부모들이 말씀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먼저 부모가 말씀의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부터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6절을 보세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먼저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부모가 먼저 복을 받습니다. 2-3절을 다시한번 보십시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아멘.

자녀를 잘 가르치려면 먼저 부모가 말씀의 사람이 되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부모 자신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부모 세대가 먼저 바로 서야 합니다. 올해 우리 성도들이 다 말씀에 바르게 서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5절을 보세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나서 바로 이어서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인 것입니다.

 

<결론> 이 말씀으로 우리가 서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 다음 세대를 세우기 바랍니다.

말씀이 본질입니다. 다른 것은 변하는 비본질적인 것 뿐입니다. 여러분의 생애 참된 본질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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