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거지나사로 | 운영자 | 2012-04-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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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장 14절~31절 부자와 거지 나사로 <천국에 대한 일반적 생각> 우리 옛 속담에 ‘서울가보지 않은 사람이 서울 가본 사람을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서울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직접 가 본 사람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남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자기 생각으로 억지를 부리기 때문입니다. 학교의 상황은 그 학교를 다니는 사람이 가장 잘 알 것이고, 회사의 상황은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가장 잘 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천국이 과연 있는지,, 천국이 있다면 과언 어떤 곳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은 있습니까? 있다면 과연 어떤 곳일까요? 성경은 천국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오셨기에 천국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천국의 상황을 천국에서 직접 온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교훈은 천국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교훈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천국은 이 세상의 삶의 연장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많이 누리는 사람들이.. 천국에서도 많이 누릴 것이라고 보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쌓을까? 더 많이 가질까? 더 많이 누릴까? 이런 삶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국은 이 세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기만 한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서 고생고생해도 믿음을 끝까지 붙들고 산 사람은 천국에서 높임을 받더라는 것입니다. <청지기 가치관> 여기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의 백성은 구별된 가치관을 가져야 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전부이며,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지고 쌓아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천국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그렇게 많은 것을 쌓아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가진 것으로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나눠주면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자들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은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잠시 맡기신 것이라는 청지기 의식이 있어요 - 우리가 가진 것 우리의 건강 지식 생명 재산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다면 소유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 주에 전도사님이 전동차를 타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분명히 전동차 전용도로로 안전거리 유지하며 전동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차가 나타나 오른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전동차가 차밑으로 들어갔어요. 큰일 날뻔 했습니다. 저는 팔이 움직이지 안길래 팔이 부러지지 않았나 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도사님 팔이 다치면 하나님 교회에 해가 될까봐 팔 부러지지 않게 하시고 그냥 탈골만 되게 하시더라고요.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어떻게 어떻게 하더니 팔이 뚝하고 소리가 나더니 쑥 다시 들어갔어요.. 할렐루야!! 여러분,, 물질에 아둥부둥 거리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이 건강 지키시지 않으면 생명 지키시지 않으면 그것 아무 소용없어요..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진 이것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위해 살 수 있을까? 그것 고민하며 살아야 해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13절에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말을 합니다.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섬기고 살아가면서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집 하인의 주인은 오직 한 사람 뿐입니다. 재물에 치우쳐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그러나 제물을 하나님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면 하나님을 위대 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말은 당시 바리새인들이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14절에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 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바리새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느냐 하면 돈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돈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다르게 표현하지만 돈에 인색하면서, 돈에 대한 청지기 의식이 없고 돈으로 자기 배만 불리는데 쓰고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나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것들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지 아니면 진심을 담아 진실되게 쓰는지 하나님은 다 아신다는 거여요. 어떤 사람은 제물을 쓰면서 교만된 마음을 가집니다. “내가 적어도 이런 사람이고 이 정도 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거여요. 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도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린 것 뿐인데 사람들이 부러워 하니까? 은근히 교만된 마음을 가집니다. 십일조를 천만원을 했습니다. 큰 금액이지요.. 하지만 그것가지로 목에 힘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축복주셔서 수입을 남기게 되었고, 하나님의 것을 마땅히 하나님께 드렸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축복에 비해 더 감사하지 못하고, 헌신하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해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 줄 안다면.. 하나님의 것을 드려도 항상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겸손한 마음입니다. <저희 가정은 헌금에 대한 작은 원칙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헌금을 드림에 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십의이조는 드릴 수 없을지라도 십일조와 매주 감사와 절기헌금은 최선을 다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제 마음 한구석에는 주님을 위해 더 많은 것을 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항상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 크시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오늘 주님은 이 재물에 대한 교훈의 절정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바로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 그리고 천국의 비유입니다. 19절~21절 말씀입니다.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본문에 등장하는 부자는 대단한 지위의 사람입니다.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으며 날마다 호위 호식하는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사실 이 자색옷이나 고운 베옷은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주로 입던 옷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등장하는 나사로라는 거지는 진짜 밑바닥 인생입니다. 그는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을 만큼 사람들에게 짐승취급 당하는 그러한 인생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사람들이 상종도 하지 않는 죄인들, 창녀들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의 삶을 보십시오. 여기 이 부자는 자신이 그렇게 잘살고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돌아볼 줄 모릅니다. 지금 곁에서 나사로는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 배만 채우는데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 땅에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세상을 향해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하심인줄 믿습니다. 복을 받아 자기 배 채우는데 급급하게 살라고 하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그 복을 이웃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며 살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나눠줘야 할까요? 성도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줘야 합니다. 빵을 주든지 아니면 복음을 주든지.. 진짜 좋은 것은 복음을 줘야 하는데 그것을 바로하지 못하겠거든.. 양식이나 돈을 주면서 복음이 흘러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부자는 그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고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거지 나사로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거지는 부자 대문 앞에 엎드린 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으며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온전한 음식은 한번도 먹어보지 못하고 부스러기 말씀이라도 얻어먹고 부스러기 은혜라도 받으려고 애썼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이 부자는 가장 복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성공자가 어디있습니까? 평생을 부족함없이 호위호식하며 세상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 거지나사로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생입니다. 이런 비참한 인생이 어디있나요? 그런데 이 이야기로 무대의 막이 내리면 재미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1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막까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죽음 이후 새롭게 열리는 천국의 세상입니다.. 22절로 24절 말씀입니다.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23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두 사람이 죽으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아브라함의 품은 천국을 뜻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지옥의 고통 가운데서 특히 꺼지지 않는 불꽃가운데서 쉴새없이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이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으면 부자가 나사로에게 부탁합니다.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에 한번만 뭍혀 달라고 합니다.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그랬을까요? 여러분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쉴새 없이 타는 불 가운데 고통을 당하는 곳인데..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오늘날은 고통스러우면 목숨을 끊어 죽어 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죽으면 이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충동적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자도 있고 실제로 자살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십시오. 자살은 지옥으로 직행하는 곳입니다. 이 지옥은 우리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저주와 고통이 있는 곳만은 분명합니다. 이 지옥은 목숨을 끊어서 죽고 싶어나 죽으려고 해도 고통은 있는데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불에 한번이라도 데어보신 분은 압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런데 이 지옥은 우리가 그 불로 소금치듯 하는 고통을 당하는데 죽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더럽고 지저분했으면 구더기와 함께 사는 곳입니다. 여기 이 말씀을 보아.. 여러분은 궁극적으로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죽어서 어디에 들어가야 할까요? 물론 천국입니다. 모두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야 할 줄 믿습니다. <부자의 탄식> 그러면 부자와 이 거지나사로의 어떤 차이가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운명으로 만든 것일까요? 우리는 이 말씀을 매우 심각하면서 귀하게 받아야 합니다. 부자가 부자이기 때문에 지옥에 갔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결코 부자가 된 그 자체를 책망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가 지옥에 간 것은 그가 부자가 됨으로 정작 가져야 할 은혜와 특권을 하나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나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너무 부하여서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도, 열심도 믿음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니.. 하나님을 향해 손을 내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진 자의 위험성입니다. 차라리 가지지 못했을 때는 절박감도 있었고 간절함도 있었습니다. 사업이 좀 안될 때는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릅니다.. 금식도 하고 철야도 했어요. 그런데 사업이 잘되고 회사도 몇 개나 되고 부족함이 없어지니까? 하나님 의지하지 않습니다.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빠지기 시작합니다... 믿음을 저버리기 시작합니다..재앙은 거기서 시작됩니다.. 물론 부자가 되어서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욱 손을 내밀어 많은 일들을 감당하는 그런 분이 계십니다. 일전에 기독실업인 가운데 둘러스호(복음전하는 배)가 수명이 다하여 전체적으로 수리를 해야 하는데 20억이 들어가는데 한분이 흔쾌히 쾌척하는 그런 일을 보았습니다. 가진 돈으로 얼마나 최선을 다해 선교하는지.. 참 부럽다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소원이 있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 하나 믿음으로 제대로 키워가지고 세계를 움직이는 기업인을 되어.. 세계를 무대로 일과 함께 복음 전하는 그런 자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런 목적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참으로 귀하고 복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부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미 많은 은혜를 받았고 많은 복을 받았음에도 그 은혜와 복을 주신 하나님은 까마득히 잊어 버린 채 갈급함이 없이 살아갑니다.. 허구한 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즐기는데 시간을 다 허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착각이냐 하면 ‘어떻게 살든 믿음만 있으면 천국에 갈 것이다. 그래서 주님을 떠나서 내 멋대로 살아도 옛날 믿었던 전력만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에게 우리 주님이 묻습니다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그것이 진짜 네 믿음이냐고...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약2:26] 아마 이 부자는 이런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조상적부터 하나님을 알고 섬겼는데 당연히 천국에 들어가는 거지 뭐!! 내가 이렇게 복을 받고 사는데 설마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려고!! 그러면서 스스로 안전장치를 하며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철저한 무관심과 무시로 일관하고 오로지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마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님을 안다고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나사로의 믿음> 이에 반해 거지 나사로는 어떠했습니까? 나사로는 이 부자와 다릅니다. 부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사모하지 않습니다만 나사로는 부스러기 은혜라도 사모합니다. 욕을 얻어먹으면서까지 말씀의 일부라도 듣고 싶어합니다. 구약의 여인 룻이 어떻게 다윗의 조상이 될 수 있었나요? 나오미에게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은혜라고 사모하며 그것 놓치지 않고 붓쫓아 따랐기에 그가 예수님의 조상이 되지 않았나요? 거지 나사로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는 최악의 조건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돈만 없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도 완전히 망가진 상태입니다. 오죽했으면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핧았을까요? 거동도 불편하여 대문 앞에 버려진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 나사로는 마음속에 하나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소원입니다.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은혜라고 받고자 하는 희망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천국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꼭 아시기 바랍니다.. 누가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나요? 자기의 직책이나 자랑하고 사람들의 칭찬이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그런 외식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스러기 은혜, 즉 아주 작은 말씀이라도 듣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달려 나올 줄 아는 그런 사람이 결국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진짜 부자> 다음 아브라함의 말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이 아브라함의 말 속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나요? 이 세상에서의 삶과 천국의 삶은 일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산다고 죽은 후에 잘 산다는 법이 없습니다. 도리어 이 세상에서 환란 당한 그 사람이 천국에서 더 큰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이 거지는 어떤 사람을 말하나요? 죄가운데 환란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살려는 모든 사람을 대변합니다. 죄가운데 믿음으로 살려니 고통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한번 살아보십시오.. 고통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직장에서 믿음으로 살려면 반드시 고통이 따릅니다. 주일 지키기 위해 상사에게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고요.. 정직하기 때문에 역차별도 당해야 합니다. 세상은 편하게 가는데 우리는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는 거여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성도의 눈물을 절대 외면하지 않습니다. 형제를 위해 흘리는 눈물.. 복음을 위해 당하는 그 고난.. 하나님은 천국에서 다 보상해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산 사람.. 자기만을 위해 산 사람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길 수 없습니다. 무서운 것은 한 번 죽은 후에는 절대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26절 말씀입니다.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모든 것이 죽기 전에 가능합니다.. 한 번 죽으면 지옥에 있는 사람을 천국으로 가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어떤 종교는 연옥에 간 자도 공로나 기도를 보태면 천국으로 옮겨진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 오늘날 우리 시대는 너무 살기 좋다보니 천국과 지옥에 대한 신앙이 약합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은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옥에 떨어지면 무서운 불심판을 받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함부러 살면 안됩니다. 믿음을 끝까지 붙드십시오. 은혜를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를 지혜롭게 써야 합니다. 절대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마십시오.. 물질이 우상이 되면 안됩니다. 기꺼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고난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와 함께 마지막 죽음 이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모두 안기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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