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청지기 | 운영자 | 2012-04-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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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장 1절~13절 진실한 청지기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하나할까 합니다. 호주 시드니 한인교회에 다니는 한 여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호주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일상용어가 영어입니다. 가끔 한국말을 쓸 때가 있는데, 부부싸움 할 때입니다. 화가 나면 영어가 잘 안나오니까, 한국말을 썼습니다. 남편은 다른 말은 다 알아듣는데, 한국 말, 그것도 속어는 잘 못알아 듣습니다. 이 집사님이 부부싸움을 하다가 화가 나서 한마디 했습니다. “야 이 자식아!!” 남편이 순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아내에게 싸움을 멈추고 “야, 이 자식아”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이 묻자, 순간 당황한 아내는 그 말은 한국 속어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호주 남편이 순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 내 아내가 ‘싸우는 가운데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늘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심방을 오셨는데, 마침 남편이 그날 쉬는 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오셨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나가서 서투른 한국말로 “목사님, 안녕하세요.” 하고 끌어안으며 “야, 이 자식아”라고 했답니다. 남을 속이는 것은 당장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 들통이 나서 낭패를 볼 때가 있습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설명> 오늘 본문을 보면 주인에게 한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지기가 해고를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의 소유를 자기 멋대로 경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청지기가 해고를 당하기 전에 꽤를 냅니다. 그냥 아무런 준비 없이 해고 당하면 빌어먹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해고를 당하기 전 어떤 생각을 했느냐 하면 (돈을 빼돌린다든지.. 비밀통장을 만든다든지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부릅니다. 그리고는 빚을 하나씩 하나씩 탕감해 주었습니다. 주인의 이름으로 탕감을 해 준 것입니다. 기름 백말 빚진 자는 오십 말로 50% 탕감해 주고, 밀 백석 빚진 자는 팔십석으로 20%를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 탕감 액수를 금액으로 계산해 보면 상당한 액수에 해당됩니다. 왜 이런 호의를 베풀었을까요? 아마 나중에 해고가 되더라도 그들에게 모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 청지기가 잘했습니까? 잘못했습니까?” 주인의 것을 가지고 선심을 서는 채 하는 게으런 이 청지기의 모습을 보면 완전히 사기에 해당되는 것처럼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청지기를 주인이 일을 지혜롭게 처리했다고 하여 칭찬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청지기가 처음에는 분명히 매 맞을 행동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주인이 일을 믿고 맡겼는데 그것을 자기 것처럼 생각하며 허비하며, 맡겨진 회사를 아무렇게나 경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해고 통보를 받고는 주인의 것으로 칭찬얻는 상황을 연출했다는 것입니다.. <충성하라> 그러면서 예수님이 이어서 덧붙혀 설명하십니다. 9절에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리고 10절 이하에는 ‘충성하라’ 말합니다. 충성하되 구체적으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라!! 불의한 제물에 충성하라!! 남의 것에 충성하라!!’고 반복적으로 충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놓고 볼 때, 이 청지기의 행동이 칭찬을 얻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충성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충성이라고 하는 단어는 ‘피스토스’라고 합니다. 이 말의 뜻 속에는 ‘진실’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라는 것은 작은 것에 진실하라는 의미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는 말은 불의한 제물에 진실하라!!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에서 ‘진실’을 찾아보게 되면.. ‘진실’은 거짓이 없고 참되고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는 것을 보며 이 진실과 관련지어 교훈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청지기의 어떤 모습이 충성 곧 진실과 관련되어 있을까요? 청지기가 직무를 얼마 못하리라는 소리를 듣기 전에는 주인의 소유를 아무렇게나 마치 자기 것인냥 흥청망청 섰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직무를 빼앗으리라는 말을 듣고부터 물질을 진짜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가지고 빚진 자의 빚도 탕감하여 주고, 그것가지고 친구도 도와주며 사귀고. 가난한 자도 도와주고 하면서... 똑같은 물질인데.. 전에는 자기만을 위해서 사용하다가 이제는 남을 위해 사용하는 페러다임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이 진실이라는 것이...관대함으로 너그러움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물질을 사용함에 있어.. 인색하던 자가 관대하게 되었어요.. 너그럽게 되었어요. 이게 오늘 말씀하고자 하는 교훈이에요.. 예수님께서 이 교훈을 하시는 것은 당시 하나님의 것을 풍성히 받고도 전혀 감사하지도 않고, 나눠줄 줄도 모르는.. 자기 이기적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14절을 보게 되면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께 미움 받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것을 풍성히 받았음에도 그것으로 자기 배만 채울 줄 알았지 나눠줄 줄 모르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아무런 희생도 관심도 없는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돈이 있으면 가진 것으로 더 열심히 더 희생하며 없는 자를 섬겨야 합니다.. 지식을 가진 자도 그렇습니다. 지식이 있으면 그 지식으로 남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가진 제물로, 가진 지식으로 남과 비교할 뿐 아니라 비판하고 정죄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은 철저히 남을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있으셨지만 그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병든 자, 귀신 들린 자, 상처받고 고통 당하는 자를 그 능력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셨으며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소외된 자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셨고 그들을 품어주셨습니다.. 심지어 그들을 위해 당신의 몸과 피...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시기 까지 그 사랑을 나타내 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지금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삶이 바로 이런 삶입니다.. 내가 그렇게 산 것 같이 너희들도 그렇게 살아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상처받고 소외된 자를 위해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하신 것처럼 너희들도 그런 삶을 살아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가 걸어가야 할 충성된 삶.. 진실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 찬송을 한번 불러봅니다.. 주여 진실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 하루 순간을 주가 주신 힘으로 승리하기 원하네/ 주여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 주여 사랑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 하루 순간을 주가 주신 힘으로 승리하기 원하네 주여 나를 사랑하게 하소서 진실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을 향한 너그러움으로 관대함 승리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첫째,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작은 일에 진실하라고 합니다. 10-11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 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나폴레옹이 전쟁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밤이 깊었습니다. 한 처소에 보초가 졸고 있습니다. 얼마나 곤히 졸았는지 옆의 사람이 지나가는데도 깨어나질 않습니다. 나폴레옹은 야단을 쳐서 깨우지 않았습니다. 보초 대신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곤히 잠을 잤던지 새벽녘 해가 떠오를 때 잠에서 깨었습니다. 으스름한 새벽빛에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나폴레옹 이었습니다. 바들바들 떨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보초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떠나갔답니다. 그 사병은 일생동안 나폴레옹을 위해 충성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가진 자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 자를 무시해서 안 됩니다. 남의 부족하고 약한 부분에 대해서 비판하기 쉬운 것이 우리입니다. 그런 것을 너그럽게 받아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작은 일에 진실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느새 큰 것이 좋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파트도 커야 하고, 가전제품도 커야 합니다. 차도 커야 하고 심지어 사람도 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교회도 큰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그런 생각이 팽배해져 있어요. 일전에 한국 상공회의소의 사무총장으로 일하던 독일 사람이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이 사람에게 한국에서 잘 팔릴만한 세탁기를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중산층의 경제적 능력을 생각해서 비교적 저렴하고 튼튼한 작은 세탁기를 추천했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결국 한국인 동료의 권유에 따라 그 회사의 최고급 세탁기를 들여오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웬만한 집에서도 쓸 수 없는 최고급품입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없어서 못 팔았답니다. 이 후 한국에서의 판매전략은 단 하나, 크고 비싼 것이었습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세계 명품이란 명품은 어떤 것이냐를 가리지 않고 한국에 오게 되면 잘 팔린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프랑스의 에르메스인가요? 1천만이 넘는 백이 나오기도 전에 열풍이 불어서 예약이 폭주하는 것을 보며... 그 나라 사람들이 명품에 열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그러쟎아요.
물론 큰 것, 비싼 것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여건이 된다면 큰 것 좋은 것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진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가치가 그런 것으로 평가되어진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제 이렇게 물질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평가하게 되었나요? 돈이 많으면 마치 성공한 것처럼 부러워하고 돈이 없으면 실패한 사람으로 바라보는데... 그것이 정상적인 모습입니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도의 가치는 물질로 평가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졌다고 우리의 신분이 상승한 것처럼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그렇게 평가하면 절대 안됩니다. 세상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리스도인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씀 합니다. 우리의 눈을 세상의 높은 곳이 아니라.. 세상의 낮은 곳 소외된 곳으로 돌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입니다. 강도 만나 상처입은 사람입니다. 가난한 고아와 과부입니다.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집나간 탕자입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입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작은 것에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까? 제가 아는 목사님이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아들 가운데 하나가 자폐증을 앓고 있어요. 아주 목회를 잘하셔서 한국에 들어올 기회가 있었지만 한국에 오지 않고 미국에서 계속 목회를 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장애인을 기르기 편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을 색안경을 가지고 바라보고 그들의 팔과 다리가 되어주며 섬겨야 된다는 의식이 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회.. 이런 약한 자, 소외된 자를 더욱 더 배려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너그러운 사회이며.. 주님이 칭찬하는 그런 사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일을 누가해야 할까요?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합니다. 남이 안하는 것, 세상 사람들이 안하는 것 그런 것을 교회가 해야, 교회가 복을 받습니다. 저는 중국에 나와 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 함부러 낭비하고 내버리고 하는 그런 버릇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끼고 절약하는 법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 가지고 더 가난한자 없는 자. 소외된 자를 돌보도록 가르쳐줘야 합니다. 교회에 보면 내가 주인이라는 의식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작은 것 하챦은 것.. 내 것과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합니다. 하지만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진 자는 종이하나, 컵 하나 아무렇게나 쓰지 않습니다. 어떡하든 아끼려고 하고 절약하려 합니다.. 내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자가 충성된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남의 것에 충성하고 남의 것에 진실 하라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작은 것에 진실하라고 하는 것은 가진 자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의 것에 충성하라고 하는 것은 받은 자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캐스퍼라고 하는 스위스의 작은 시계 공장 사장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계가 잘 안 팔려 부도위기와 더불어 끼니를 거르는 정도로 어려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점잖은 신사가 와서 시계를 사갔습니다. 옆에 있던 아들도 신이 나서 이젠 되는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이분이 시계를 산 후 하는 말이 “며칠 전, 옆의 집에서 시계를 샀는데 그 시계가 가지 않습니다.” 캐스퍼가 옆집의 그 시계를 고쳐 주고는 손님에게 판매한 시계를 다시 달라고 했습니다. 옆에서 보던 아들이 화를 냈습니다. 그가 아들에게 말하기를 “받아서 복된 돈이 있고, 복되지 못한 돈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손님이 이틀 후 다시 찾아왔습니다. “나는 무역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시계를 사다가 팔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당신의 것을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자그만치 2년치를 계약했습니다. 내 것과 남의 것, 어느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까? 남의 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빌려온 도끼가 물 속에 빠집니다. 어떻게 합니까? 엘리사가 건져서 갖다 줍니다. 빌린 것은 당연히 갖다 주어야 하고, 갚아야 합니다. 한국 국민이 1인당 845만원 정도의 빚을 지고 산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 빚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을 무임승차하여 쓰고 있다면 그것부터 갚아야 하는 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성경은 남의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나의 것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처럼 쓰면 안 됩니다. 잘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 속에서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마음대로 씁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릴 줄 아는 사람, 그것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십일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십의 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라고 교훈합니다. [말3:8]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말3: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 그러면 일반적으로 마음이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편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불편한데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불편할 이 유가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잠시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요. 그리고 가진 것을 아무렇게나 쓰도 됩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달라 하시면 전부 돌려드려야 할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잠시 맡기신 거여요.. 여러분의 직장,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생명...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가질 수 있는 것이 있었나요? 달라고 하시면 돌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십일조는 바로 그것을 인정하며 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성도의 신앙고백입니다. 생명을 달라하면 생명을 드려야 하는데. 하나님은 가장 순종하기 쉬운 물질부터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즉 소득의 십의 일조를 구별하여 드리므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며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앙을 돌아보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셨다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건강주시지 않았으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 저희 가정에 직장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건강도 지킬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이런 고백이 담겨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런 십일조 생활을 통해 신앙이 자랍니다. 믿음이 자랍니다. 물질에 정직할 때 하나님의 더 크신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십일조의 복> 더불어 이 십일조 속에 복의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본문에 십일조를 통해 나를 시험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하나님의 시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고백인 이 십일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큰 복을 기대하라는 말입니다. 특별히 ‘온전한 십의 일조’를 통해 하나님의 큰 복을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어요.. 하나님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물질이 정직하고 온전하면 믿음이 정직하고 온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직한 십일조를 말씀하시지.. 대충 내는 헌물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마음을 담아 드리십시오.. 믿음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소원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이번에 10만원 밖에 못했어요. 더 하고 싶어요. 하나님 복 주세요. 하나님 장사 잘되게 해 주세요.. 우리가 여러분 바르게 살면서 하나님의 복을 구할 때 하나님이 들어주시기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소원을 가졌으면 합니다. 해외에 나와서 사업이 잘되고 직장이 잘 되어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자식들 교육도 잘 시키고 싶은 마음이 많쟎아요!! 그러면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드리면서 하나님의 복을 간구하십시오. 10절말씀 한번 더 읽어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결론> 우리는 오늘 진실에 대한 2가지 교훈을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작은 일에 충성되고 작은 일에 진실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진 것으로 소외된 자를 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남의 것에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에 진실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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