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문은 영광의 길입니다 | 운영자 | 2012-02-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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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3:22-28 좁은 문은 영광의 길입니다. <중국복음화> 저희 교회가 올 해는 좀 더 열심을 다해 전도와 선교에 관심을 기울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난 크리스천들이야 석 달갑지 않는 모습 일테지만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는 목숨 다하여 지켜야 할 사명이기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중국에는 많은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문호가 개방되면서 중국이 세계 모든 나라에서 말 그대로 중심국가로 자리메김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나 저희 나라 같은 경우는 대 중국 무역의존도가 20%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기침하면 우리는 몸살을 앓아 누워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자국 경제를 위해 절대 중국을 무시 못할 나라로 보고 있습니다. 15억 인구가 어디 적은 인구입니까? 세계인구가 70억이 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세계인구 5명 중의 한명이 중국 사람이니... 단연 무시못할 숫자이지요... 그런데 경제학적으로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적으로 봐도 이 중국 땅은 참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계종교가 가장 중요한 선교거점으로 삼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 중국입니다. 전도학적으로 봐도 미전도 종족이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는 곳도 바로 이 중국 그리고 그 인접한 국가임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선교학자들은 이 중국의 복음화가 세계복음화의 가장 큰 과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중국 땅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지만 적게는 5천만 많게는 1억 가까이가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그런 보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통계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공산주의 체제 아래 명맥을 유지하던 기독교가 문호가 개방된 이래 지하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 우리에게 참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그런 복음화율도 물론 중요 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이 복음의 성장과 영향력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중국 이 땅을 섬기면서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과 기도를 드지지만... 이제는 그것과 더불어 복음화된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영향력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난 주에도 살펴보았지만 이 복음은 이 중국 땅에 겨자씨 한 알과 같은 것이었지만 그것이 자라 큰 나무가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많은 복음화가 이뤄졌습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이 복음이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이 깃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겨자씨와 같이 이러한 성장력도 있지만 누룩과 같이 변화력도 있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개인을 변화시켜 예수님을 믿게 할 뿐 아니라 그가 속한 가정 그가 속한 사회 그가 속한 나라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해야 합니다. 지금 중국에 필요한 것은 이런 영향력입니다. 진정으로 복음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바로 그 영향력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이 나라에 진정한 복음이 전해질 뿐 아니라... 그 복음으로 인해 이땅에 참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가도록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한인교회는 그런 역할을 하는 교두보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 땅에 사는 수많은 백성들이 진짜 제대로 된 복음을 언제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었는가? 참된 삶.. 의미있는 삶에 대해 제대로 한번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보통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면 돈을 좀 더 벌어 좀 더 편한 삶을 살아볼까? 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목표가 아닌가? 우리는 이들에게 “그런 삶만이 다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더 나은 삶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그분을 믿고 그분을 따르십시오.. 그리고 새생명을 얻고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문> 본문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은 지금 이런 복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명이라도 더 듣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며 거리를 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느닷없이 한 사람이 나타나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왜이렇게) 적으니이까?’ 묻습니다.. 예수님이 전도를 해도 많은 사람이 믿지않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안타까워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 같은 질문을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선생님들이 들었더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예... 참 구원 얻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대답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 땅에서 외국인이 전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얀마(버마)에서 일하던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은 그 땅에 특별한 소명 받아가서 6년동안 죽을동 살동 모르게 열심히 전도하고 복음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회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 보면 복음 전하여 한 사람을 예수 제대로 믿도록 하는 것. 그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몇천명 전도했다.. 1만명 전도왕... 그러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을 전도하든 1만 명을 전도하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 영혼의 가치입니다. 저드슨은 6년 동안 한 영혼도 없었지만 그는 결코 낙심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상 반드시 나에게 큰 일을 맡기셨을 것이다'라고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계속 전도하다가 마침내 6년 만에 세례교인 한 사람을 얻었습니다. 6년 만에 얻은 열매였습니다. 그런데 이 일 이후 1세기도 안되어 세례교인이 몇만 명이 되어 미얀마 전도의 귀한 초석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관심은 몇 사람이 구원을 받느냐? 단순이 사람이 몇 명이냐? 이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지금 마땅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느냐? 나는 바른 길을 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나와서 몇 사람이 교회에 나왔는가? 그것 세어보고 있습니다. 뭐하러 그런 곳에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꼭 예수님 곁에서 누가 예수님을 따르는지 숫자를 세어보는 이 사람과 같습니다. 23,24절 말씀입니다.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그런 질문에 대한 우리 주님의 대답은 완전히 다릅니다. 엉뚱한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렇습니다. 선교를 하면서 열매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전도해 놓으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직장 따라 가버리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 힘이 쭉 빠집니다. 제가 선생님들 만나 봐도 그런 분들이 제법 많이 있어요. 10년을 사역했는데 열매는 그렇게 많지를 않습니다... 그런 자가 예수님께 이렇게 묻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주님... 구원을 받은 자가 이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에 대한 우리 주님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주님은 구원받은 백성의 많고 적음에 대해 말씀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사역하는 그 사역자를 향해 이런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영혼이 구원을 얻고 그렇지 못하고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전도자의 자세... 따르는 제자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입니다.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영혼을 구원하는 일도 힘든 일이지만 더욱 힘든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계신 여러분 중에 ‘예수 믿기 쉽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 사람은 아직 세상의 쓴맛을 못보신 분이든지 아니면 아예 예수님을 믿는데 경지에 도달했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 성도님을 심방하면서.. 들은 이야기가 남편분이 교회를 나가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냥 거기서 포기하고 말 것입니까? 절대 그러면 안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분은 이미 답을 알고 계시는 분이시기에 그런 고민을 저에게 틀어놓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를 안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저를 만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 쉽지 않아요.. 특히나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이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우리가 피해가면 안됩니다. 안 해 버리면 안됩니다. 힘들어도 마땅히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 하는 것이 성도의 길입니다... 복음전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열매가 없다고 애이!! 못해먹겠다!! 허구한 날 열매도 없고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은 이런 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안하고 말지. 그러면서 몇 년 해보고 열매가 없다고 그만둬 버린다면 그것은 전도자가 가야 할 길이 아닌 것입니다.. 소명자가 아닙니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에서 개척교회가 많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개척교회가 생기면 절반이상이 문을 닫습니다. 그 정도로 교회세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지 않으면 할 수 없어요... 소주에서도 생겼다가 없어진 교회도 있어요. 비단 목회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로 이왕 결심했다면 들어선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면 좁은 길을 간다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길은 너무나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길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 주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 주님을 위해 남이 가지 않는 그 길을 간다는 것.. 그것이 보통 귀한 일입니까? 남이 하는 것 하지 않고, 남이 즐기는 것 즐기지 않고.. 주를 위해 기꺼이 버리고 포기하고 낮아지고 희생하면서 가는 그 길이 보통 귀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이 보통 일인가요? 여러분,,, 지금 예수님을 믿어 보겠다고 나온 여러분,, 여러분의 이 모습이 얼마나 귀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또한 예수님을 위해 살아보겠다는 여러분의 자세 또한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작했다면 끝까지 가시기 바랍니다. 중도에 포기해 버리지 말기 바랍니다.. 조금 힘들다고 타협해 버린다든지.. 도망 가버린다든지 그러지 마시기 바랍니다.. 좁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안타까운 모습은 처음에는 좁은 길이 영광스러운 길임을 알고 그 길을 들어섰다가 조금 힘이 드니까? 포기해 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런 자는 상급을 받을 수 없어요... 사실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의 권면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또한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기도 해요...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만약 너희들이 좁은 문으로 가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잘하는 일이다... 그러니 낙망치 말아라!! ‘열매가 좀 없더라도 낙망치 말아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낙심치 말아라!! 일이 좀 풀리지 않더라도 절대 조급해 하지 말아라!!’ 결국 그 길이 영광스러운 길이고,, 승리하는 길이다.. “내가 바로 그 길을 가고 있지 않느냐?”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이 바로 그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많은 사람들의 대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려고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 그 길을 피하지 말고 들어가기를 힘쓰라!! 여기서 ‘힘쓰라’는 것은 천하장사 시합에서 경기하는 장면입니다. 젖먹는 힘을 다해 그 길을 가라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좁은 길..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그 길을 가기 위해 여러분이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혹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서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미신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런 생각은 버리십시오. 혹 신앙양심이 책망하는 그런 습관을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이제는 버리십시오... 좁은 길을 가십시오.. 누구나 다 한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은 다른 길을 가야 합니다. 다르게 살아야 복음이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 기업으로 가장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 기업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랜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삼성에서 하는 제일모직도 따라오지 못합니다. 작년 지난 해 기업창립 30주년을 맞아 박성수 회장이 2020비전을 선포했는데 2020년까지 중국내 매장을 2만개로 늘리고 매출10조원을 달성하여 패션업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합니다. 매 해 배 이상의 폭발적인 성장을 감안하면 그것이 허왕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랜드가 중국에 진출한 첫해인 1997년 매출이 25억이었는데 13년 지난 지난해 한해 매출이 1조 2천억 가까이 되었으니... 허왕된 꿈이 아니지요! 어떻게 이런 성공신화를 쓸 수 있었을까요? 다름이 아니라 경영자의 기업정신이죠.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박성수 회장은 고옥한흠목사님으로부터 철저한 제자훈련을 받은 장로님이신데... 훈련받은데로 하는 겁니다. 말씀에서 배운데로 하는 겁니다.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르고 정직하게 가니까 되는 것입니다.. 사실 꽌시를 중시하는 이 중국 사회에 기업하나가 뿌리를 내리는 것이 어디 쉽습니까? 그런데 이랜드 기업 그러면 이미 중국내에서 정부가 인정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백화점 같은 곳에서 세금해택을 줘가면서까지 입점시키려고 하는 그런 기업이 되었다고 합니다. 박성수 회장은 무조건 돈만 벌기 위한 기업이 아니라... 벌어들인 돈을 사회로 환원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초기부터 철저한 세금을 낼 뿐 아니라.. 벌어들인 수입의 10%를 기부해 중국 사회에 공헌했고 시골 오지에는 학교를 세워주었습니다. 이 회사가 세금을 얼마나 정직하게 내었는지 법인이 소재해 있는 상하이시 민항구에서 최대 납세자로 선정돼 지방정부로부터 표창을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여러분, 사실 그 길은 결코 넒은 길이 아닙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계획은 세울 수 있지만 목표는 세울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저함 없이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어떤 분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중에.. 성공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성공하면 남이 안하던 좋은 일도 좀 하고, 교회를 위해서도 좀 바치고, 사회에 공헌도 하고, 기부도 하고... 하겠습니다. 여러분, 성공하면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좁은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넓은 길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신자가 아닌 불신자도 그런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성공해서 하겠다는 생각은 뒤집어 놓고 보면 그때까지는 내식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성공하면 나를 드러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절대 그것 바라지 않으십니다. 비록 지금 아무 힘이 좀 없어도 가진 것이 좀 없어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순종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좁은 길입니다. 그래야 가는 길이 힘들지 않고 신나는 길이 됩니다. 만약 지금 좁은 길은 피해가고 넓은 길을 가다보면 지금 조금 편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 좁은 길로 돌이킨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다음의 비유를 보십시오. 25절 말씀입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25절) 이 표현은 다소 직설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교회만 다녀도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안전장치를 해 놓은 채 삶은 내식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면서 시간은 지나갑니다. 늙어 갑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습니다. 결국 마지막 날에 예수님 앞에 서긴 했는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세상에 이것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원통한 일이 어디 있나요? 철떡 같이 믿었는데 그런 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좁은 길을 가지 않고 넓은 길을 가면서. 아무 일 없을 것이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바로 이런 경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이어서 나오는 구절은 우리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26절 말씀입니다.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마치 무엇을 보는 듯 합니다. 일상적인 신앙생활 가운데 아무런 염려 없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기도 했어요. 매 주일 주의 이름으로 모여 말씀도 듣고 성도의 교제도 나누고 했지 않습니까?”“그때 저희들에게 얼마나 좋은 말씀도 하셨나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향해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27,28절입니다. “27 저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러 나왔다고 해서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주님을 알지만 주님은 나를 모르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이런다면 어떡케 될까요? 저는 은혜의 지체 가운데서는 그런 자가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내가 예수님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나를 알아봐야 합니다. 어떤 자를 주님은 알아봅니까? 주님을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한 자를 주님은 알아봅니다.. 수많은 무리 가운데 주님이 알아보는 영혼은 내 인생의 왕좌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들인 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믿음으로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주님은 알아보십니다.. [마7:21]에“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를 말합니다. <결론> 예수 믿는 것...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쁜 일입니다. 좁은 길로 걸어가는 것 바깥에서 보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길을 가는 것만큼 보람되고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껍데기만 보고 신앙생활 하지 마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만큼 후회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예배당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으로만 만족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에 기쁨과 만족을 누리십시오... 하나님의 나라 곁에만 맴돌지 마시고 그 나라에 들어가서 그 은혜와 축복을 맛보시는 모든 성도님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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