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 >
하나님나라를 무엇과 같은가 운영자 2012-01-27
  • 추천 0
  • 댓글 0
  • 조회 639

http://szgrace.org/bbs/bbsView/124/2422952

누가복음 13장 18절~21절 하나님 나라는 무어과 같은가

 

오늘은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은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기적적으로 생환한 남자>

지난 주에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한 한인이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미 서북부, 해발 4300m 레이니어 산에 올랐다가 산비탈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길을 잃고 조난 당하는 사고가 발생을 했습니다.

등산 장비마저 모두 잃어버린 상황에서 밤이면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극한 상황을 만났다고 합니다.

이 분이 48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되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는데. 그분이 48시간을 어떻게 견뎠는가? 밤이 되면 바위 아래로 피신한 뒤 나뭇잎을 태우다가 반창고와 여분의 양말, 나중엔 그마저 떨어지자 1달러와 5달러 짜리 지폐를 태우며 추위를 견뎠다고 합니다.

그리고 추위가 심해질 적에... 뜨거운 찜질방에서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 힘든 시간을 버텼다고 합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죽을 것 같은 고통과 두려움이 엄습해 오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좋은 세상이 올거야!! 이런 소망이 그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바라보는 두 세계>

사람은 누구나 바라보는 세계가 있습니다. 성도 또한 그러합니다. 성도는 이 땅에 두 개의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자입니다. 왜 두 개의 세계입니까? 한편으로는 이 땅을 보며 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두 세계를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빌3:20절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중국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가며, 중국에서 공장도 짓고 돈도 벌고 집도 사고 차도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절대 우리의 모국 대한민국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민권은 대한민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이 세상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가지만.. 그래서 죽을 때 까지 이 세상의 영향을 받고 이 세상의 유혹도 받고 지배도 받으며 살아가긴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닌 또 다른 세상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좀 더 쉽게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을 보면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하나님과 사귀며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조상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사망과 저주가 이땅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후손된 모든 자손들은 아담의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고... 급기야 흑암의 권세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어 우리를 위해 살찟고 피흘려 주신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인하여...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로 옮긴바 된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구원이요 중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받은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 있지만 이제 부터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써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란?>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말합니다.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민주주의도 아닌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전에는 흑암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마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마귀의 지배가 아닌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그런 존재가 된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열방을 구원하기 원하셨고 복을 나눠주기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는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어 가장 먼저 선포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바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이 메시지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도 동일했습니다. “회개 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이제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꿈꾸시던 그 나라가 바로 예수님을 통하여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나요?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된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마귀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흑암의 세력에서 구원하여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나니!!”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이 하나님의 나라를 놓치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우기 원했던 새로운 세상이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보십시오.. 저희들이 지난 주에 살펴본 한 여인은 18년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고통가운데 사로잡혀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귀신이 들려서 앓고 있었습니다. 허리가 꼬부라져 도저히 펼 수 없는 그런 비참한 인생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영혼을 보실 때 어떤 눈으로 바라보십니까?

 

예수님은 지금 흑암의 세력에 사로잡혀 고통가운데 살아가는 한 영혼을 보신 것입니다.

마귀의 지배를 받아 비참한 인생을 사는 한 영혼을 바라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안식일 임에도 손을 내밀어 그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던 회당장과 관원들은 그런 주님을 나무랍니다. 왜 안식일에 율법을 어기고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안식일에 마땅히 해야 할 중요한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주인인 날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날입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18년 동안이나 사단에게 매여 종노릇 하던 이 여인을 고쳐 자유케 하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 것이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일 이후에 주님이 바로 하신 말씀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교훈입니다.

이 말씀은 여인에게 일어난 이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 주님은 지금까지 따르던 무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합독!!

[마12:28]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지금 이 여인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시기 위해 2가지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는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누룩의 비유입니다.

“18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그러면 우리가 이 두 비유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에서 배울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먼저 첫 번째로 하나님나라는 비록 작은 것에서 시작하나... 나중에는 놀라운 성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얼마나 작습니까? 겨자씨는 육안으로도 보기 힘들 정도로 작은 씨앗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씨앗이라도 그것이 밭에 심기기만 하면 나중에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겨자씨는 겉으로는 작아 보여도 환경이 허락하면 금새 3~4미터의 나무가 되어 자란다고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참으로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이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케 하신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그분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유대 땅, 그것도 이름없는 나사렛 출신이며, 당시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한 가난한 목수의 아들에 불과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당시 그 어느 누구의 호감도 받지 못했으며 배후에는 그 어떤 권력자나 재력가도 없었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다가 나중에는 십자가 상에서 마치 죄수의 한 명처럼 죽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이 인류 역사의 가장 큰 줄기를 바꿔 놓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AD/BC)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대부분이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요 사람들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것 뿐인데.. 이들 속에 심겨진 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보십시오...

그들을 통해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불과 몇 세기도 지나기 전에 로마 제국을 정복하고 곧 이어 유럽전체를 정복하고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최대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특징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와 같이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는 상상도 못할 놀라운 능력으로 확장되어 나갑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심겨진 예수 생명...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아야만 합니다.

생명을 가진 겨자씨가 심겨지기만 하면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라되 놀라운 성장력과 더불어 놀라운 영향력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할 수 있으면 어릴적부터 예수님을 제대로 심어줘야 합니다. ‘어린 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어릴적부터 예수의 생명이 심겨지면 자라면서 영성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아이를 자라게 하실 뿐 아니라 그 아이를 통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다윗이 가진 깊은 영성을 보세요.. 다윗이 몇 세에 기름부음을 받았을까요? 그가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10대 때입니다. 10대 젊은이 시절 때 예수님이 그 속에 심겨지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죠!! 자라면서 영성이 자라죠.. 나중에 나라를 위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 됩니까? 성군 다윗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별이 됩니다.

비록 어릴 적부터 부모의 버림을 받고 형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그런 다윗이지만.. 하나님이 그 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니까... 그 모든 환경적 컴플랙스를 믿음으로 극복해 나갑니다...

 

다윗은 하나님 믿는 믿음 가진 것 뿐인데.. 하나님이 그 마음을 얼마나 기뻐게 받으셨는지요. 그래서 그와 함께 하시어 형통함의 은혜를 주십니다. 다윗이 가는 곳마다 잘됩니다. 승승장구 합니다. 원수가 있긴 하지만 하나님이 다윗의 원수의 원수가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약조하기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7장 16절)

여러분 가정과 가문에 이런 은혜 임하기를 축원드립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시작이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겨자씨 한알과 같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뿌려야 합니다. 믿음 가지고 뿌려야 합니다. 겨자씨를 그 밭에 뿌려야 자랄 수 있습니다.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우리입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가 자식을 위해 뿌리는 기도의 땀과 눈물... 전도대상자를 위해 뿌리는 수고와 노력 정말 미비한 것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 가지고 그것을 뿌려야 합니다.

당장 결실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생명의 씨앗을 뿌리면 어느 순간엔가 자라서 나중에는 큰 나무가 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 나라는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2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 나라는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는 19절의 겨자씨 비유와 거의 유사합니다. 사실 이 두 비유는 하나님나라의 성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다만 겨자씨의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외적성장을 강조한다면 누룩 비유의 초점은 은밀하고도 내적인 성장에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즉 누룩 비유는 복음의 강력한 영향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누룩은 조금만 넣어도 전체에 급속히 퍼져서 밀가루 반죽을 부풀리고 부드럽게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음도 한번 전해지게 되면 개인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놀라운 변화를 일으킵니다.

 

여러분,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는 자기 동료들로부터 안 좋은 악평을 듣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그런 죄인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즉 자기만 알던 악명높은 세리에서 남을 위해 나눠주는 사람으로.. 가난한 자 소외된 사람을 위해 사는 착하고 사랑받는 아브라함의 아들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내면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그 인생 전체를 바꾸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보세요...그녀는 한 남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남자 저남자 옮겨다니며 인생의 만족을 찾아보려는 그런 불결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도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새생명을 찾게 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사람의 낮을 피해 벌건 대낮에 우물을 길으며 몰래몰래 살아가던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자 그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담대히 말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와서 그분을 만나보십시오...

이와 같이 사람이 변화되기 시작하면 그 사회도 변화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어떻게 확장되어 나가는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거기에 보면 사람이 변하되는 이야기 뿐 아니라 그 사회가 변화되는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바울일 에베소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원래 그곳은 아데미라는 여신을 숭배하는 매우 음란하며 퇴폐적인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해지게 되니까.. 사람들이 우상 섬기는데서 돌아서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우상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습니다. 우상에게 복을 달라고 구하지 않습니다. 우상을 좇아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수억에 달하는 마술과 관련된 책을 한꺼번에 태워버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영향력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어떠합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십시오. 우리 한국사회가 복음이 들어온 이후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는 오랜 유교적 관습과 각종 미신에 찌들은 그야말로 암울하고 소망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들어오면서 이 나라의 빛이 비취게 된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까지 반상제도로 인해 노비는 자자손손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축첩제도로 인해 여성의 인권은 땅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문맹률은 또한 어떠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배우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글도 모른채 평생을 살다가 갑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 남녀평등이 생기게 되고, 여성인권이 신장되고 선조때로부터 ‘배워야 산다. 배워야 나라가 강해질 수 있다’고 의식을 고취시키게 됩니다. 이런 문을 누가 열었습니까? 복음입니다. 복음과 함께 사회가 변화되고 인권이 신장됩니다. 학교가 세워지고 병원이 세워졌어요. 복음과 함께 독립운동이 시작되었고 복음과 함께 이 나라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 아닙니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복은 바로 먼저 살다가 신실한 믿음의 선조들이 눈물과 땀으로 뿌린 복음의 씨앗이 열매는 맺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룩의 영향력을 회복하라>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누룩의 영향력을 너무 많이 상실해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면 바로 이 누룩의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비록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 않더라도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누룩이 되어 세상으로 침투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누룩의 능력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다시 한번 복음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확장되어 나가야 합니다.

 

저희 큰 자형이 성격이 참 깐깐한 분이신데.. 세상적으로 보면 저런 사람이 예수를 믿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자기 고집도 세고.. 좀 외골수 같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같은 회사에 한 동료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어요. 성격이 외골수다 보니 그렇게 친구가 많은 편도 아닙니다. 그 정도로 사람이 다가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성격의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됬다는 것은 참 신기해요.. 참 놀라운 일이에요. 역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직장 동료 되시는 분을 나중에 만나 뵐 기회가 있었는데 참 신실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따뜻해 보였습니다. 가식적이지 않았고 진실했습니다. 직장을 다녀도 그냥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리는 그런 헌신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절대 겉으로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향력이 있습니다.

누룩처럼 보여도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통해...이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해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씨와 같이 크게 자라기 바랄 뿐 아니라 누룩과 같이 세상으로 침투해 들어가 변화를 가져오는 놀라운 일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좁은문은 영광의 길입니다 운영자 2012.01.30 0 632
다음글 치유하시며 회복시키시는 예수님 운영자 2012.01.27 0 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