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지 않으면 | 운영자 | 2011-12-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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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3장 1절~5절 회개치 아니하면~ 여러분은 누군가 환란을 만날 때 어떻게 바라보나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는데 반대로 우리가 경쟁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손해를 입는 것을 보면 ‘참 고소하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말은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은연중에 다른 사람이 잘 안되길 바라는 그런 마음이 우리 모든 사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속을 썩이고 애를 먹이는 그런 사람이 무슨 일이 생길 때 은연중에 ‘내가 뭐랬어!! 그러니까 저러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와 같은 생각 이와 태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안됩니다. 주변에 환란을 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더욱 겸허히 살피며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해석의 문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주시는 해석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바로 비교우월의식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따라해 봅시다!! 겸손하라!! <후쿠시마 원폭피해> 시간이 좀 지났지만 일본 훗쿠시마에서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하여 단 한 시간만에 3만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엄청난 재산피해를 가져온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단 한 시간만에 소주에 있는 한인들이 어른아이 할 것없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곳 주변에 있는 원자력발전소였습니다. (지금은 어떻는가 모르겠는데) 반경 30km가 사람이 살지 못하는 죽음의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물이며 채소이며 고기며 그곳 주변에서 생산되는 모든 생산물은 못먹게 되었습니다. 원자력 사고는 1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손에게까지 해를 끼친다는데 문제가 심각합니다. 일전에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 제일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바로 임산부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주변에서 공기를 마시고 임신된 아이들이 1년 후에 다 피복 환자로 출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지금도 그 나라에서 도저히 고칠 수가 없어서 해마다 미국이 데려다가 샌디에이고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사실 일본에 일어난 이런 지진과 원폭피해에 대해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일본이 다신론 국가이며 기독교를 거부하는 사회적 배경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부분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운데 어떤 분은 이런 생각을 가집니다. “고소하다. 자기 나라 땅도 아닌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거만하고 잘난 체 하더니 잘됬다!! 하나님을 그렇게 대적하며 거부하더니 벌을 받은 거야!!”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축복받은 땅. 일본은 저주받은 땅. 이런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옳은 것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자진 자에게 예수님이 말씀하고 싶으신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의 격언 “네 자신을 알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일본은 죄가 많아서 벌을 받고 우리는 죄가 없어서 축복을 받나요? 우리는 진짜 축복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에 지진도 일어나지 않고 쓰나미도 생기지 않나요? 아니라는 거여요.. 해운대라는 영화를 보면....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해운대에 밀어닥칩니다.. 상상하여 만든 영화이지만 그러한 현상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두가지 사건>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환란에 대해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지체들이 만나는 환란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 예수님은 당시 일어났던 2가지 사건을 들어 교훈하고 계십니다. 먼저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갈릴리 폭동> 예수님 당시 갈릴리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은 빌라도였는데 그는 예수님을 재판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입니다. 총독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나라를 평안하게 잘 다스려.. 로마에 바치도록 배정된 세금을 충실히 잘 바치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각 나라마다 자치를 허용해 주되 문화와 경제적으로 로마에 종속되게 하는 헬라화정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식민지배 자체에 불만을 품은 일부세력들이 폭동을 빈번히 일으켰습니다. 특히 갈릴리는 이러한 폭동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무엇 때문에 폭동을 일으키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다른 사람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을 보면 독립 투쟁이었다기보다 살기 어려워서 일어나는 사회 불만에 대한 폭동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이스라엘 변방의 사람으로 일반적으로 거칠고 과격했습니다. 오늘날 중국으로 말하자면 신짱 위그루족 정도 될 것입니다. 위그루들이 사회에 불만을 품고 데모를 하는 것처럼 갈릴리 인들도 그런 폭동들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큰 폭동이 일어났고 빌라도는 군대를 동원해 그들을 강제로 진압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진압하고 그 자리에서 죽인 것이 아니라.. 폭동을 일으키는 자들은 이렇게 된다는 본을 삼기 위해 그들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처형하고 피를 제단에 바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끔찍한 만행을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본 것입니다. 그리고는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저 갈릴리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켜 이렇게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다. 죄가 많기 때문에 이토록 참담한 비극을 맞이하는 것이지.. 만약 죄가 없다면 폭동을 일으켜도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야!!”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회개치 아니하면>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2절입니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2절)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학살당한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자신들이 지은 죄 값 때문에 그런 비참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있기 때문에 학살당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같이 3절을 보겠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어찌하여 너희들은 폭동을 일으켜 죽임을 당한 그 사람들만 특별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들만 특별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심판받은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한 것이라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은 보편적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망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이뤄질 것입니다.. 심판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다. 만약 너희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의롭다고 여기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오지 않는다면 너희들이 망하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의 교만> 사실 지금 예수님께 이 갈릴리 사람들의 죽음사건을 가지고 나온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요? 바로 예루살렘 사람들입니다. 지금 예수님 주변에는 예루살렘 사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예루살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스스로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입니다. 서울 사람들이 서울은 중앙이고 서울 외에 모든 도시를 시골사람처럼 여기는 것과 같아요... ‘제가 부산 사람입니다’그러니까... 아 예 시골에서 왔군요!! 그것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갈릴리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이 폭동을 일으켜서 로마군인에게 잡혀와 죽었다고 그러니까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저 천것들. 개념 없이 함부러 살아가니.. 저런 벌을 받지!!’ 이런 식으로 보는 겁니다. 마치 그들은 아주 하나님을 잘 섬기는 특별한 존재이고 폭동을 일으키고 문제를 야기시키는 저런 자들은 법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그런 자들처럼 여기는 거여요.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가짐이 이런 것일까요? 그렇게 구별하여 심판 당하는 자를 고통당하는 자를 정죄하는 이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진짜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라면. 가진 우리들이 저들을 돌보지 않았구나!! 저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구나!! 저들을 너무 멀리했구나!! 하나님을 바로 믿는 우리들이 제대로 율법교육도 받지 못한 저들을 섬기지 못하였구나!! 이런 자세로 그들을 바라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자기들만 이스라엘 백성의 주류인 것처럼 갈릴리 사람들은 색안경을 가지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정죄했습니다. 한 사건을 만났을 때 죄가 많아서 저렇다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모인 기득권자들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살다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삶을 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예루살렘 변두리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대를 받는 지방인 갈릴리 지방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가장 상처입고 소외당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갈릴리에서 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들과 3년 동안 주로 동거동락하시며 상처입은 자를 사메주시고 가난한 영혼을 품어주시고 생명과 영생의 복음을 전해 주십니다. 주님은 당시에 가장 외롭고 힘든 영혼들이 누군인지 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 백성들은 자기 동족임에도 갈릴리의 영혼들을 향해 그런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낮은 자세가 되어있지 못한 거여요..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향해 경고합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깊이 자각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은연중에 가지는 차별하는 의식, 특권의식 이런 것이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며 낮은 자를 돌아보지 않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먼저 된 자로써 교회를 섬기면서 나중 된 자를 돌아보지 않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가진 자로써 가지지 못한 자를 돌아보지 못함을 회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여요. 배운자로써 배우지 못한 자를 비교하며 정죄했지 섬기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회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낮은 자와 함께 하지 못한 것이라면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나아가지 못하면.. 우리가 받은 만큼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복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이요 구원이 날이기 때문에 성령과 복을 한량없도록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가지고 자기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특권의식 누리는데만 쓴다면... 진정으로 낮은 자리에서 형제를 돌아보고 교회를 돌아보고 이웃을 돌아보는데 쓰지 못한다면.. 우리는 받은 복만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실로암 망대에 죽은 18인> 그리고 우리 주님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더 꺼내십니다. 사실 첫 번째 이야기는 유대인들이 꺼낸 이야기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었고 두 번째 이야기는 우리 주님이 최근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직접 말씀하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성경 누가,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이 실로암은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연못인데 예루살렘으로 물을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연못 주위에 경비를 목적으로 망대를 세워놓았습니다. 이 망대는 적들이 오는지를 살피는 역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올라가서 놀거나 그 밑의 그늘에서 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정자와 같은 역할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망대가 무너지면서 18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사를 하는 가운데 부실 공사 때문에 무너졌는지, 아니면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망대에 올라감으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무너졌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18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18명이 왜 하필이면 거기에 있다가 죽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생각하기를 “그들이 죽을 죄를 범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이다. 왜 하필 그 시간에 망대가 무너졌겠느냐? 죽은 18명이 그들의 죄 값을 치른 것이다”라고 말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연히 당한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를 보면서 “대게 재수없다!! 명운도 참 없다!” 이렇게 여기지만 유대인들은 훨씬 심각합니다. 그들은 죽음을 죄에 대한 저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죽은 사람은 그럴만한 죄가 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4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무슨 말입니까? 죽은 18명이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말씀하시고 나서 5절에 앞에와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갑자기 망대가 무너져 죽은 18명은 죄가 많아서 죽었고 그들은 죄가 없기 때문에 살고 있다!! 이런 착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들 또한 회개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이와 같이 망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에 쓰나미가 일어나 3만명이 죽었는데 그것은 일본국민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온갖 음란의 영이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죄가 많아서 벌을 받은 것이다!! 중국 땅 쓰촨성에 대지진이 일어나서 8만명이 죽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했기 때문에 벌을 받아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하나님을 잘 섬기기 때문에 이렇게 지진도 일어나지 않고 쓰나미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대답은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우월의식 가운데 교만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우리 주님은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너희들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 하나님이 이와같이 엄중한 경고를 보내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로 잘난체 하지 말고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삶을 살라고 하심인 것입니다. 교만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심인 것입니다. 갈릴리 망대에 죽은 자를 바라보는 유대인의 자세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우월의식입니다. 자신들은 외식과 교만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우월의식.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서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주변에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불행한 일들을 보면서 깨달음과 교훈을 받으려는 자가 아니라 은근히 자기 의를 과시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하는 일들이 참 잘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풀리지 않고 잘 안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박을 터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는 일마다 풀리 쪽박을 차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 어떻게 잘되기만 합니까? 잘 안되다가도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잘 안되는 사람들, 어려움을 만나는 자를 바라 볼 때 우리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은근히 그런 사람을 보면 자기의 의를 내세우고 싶어하는가 하면, 또한 자기를 과시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 요즘 통 기도도 안하고,,,!! 신앙생활도 별 쉬운챦게 하더니 하는 일마다 저래!!” 물론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연단의 과정으로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변에 있는 넘어진 사람, 어려움을 만나는 사람을 볼 때 우리의 의, 우리의 교만이 드러나서는 절대 안됩니다. “나는 그래도,, 저 사람하고는 다르지!! 그래도 이 정도는 되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사는 것이쟎아!! 그러면서 은근히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자세가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무엇인가요? 형제의 아픔을 보면서.. 환란당한 영혼들을 보면서.. 그것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며 혹 나에게 잘못된 것은 없는지!!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가 없는지!! 회개해야 할 것은 없는지!! 그러면서 깨어 날마다 자신의 발을 씻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마치 자신은 의로운 사람인 냥 남과 비교하며 정죄하며.. 자기 의를 내세우며 살아간다면 결국 어떻게 될까요?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넘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결론>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형제가 환란을 만날 때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위로해 주십시오. 도울 수 있다면 더욱 좋은 것입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이 된다면 우리는 똑같은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어떤 존재인가요? 환란 받지 않을 자격이 있습니까? 심판 받지 않을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주시지 않으면, 은혜주시지 않으면 망할 수 밖에 없는 자입니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우리입니다. 그런데 무슨 의를 내세운단 말입니까? 거저 회개하면서 사십시오. 신앙의 부흥은 회개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시51:17]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이 상한 심령으로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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