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던지시는 불 | 운영자 | 2011-11-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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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2장 49절~59절 예수님이 던지시는 불 <불을 좋아하는 한국사람> 오늘 불 이야기가 나오는데 ‘불’ 그러면 왠지 정열적인 무엇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관심과 정열을 불어 일으키려 할 때 불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 때 젊은 대학생들이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화염병을 던집니다.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러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면서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을 잡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은 한미 FTA를 반대하여 국회에서 최류탄을 터트리는 장면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불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 한 몸으로 인해 무엇인가 활활 타오르기 원하는 마음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자기 몸에 불을 놓아 분신하는 그 사람은 자신으로 인해 민주화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바라는 마음이 있지 않겠어요. 촛불집회를 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인해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불꽃처럼 활활 일어나기 바라는 마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만들어 낸 그런 불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때가 되면 식어버리고 꺼져버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꺼지지 않는 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이 우리의 심령에 새겨놓으신 불입니다.. 이 불이 한번 우리에게 떨어지면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이 던지신 불> 49절 말씀을 보십시오.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이 말씀은 좀 난해한 구절입니다. 이 말씀을 잘못 읽으면 마치 우리 주님이 데모주동자이신가?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지금 주시는 이 불은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일으키는 불과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불을 붙인다’는 표현을 쓰지 ‘불을 던진다’는 표현은 잘 쓰지 않습니다. 어떨 때 불을 던진다고 묘사합니까? 그것은 누군가를 공격할 때에 쓰는 표현입니다. 전쟁에서 적을 불로써 공격할 때 쓰이는 표현이 불은 던진다는 표현입니다. 즉 처음에 누가 불을 던지면 그것을 신호로 일제히 불화살을 쏘거나 기름 가마에 불을 붙여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불을 던진다’고 말씀하신 것은 2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여러분과 저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먼저 ‘불을 던진다’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성령의 불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인간이 일으킨 불로 활활 타오르기 원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불로 활활 타오르기 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18,19절에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성령의 불이 붙을 때 죄에 메여 종노릇하며 살아가든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습니다. 성령의 불이 붙을 때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고, 눈먼 자가 보게 되고, 눌린 자가 자유케 되는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성령의 불이 붙을 때에 진정 이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붙을 때 교회가 새로워지고 민족이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얼마나 불안한 요소가 많은지.. 삐뚤어진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실 인터넷을 열기가 겁이 납니다. 얼마 전에 서울의 한 집에서 아들이 자기 어머니를 살해하고는 8개월 동안이나 유기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고 오늘날 우리 시대에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공부에 한이 맺힌 어머니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다 걸고는 전교 1등도 아니고 전국 1등을 요구하며 공부하는 기계로 만듭니다. 공부를 하라고 닥딸 하면서 책상머리에는 ‘서울대학교’라고 큰 글씨로 써붙여 놓고, 엄마가 보는데서 공부하도록 책상도 거실에 갖다놨어요.. 그리고는 공부를 안하든지 성적이 안좋으면 시퍼렇게 멍들도록 때립니다. 그런데 공부가 마음 먹은데로 됩니까? 부모가 겁이 난 그 학생이 성적은 위조해 어머니께 보여줬는데.. 수능이 다가오자 자신의 거짓말이 드러날까봐 두려워.. 어느 날 홧김에 어머니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내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러 대하면 안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누가 바꿀 것이며 누가 새롭게 하겠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가랴4장6절 (합독) -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이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공부를 안한다고 힘으로 밀어 붙인다고 됩니까? 도리어 반항심만 늘어나지요. 그 마음속에 성령이 임하게 될 때 비전이 생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행동도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가장 위대한 가치를 위해서 내가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집회를 통해 여러분 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합니다.. 그것을 꼭 붙드십시오. 그리고 그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력하고 비참한 우리 인간들의 마음 속에 성령이 임하시면 도대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휘발유 가마에 불을 던지는 것과 같은..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심령에 성령이 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고, 사람들 앞에 서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니!!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외칩니다.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능력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부르는 ‘부흥’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땅에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 하소서 이 땅 고쳐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땅에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그렇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때 황무한 이 세상이 고쳐지고,,, 무너진 이 세상의 기초가 다시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는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이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도록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우리 은혜의 교회에 불어오도록.... 그리하여 성도마다 말씀과 기도를 사모하며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희생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그런 바람이 불어오도록... 성령의 바람이 우리 가정에 불어오도록.. 그리하여 부부간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부모와 자식간의 다툼이 아니라 감사가 넘쳐나며 비전과 꿈이 공유되어지도록. 예수님으로 즐거워하고 울고 웃을 수 있도록.. 성령의 바람이 우리의 직장안에도 불어오도록.. 그리하여 직장이 하나님을 만나는 성소가 되어 직원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처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아멘~ 또한 예수님이 불을 던지시겠다는 것은 악한 세력을 완전히 정복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시골에 가보면 가을 추수가 끝이 나고 겨울이 다가오면 논두렁에 불을 놓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불을 태우면 땅속에 있는 온갖 종류의 나쁜 벌래들을 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벌레는 하나하나 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논두렁에 불을 놓아버리면 풀 속에 비해 있던 모든 벌레들이 불에 타 죽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입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이 마귀의 일을 한꺼번에 멸하신 예수님의 사역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세력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세력을 한꺼번에 무력화시켜 버렸습니다. 50절에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주님이 받을 세례는 바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못박혀 죽어셔야 할 ‘십자가의 저주’를 의미합니다. 이 십자가는 단순히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온갖 고통과 치욕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 주님은 누구보다 잘 아셨기 때문에 ‘답답하다’고 토로하셨습니다. “나의 받을 십자가가 있으니 그것을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지만은 아무런 느낌도 감흥도 없습니다. 하지만 당장 바로 앞에 십자가를 져야 할 예수님은 결코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악의 세력을 멸망시킨다는 것..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킨다는 것은 쉽게 이뤄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저주를 한 몸에 다 받는 가운데 피를 흘리며 죽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오죽 답답하셨으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을까요? 하지만 답답하다고 주님은 그 길을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류를 구원하고 살리는 길임을 아셨기 때문에~ 기꺼이 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순종이 있으셨기에 우리는 십자가의 그 피로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있었던 것입니다. 아멘~
<십자가가 가져온 결과> 그런데 예수님의 이 십자가가 저절로 이 세상에 완전한 평화를 가져다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51절~53절 말씀을 보십시오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52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탄의 세력을 쳐부쉈다고 해서. 태어나자마자 모든 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이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만이 이 십자가의 은혜. 십자가의 능력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구원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구원은 자동적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복음으로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있는 자들을 한사람씩 빼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호락호락 자기에게 속한 자가 하나님께 넘어가도록 가만히 놔둘까요? 이를 악물고 안놔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치열한 영적인 싸움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위의 본문은 바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치러야 할 치열한 영적인 싸움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성령의 불이 붙은 이후에는 엄청난 영적전쟁이 벌어질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이후에 얼마나 엄청난 영적전쟁들이 벌어졌습니까? 복음을 지키고 증거하려는 제자들과 그것을 핍박하려는 자들이 얼마나 엄청난 전쟁을 벌였나요? 사도행전을 보면 이런 영적전쟁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성령 받은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니 관원들이 때리고 협박합니다. 감옥에 가둡니다. 제자 야고보는 칼에 베여 순교합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습니다.. 이 구원의 복음을 한번 경험한 자는 이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거여요. 그런데 세상마귀 권세는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음을 전합니다. 세상이 핍박을 가해오면 복음이 위축되는 것 같고, 패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절대 패배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복음전도자를 죽이면 복음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순교한 그 성도의 피와 땀방울 위에 또 다른 생명이 잉태케 하심으로 복음이 뻗어가게 하심을 보게 됩니다. 스데반을 죽이면 교회가 잠잠해 질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스데반의 그 순교위에 바울이 변화되게 하심으로 온 열방을 향해 복음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탄은 절대 여러분을 해하지 못합니다. 당장은 가족이 나를 저버리고 나를 핍박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워 신앙을 저버리면 안됩니다. 그때 더욱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참고 인내하다보면 결국 하나님이 다 보상해주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보상만이 아니라 더 큰 선물로 하나님이 안겨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집에 신앙생활 하던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집도 참 못살았는데 부모님이 야단을 쳐도 눈물을 흘리며 교회에 나왔습니다. 눈물이 나도 교회에 나와 가지고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또 한 친구는 집이 수의사도 하고 잘 살았는데 처음에 몇 번 부모님 몰래 교회에 나왔는데 결국 교회가는 것이 발각되고 부모님 성화에 못이겨 신앙생활을 그만뒀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주님을 끝까지 붙든 친구는 목사님 딸하고 결혼을 해서 지금 저와 같이 목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친구는 세상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들려오는 소식이 별로 좋지가 않아요. 여러분 핍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승리하십니다.. 저도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나지 못했기에 신앙생활하면서 부모님과 부딪히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에 있어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부모님도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와 매일 새벽 기도하는 기도의 후원자가 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님을 안 믿다가 그 집안에 누군가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세상의 논리는 이상하게 봅니다. 세상의 미신은 한 집안에 종교가 다르면 그 집안이 망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타종교를 믿다가 쉽게 개종을 못합니다. 그런데 잘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집안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짜 그 가족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모두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는데요!! 모두 지옥가는데요. 어떻게 함께 망할 수 있겠습니까? 핍박.. 분명히 생길 것입니다. 종교가 다르고 세계관이 다른데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나 핍박이 두려워 예수님을 믿는 것을 주저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다 보면 피할 길을 다 예비해 두시고.. 때가 되면 여러분으로 인해 가족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여러분 때문에 가족이 복을 받는 놀라운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 <새로운 시대의 도래>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엇을 보면서 살아가는 자인가요? 현재인가요? 미래인가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인가요? 아니면 장차 우리가 들어갈 천국인가요? 우리는 미래를 보는 자이며, 장차 들어갈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만날 때 마다 하는 인사가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마라나타’라는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들은 힘들고 어려워도 이 마라나타를 외치며 서로를 격려며 살았다고 합니다. 54~55절을 보십시오 “5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예수님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구름이 서쪽에서 일어나면 소나기가 오는 것은 알고 남풍이 불면 더워질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 왜 시대는 분별하는 눈이 그렇게 없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요? 말세지말 임과 동시에 바로 성령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이 오시어 부활 승천함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원근각지에서 구원받을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계십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이 말씀이 진리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 어떤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인생의 어떤 문제 가운데서도 놀라운 승리를 맛보게 되는 때가 지금 우리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잘 분별하여 모든 문제를 가지고 주께 나아와야 합니다. 미루면 안됩니다. 마귀는 자꾸 미뤄라고 유혹합니다. 내일 하나님 붙들라고 합니다. 미루면 끝납니다. 성령의 시대이며 말세지말이라고 했습니다. 미루다가 개인의 종말이 한 순간에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58~59절 말씀을 보세요!! “58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속히 하나님과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속히 예수님을 믿어 구원 얻으라는 것이며, 죄 가운에 빠져 살아가는 영혼은 속히 예수님께 나아와 죄용서 받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문제에 사로잡힌 자들은 그 문제를 속히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와 하나님께 해답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나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천국의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이런 구원과 회복의 축복을 경험하는 한 시간 되기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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