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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 운영자 201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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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2:22-34 염려하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복되고 귀한 자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도 우리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의 문제가 해답을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들판에 익은 곡식과 열매를 볼 수 있는 풍성한 가을의 계절입니다.

올해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주셨습니다. 과일가게를 가보니 얼마나 맛나는 열매들이 많은지요!! 이런 것들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거저 감사할 뿐입니다.

육적으로도 열매가 있지만 영적으로도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가을이 되기 바랍니다..

벌써 2011년 한해도 두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교회적으로 중요한 집회를 앞두고 있고, 각 기관의 총회와 내년도를 설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뿐만아니라 여러분의 회사나 가정도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내년도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은혜와 복으로 채워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는 지난주에 탐심을 버려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인간이 탐심을 버리지 않으면 물질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탐심에 사로잡혀 자기를 위해 분에 넘치도록 재물을 쌓아놓고.. 자기를 위해 즐기려고만 했지... 나눠줄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우리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재물을 쌓아놓지만 우리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오늘 오라고 하시면 가야 할 인생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지혜로운 자인가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재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 부요한 자가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자족할 줄 알며, 이웃에게 베풀힘이 있을 때 베풀며, 마땅히 하나님께 드릴 것은 드릴 줄 아는 그런 자가 지혜로운 인생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일상적인 문제 - 염려>

오늘 본문은 다시 제자들에게 돌아와 주님이 주신 교훈입니다.. 물질적인 교훈의 연장선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있는 자는 가진 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고민을 한다면 ...

일반적인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 것인지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문제로 염려를 안고 살아감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22절~2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세상 사람들은 가장 큰 관심사가 의식주 문제입니다. 얼마 전에 서울시장이 새로 뽑혔지만 서울시장이 누가 뽑히고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장바구니의 물가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물가가 오르면 생활에 직접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중국도 물가가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모릅니다. 제가 올 때는 중국 돈 20원만 주면 몇 가지의 과일을 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0원가지고 사과 몇 개 밖에 못삽니다. 우리나라도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어서 큰일입니다. 물가의 흐름을 좌우하는 기름 값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치솟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형편에 있는 우리들을 향해 주님은 느닷없이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씀은 주님이 세상 물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같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은 훨씬 근본적인 것입니다.

사람은 의식주로 염려하지만 그 염려는 부질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염려하는 우리에게 그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답을 주심으로 염려에서 벗어나게 하심을 보게 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

23절을 보십시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것입니다. 음식입니까? 목숨입니까? 당연히 목숨입니다.

몸입니까? 의복입니까? 무엇이 중요하나요? 당연히 몸이 더 중요하지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목숨이 더 중요하고 몸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정작 목숨에는 관심이 없고 음식에 안달이 되어 있습니다. 몸을 위해서는 관심이 없고 의복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먹어야 살지요. 입어야 다닐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먹는다는 것, 입는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의식주를 말함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해결되어 있음에도 사람들은 정작 더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기보다 여전히 거기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교훈을 주시며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의 삶이 단순히 먹고 마시는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위해 존재해야함을 말해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고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왜 사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육체적인 생명보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까? 의식주를 두고 하는 염려는 하나님을 잘 모르는 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의식주 문제를 두고 누구나 염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탐심을 물리치는 것도, 염려를 벗어나는 것도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의 돌보심을 잘 알게 되면 탐심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돌보심을 신뢰하게 되면 염려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까마귀>

그래서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24절)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추수하지도 않습니다. 곳간이나 창고도 짓지 않습니다. 하지만 까마귀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까마귀가 약먹고 죽었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굶어죽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어요..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세상은 여러분을 알아주지 못하고... 직장은 여러분을 알아주지 못해도 여러분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입니다. 까마귀도 하나님이 먹이시건만 하물며 우리겠습니까? 외국에 나와 직장생활하다 보면... 갑자기 직장에 변동이 생긴다든지 발령이 난다든지 그러는 경우들이 있어요. 저희 교회 다니시는 분들 중에 어느 날 전화를 드렸는데 통화가 안되고 아예 번호가 없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직장생활 하다가 갑자기 한국으로 발령이 났다든지 아니면 직장을 잃어버렸을 수 있을 겁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요.

세상은 이렇습니다.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까마귀보다 훨씬 존귀한 자입니다. 까마귀를 먹이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삶을 먹이시지 않겠습니까? 이 믿음붙드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에는 새를 보라고 그랬는데 오늘은 까마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늘 아버지의 돌보심에 대한 바른 신앙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 이 구절을 표준 새번역으로 한번 더 읽겠습니다 -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24)

신앙은 자신을 까마귀보다 훨씬 더 귀하다는 주님의 말씀에 “아멘”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이 직장이 때론 식구들조차, 아니 배우자조차 우리의 가치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예”라고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키>

또한 25~26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위해 염려를 한다고 해도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은 우리의 키에 비유합니다.

우리 중에 키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보신 분은 알 것입니다. 왜 나는 키가 작지? 그러면서 자고 일어나면 키가 10cm만 자랐으면!! 아니 10cm가 아니라도 1cm라도 자랐으면!! 이런 바람이 있습니다. 김태희 같은 연예인은 키가 작아도 얼굴이 예쁘니 카버가 되지만 얼굴도 안 따라 주는 사람은 키라도 좀 컸으면 하는 바람이 꿀떡같을 때가 있어요!!

제발 1cm만 1cm만 그런다고 해서 자랄 키가 안자라고 안자랄 키가 자라느냐? 아닙니다. 아무리 키 크는 약을 먹고, 밀가루 음식을 먹어도 자랄 사람은 자라고 안자랄 사람은 안자랍니다.. 내 힘으로 키를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빨리 포기하는 것이 낫습니다. 여러분의 마음만 괞찮다면 키가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의 요소가 안되니 전혀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작은 것이라도 능히 할 수 없는데 어찌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염려 붙들어 매라는 것입니다.. 염려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백합꽃>

그러면서 주님은 또 다른 비유를 하나 소개하십니다..

공중을 나는 까마귀를 보면서 하늘 아버지의 돌보심에 대한 순수한 신앙을 회복할 것을 명하시고는 이어서 들판에 핀 백합꽃으로 그들의 눈을 돌리도록 명합니다. 27절~28절을 보십시오.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은 차려 입지 못하였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표준새번역)

 

봄이나 가을에 들판으로 나가 펼쳐진 꽃을 보노라면 너무 아름다워서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백합화며,유채꽃이며, 들국화며, 코스모스며... 이런 꽃들이 자라도록 사람들이 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수고도 하지 않고 그 꽃을 뽐내기 위해 길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솔로몬 왕이 입은 왕복도 이 꽃만큼 아름다울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 땔감으로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조차도 이렇게 입히시는 것입니다. 그럴질대 하나님의 사랑받는 대상인 우리야 더 잘 입히시리라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즈음 나온 메시지라는 새로운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27 들판을 걸으면서 야생화를 관찰해 보라 그들은 모양을 내려고 난리를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그 색깔과 디자인의 독특함을 어디서 본적이 있느냐? 세상에서 옷 잘 입는 남녀 열 사람을 그 곁에 세워도 초라해 보일 것이다/ 28 하나님께서는 야생화에게도 그런 관심을 쏟는다면, 대부분은 눈에 띄지 않고 사라지지만,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쏟으시며 너희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너희들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자식의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은 아버지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하늘의 까마귀도 들의 백합화도 먹이시는 사랑의 아버지, 능력의 아버지이세요.

그러할진대 아들 예수님을 죽이시면서까지 사랑하신 우리를 위해 그깥 먹고 마시는 것 하나 공급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이런 믿음 없다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겁니다. 29절 하반부말씀에 만약 우리가 무엇을 먹어야 하나 무엇을 마셔야 하나 이런 문제에 사로잡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여요.

우리 아버지는 이런 것은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너희들은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며 살아라고 도전하십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가 구해야할 삶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가치입니다. 31절입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가치는 먹고 마시는 것 이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탐심을 좇아 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다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파트평수를 늘릴 것인가? 그리고 거기에 최고급 가구와 전자제품을 넣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고급 차를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멋있는 식사를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비싼 옷 명품을 둘러 남에게 더 잘 보일까? 이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전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고가 달라야 하고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신앙인은 같은 세상을 살아도 세상 사람들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야 합니다. 살아가는 목적이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떠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1절)

여러분,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적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수도 없습니다.

혹 여기에 아직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 여러분 마음속에 주님 들어오시어 죄와 허물을 사해 주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의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오늘도 나의 삶의 열매를 통해 하나님을 기뻐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이것이 성도의 고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드리고 발걸음을 나설 때 이런 기도가 터져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이번 한 주도 하나님의 나라가 저의 삶을 통해 이뤄지기 워합니다. 나의 말과 행동, 나의 결정, 나의습관이 하나님을 기뻐게 해 드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옵소서” 할렐루야!!

 

세 번째로 하나님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영혼을 향한 거룩한 부담감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중국 이 땅에 살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 이 땅의 한인과 중국인을 포함해서 모든 영혼의 구원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확장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령관이신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이 책임감을 망각하고 살면 안됩니다..

주님은 나중에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너로 중국에 보낸 것은 놀러 보낸 것도 아니고, 먹고 마시고 살아라고 보낸 것도 아니고, 자녀 공부시키러 보낸 것도 아닌데 너는 무엇을 했느냐” 이런 책망 받으면 되겠습니까? 복음을 위해 사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십시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사십시오.

진짜 중요한 것은 잊어버리고 껍데기만 찾는 인생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나 귀하고 좋은 것인지. 우리가 그것을 찾고 구하기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도 덤으로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1)

32절도 마찬가지입니다.“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은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나라와 함께 이땅의 복을 주시기 기뻐하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 나라의 가치>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가치가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가치인지요!! 이것과 바꿀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먹고 마시는 일만을 위해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열정을 쾌락을 추구하며 사는데 쏟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를 위해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할 줄 아는 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장 위대한 가치를 위해 이 땅에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임을 교훈해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목숨 걸고 있는 이 물질을...> 진짜 중요한 가치를 위해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임으로 교훈하십니다..

33절~34절 말씀입니다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지난 주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도 보았듯이 시간 있을 때 베풀지 않으면 기회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내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므로 내게 있을 때 손을 내밀어 구제하기를 아까와 하지 마십시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두십시오. 낧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라 하십니다.

여러분은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가 있나요? 하늘 나라 주머니가 있나요?

‘너희 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짜 그렇지 않습니까? 물질을 보면 그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쓴 것을 보면 그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드린 물질을 보면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이 많고 적음은 중요치 않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진심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실 때.. 어리석은 부자 농부처럼 자신만 위하여 궁리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제자답게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십시오. 주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십시오... 그것이 가장 안전한 하늘은행에 개좌를 개설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확장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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