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탐심을 버리라 | 운영자 | 2011-11-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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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2장 13절~21절 삼가 탐심을 버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불러주심을 믿습니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받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사람은 결국 하나님 앞에 설 수 밖에 없는 존재이며, 그때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고, 백성 앞에 하나님을 시인하는 정직한 삶을 살며, 어떤 순간에서든 성령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주 교회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행사인 바자회를 열었는데 날씨며, 동원이며, 행사진행이며..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치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모두가 수고 많으셨습니다. 행사를 진행하는 데 직원이 저에게 다가와서 건네는 말이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하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들이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요. 세상을 섬기는 교회의 바른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질에 관심을 가짐> 오늘 본문을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 중에 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 개인적인 문제를 꺼집어 냅니다.. 13절입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바로 집안에 있는 유산싸움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을 좀 내려 주십사하고 예수님께 와서 부탁을 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역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영적인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문제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조금 전에 심판대 앞에 서기 위한 제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데. 이 사람은 그런 것에 관심은 없고 지금 자기 유산 상속받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런 자라도 외면치 않으시고...유산문제로 나온 그 사람에게 유산과 비교할 수 없는 삶의 훨씬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교훈을 주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이 사람에게서 보듯 오늘날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먹고 마시는 문제입니다.. 좀 더 은밀히 표현하자면 더 잘 먹고 더 잘 마시는 문제일 것입니다. 지금도 충분한데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져서 더 잘 먹고, 더 잘 누리며 살아볼까 하는 것이 사람의 주된 관심사항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대부분 부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일전에 신한은행에서 전자메일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돈이 얼마나 있어야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절반이 넘는 사람이 30억은 있어야 부자라고 답했답니다. 금융 전문가들 이야기로는 자기가 사는 집을 제외하고 금융자산이 10억 이상인 사람이 부자라 할 수 있답니다. 어떤 컨설팅업체에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이 정도의 부자가 약 13만 명 정도 된다고 해요.. 비공식적으로는 이보다 훨씬 많겠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부자반열에 들어가려고 안달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기준이고 세상적인 기준인데.. 부자가 되고 안되고 뭐가 그리 중요한가요? 사람들은 이 부자되기 위해 왜 그렇게 목을 메나요? 제가 보니까요. (몇몇 분들을 빼고) 여기계신 여러분들은 이미 충분히 부자입니다. 집 있고 끼니적정 없이 살고 있고요. 자식 교육시킬 어느 정도 재산 있고 하면 부자지요.. 그런데 뭐가 부족해서 더 부자가 되려고 목을 메고 있나요? 여러분, 우리 성도는 부자가 되는 것 그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순전히 세상의 기준입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하다가 나중에 다 잃어버린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자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직하게 잘 섬기다 보면 부도 따라온다는 믿음을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아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오늘 주님은 오직 물질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사람을 가리켜 매우 중요한 경고를 하나 하고 계십니다. 15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 하니라.”(15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만큼이나 우리 성도가 가져야 할 각오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탐심을 물리치려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있어야 주님을 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려고만 하지 그 내면에 생기고 있는 탐심은 없애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어리석은 부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동생은 이미 부자입니다. 그런데 탐심이 가득하기 때문에 형과의 재산분쟁에서 절대 양보하려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떡하든 형을 고발해서라도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탐심’은 필요 이상으로 더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을 말하는데 이 탐심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모릅니다. 이 탐심에 한번 사로잡히게 되면 영혼의 쉼도, 평강도 없습니다. “저것 가져야 하는데~ 가져야 하는데” 하면서 잠도 못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30평 아파트면 족한데 탐심이 생기면...40평 50평 가지려고 안달입니다. 여성 같으면 어떤 명품에 대한 욕망이 그러할 것입니다. 또한 요즘 젊은 세대들은 새로 나온 전자기기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을 보면 그러합니다. 남이 아이폰 가지면 나도 가져야 합니다. 그것 안가지면 가지고 싶어 죽을 지경입니다. 탐심입니다. 그런데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요즘 나오는 최신 폰을 돈 대로 잘 사용하시는 분 과연 몇이나 되나요? 그런데 탐심이 한번 생기면 안가지면 불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삶의 기쁨도 감사도 빼앗아 가버립니다.
이런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15절을 다시 합독합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이 탐심을 물리쳐야 해요.. 남이 가지는 것 다 가진다고 좋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가질 수도 있고 못가질 수도 있는 거여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다.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부자가 안 될 수도 있어요. 반드시 부자가 좋은 것 아닙니다. 인색하고, 자기만 아는 부자가 되려면 안되는게 좋아요. 부자가 되려면 깨끗한 부자가 되어야 해요. 아름다운 부자가 되어야 해요...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넉넉한 것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부자가 될수록 물질적 부요는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심령이 가난해지기는 점점 더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라!!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부자가 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손을 내밀기도 그만큼 힘들어 지고.. 자신을 내려놓기는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부자가 되어서도 자기의 것을 기꺼이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해 이웃을 향해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 부자는 참 아름다운 부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부자가 되기 얼마나 힘이 든지요.. 주님은 오늘날 자기만 생각하고, 물질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본문에 보면 한 부자가 등장합니다. 이 부자는 가지고 있는 재산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땅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농사도 엄청 잘 되어서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16,17절입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라고 고민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고민을 행복한 고민이라고 말합니다. 돈이 많아 어디에 서야할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그런 고민이 있다면 저에게 오십시오. 제가 좀 도와 드리겠습니다.. 이 부자가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내가 이렇게 하리라”고 무릎을 치며 깨달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18-19절) 여러분,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부자정도 되려면 일반적으로 부를 축적할만한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유지할 만큼 머리가 돌아가야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부자를 보십시오. 물질이 많아지니까.. 행복한 고민 끝에 “내가 이렇게 하리라”고 스스로 답을 내어놓습니다. 지금 있는 곳간으로는 소출을 감당하기 힘드니까 생각하기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18절)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정도 머리 안 돌아가서는 부자가 될 수도 없고 부자로 살아남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이 부자는 풍년으로 대박이 나기 전에도 이미 부자였습니다. 다만 이미 가진 창고가 이 풍작을 감당할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에 대안을 세운 것입니다. 모든 것을 쌓아두기에 넉넉한 대용량 창고를 하나 새로 짓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풍성한 곡식을 처리할 방안이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그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방안을 내어 놓습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19절) 이제 소원하던 생의 정상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향해 말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여기에 그의 세속적인 생각을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의 어리석은 생각의 극치는 마치 자기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재산이 그만하면 충분히 도달했다고 판단되었을 때 이제부터는 걱정근심없이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자신을 향해 선언합니다.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은 개입하십니다. 그의 모든 계획을 무산시키는 한 마디의 질문을 던집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 넉넉하게 재물을 모은 부자가 이제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기를 원할 때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여 간다면 그 풍성한 수확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그 부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님은 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람은 그 해 농사를 짓기 전부터 부자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해 농사가 대박이었습니다. 도무지 부자 집 창고가 감당이 안 될 만큼 농사가 대박이었습니다. 살던 동네뿐 아니라 이제 주변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우린 그런 사람을 보고 출세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를 향해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부를까요? 사업성공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업의 성공이라는 정점에 섰을 때 자신 외에는 다른 누구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는 운이 좋아서 성공을 했다고 믿습니다. 아니면 자신이 수완이 좋아 성공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그는 어리석은 자가 틀림이 없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시 14:1)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자리하지 않으면 감사가 자리할 수 없습니다. 대신에 교만이 자리합니다. 하나님이 복 주셔서 풍성한 수확을 하게 되었다고 감사하는 대신에 자신의 운이나 능력을 송축하고 이 부자처럼 자신의 영혼을 향한 축제를 선포하기 마련입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19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공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택된 소수의 사람만 도달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성공만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미래가 보장된 성공을 자신만을 위해서 누리려고 드는 것은 죄악입니다. 돈만 벌면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면 자신뿐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의 복리를 위해서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부자 농부는 남을 생각할 여유가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단지 자신을 위한 찬가만 부르고 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9절)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라고 부릅니다. 다시 한 번 잘 들어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공을 위해 노력하여 많이 도달했나요? 아니면 아직 한참 멀었나요? 성공을 이뤘던 아니면 아직 멀었든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부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주시기도 하실 뿐 아니라 때가 되면 되돌려 받을 권리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9절) 부자는 마치 물질이 자기 것인냥... 여러 해 동안 쓸 것을 쌓아 두었다고 생각하며 자축합니다. 그러나 물질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반문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 여기에 바로 부자의 어리석음이 드러납니다. 자신은 여러 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즐기리라고 생각하지만 주인께서는 오늘 밤이라고 선언합니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타피가 비참한 최후를 맞을 때 숨겨둔 재산이 무려 170조원이 된다고 그럽니다. 그는 이 돈으로 자자손손 영원히 먹고 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총에 맞아 죽고 말았어요. 이 돈으로 백성을 위해 일했다면 얼마나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이웃에 대한 배려도 없는 채, 자신의 탐심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옵니다. 혹 우리 생명이 이 밤에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심판의 날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집행 유예일 뿐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집행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비유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교훈을 주십니다. 21절을 읽어보시면..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21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은 저주받은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땅위에 재물을 쌓고 있으며 이것을 증가시키는 것 외에 다른 관심이 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죽음이나 심판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재물만 모으며 영원히 즐길 것처럼 생각하고 삽니다. 그래서 카타피와 같이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려고 발버둥 칩니다. 우리는 그런 어리석은 부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자가 하나님에 대해 부요한 자인가요? 먼저 첫째로 탐심을 버리고 있는 바를 족한 줄 아는 자가 하나님께 부요한 자입니다. 있는 바를 족한 줄 안다는 것은 믿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거지같은 사람도 되어 보았고, 부자도 되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일에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실 수 있지만 바울에게 꼭 필요한 것만 허락하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있는 것 가지고 교만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없는 것으로 부러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거저 주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 때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십니다. 히13:5 “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약속하십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는 대신 이 하나님께 여러분의 소망을 두십시오. 그리고 두 번째 가진 재물로 이웃을 위해 나눌 때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 삭개오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삭개오가 세리장으로 재물을 많이 축적했지만 사람들로 부터는 항상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세리장은 로마의 앞잡이로써 백성의 세금을 갈취했기 때문입니다. 돈은 많았지만 심령은 공허합니다. 행복이 없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변화되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께 말합니다. 내 가진 재물을 절반 떼어 가난한 자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제물을 갈취한 일이 있거든 4배나 갚겠습니다. 대단한 결단입니다. 자신의 재산을 이웃을 위해 내어놓는다는 결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기꺼이 이런 결단을 할 때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삭개오가 재물을 내어 놓았을 때 아까웠을까요? 아닙니다.. 물질이 없으짐으로 아까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마땅히 드려야 할 때 드렸기에 기쁜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요한 자는 바로 이런 자를 말합니다. 여러분, 형제에게 손을 내밀어 보십시오..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도리어 손을 내밀지 않을 때 몸과 마음이 멍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드릴 때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됩니다.다음에 또 살펴보겠지만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께 나아오면서 진심을 가지고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그랬습니다. 헌금은 진심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십의 일조는 모든 복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신앙의 고백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감사 또한 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마땅히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더 큰 복을 받아 더 많은 십일조를 드리고 싶습니다!! 더 감사의 제목이 넘쳐 더 많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이 주신 것을 마땅히 받으실 분에게 돌려드리는 삶이 하나님을 향해 부요한자입니다. <결론> 여러분, 자신만을 위해 재물을 쌓아두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십시오. 자신을 위해서 쌓아둔 재물은 심판 날 재앙이 될 것입니다. 부디 자족하는 법을 배우며, 이웃을 위하여 후히 베풀고, 하나님께 마땅히 드릴 것을 올려드리므로..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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