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자가 되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 운영자 | 2011-11-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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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2장 1절~12절 우리는 제자가 되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도입> 전 세계의 인구가 곧 70억이 넘어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영혼도 사랑하시지만 특별히 우리 주님의 관심은 당신의 택함받은 백성에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구별된 이 자리에 나와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크신 위로와 은혜가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도 우리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이 있었지만 특별히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사 특별한 말씀을 주심을 보게 됩니다. <외식의 두려움> 1절 말씀입니다.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예수님의 공사역 가운데 따르는 무리들이 수만명이나 되었지만 주님은 제자들에게 특별 교훈을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에 나온 여러분에게 특별히 주시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특별히 이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어떤 자세로 주님을 섬겨야 할 것인지를 보이는 중요한 제자도의 말씀입니다. 먼저 서두 부분에 우리 주님이 무슨 교훈을 주시느냐하면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조심하라 하십니다. 여기서 외식은 바깥에서 식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위선된 신앙의 모습을 말합니다. 이런 위선된 모습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자가 위선자인가요? 겉다르고 속다른 자를 말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자가 위선자입니다. 신앙인 가운데서도 겉다르고 속다른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자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세상에서의 모습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 이런 모습을 조심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서는 꾸밀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는데.. 하나님 앞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얼마나 꾸미고 잘난체 하는지요... 당시 종교지도자 중에 바리새인이 특히 이런 모습이 심각했기에 그들을 본받지 말라는 뜻에서 누룩 곧 외식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외식(위선)을 조심해야 할까요? 만약 우리가 이 외식을 조심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날에 다 폭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2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서는 감출 것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는 마음 따로 행동 따로 이렇게 주님을 믿어도 사람이 알지 못할 수 있어요.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절대 속일 수 없어요. 마지막 날에 다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어떤 기사를 보니까 서울 성북의 어떤 교회의 중직자가 신앙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이분이 주일에는 교회에서 그렇게 착실하고 존경받는 분으로 여겨졌는데 알고 봤더니.. 평일에는 돈되는 집을 골라다니면서 절도행각을 벌이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다가 덜미를 잡혀 경찰에 잡히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런 분은 그 죄가 경찰에 잡혔어니까 드러난 것 뿐이지.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또한 감추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외식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감추면서 아닌 척하는 신앙생활... 결국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이땅에서는 감추고 살아도 결국 주님 앞에 섰을 때는 다 드러나고 말 것이라는 거지요.. 3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심지어 우리가 말하는 것까지 다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실제로 말한 것을 우리가 다 듣지는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십니다. ♣ 따라해 봅시다. 주님은 내가 골방에서 말하는 것도 다 듣고 계신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 다 듣고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을 듣게 되니까!! 참 두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목사는 골방에서 한 말도 말이지만 청중인 여러분 앞에서 한 말도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중국에 와서만 한 설교도 1000편도 넘을 것인데... 하나님이 이것을 가지고 나를 평가하시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 얼마나 두려운지요. 그래서 설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한다는 말이 진리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위해 더 기도해 주셔야 할 줄 믿습니다. 저뿐 아니라 여러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밖에 있으면 모르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자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말조차도 소중하게 보십니다.. 그래서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기적도 베푸십니다. 하나님 비가 좀 오게 해 주세요!! 그랬더니 비가 내려요. 하나님 병이 낫게 해 주세요!! 병이 나아요... 이처럼 입술에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골방에서 조차도 함부러 말을 하지 마시고 항상 은혜로운 말 축복의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자, 그렇다면 이와 같이 최후의 심판을 믿는 신앙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모든 것이 폭로될 심판의 날을 마음에 둔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어떠해야 합니까? 먼저 첫 번째로 1.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정 주님이 가신 길을 걷기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만 두려워 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가 가장 크시기 때문입니다. 이 온 우주에 하나님보다 더 큰 권세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큰 권세의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제한된 인생을 잘 살 수 있는 비결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계시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권세를 더 의지하고 더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딜레마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는데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 보이는 세상의 힘을 자꾸 붙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먹고 사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우리는 신앙도 하나님도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하나님도 일단 먹고 살고 봐야지 믿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세상과 쉽게 타협해 버립니다.. 사실 그것이 마귀가 잘 쓰는 수법이에요. 세상의 힘으로 우리를 위협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마귀가 가장 잘 쓰는 수법입니다. 그런 일을 만날 때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세상의 힘이 아무리 세고 강해도, 그런 어려움이 아무리 크게 밀려와도 하나님을 절대 버려서는 안되요. 하나님을 밀어내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 손 붙잡아야 해요!! 4~5절 말씀을 보십시오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당시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주님을 섬기며 만나게 될 핍박이 어느 정도인지 미리 예측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을 믿다가 어마어마한 핍박을 받을 자들도 나올 것이고 심지어 순교하는 자들도 나올 것입니다. 그때에 그들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면 안되고,,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말씀을 미리 주는 거여요.. 오늘날 북한에서 신앙을 지키고 있는 동료들이 이 말씀을 들으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몸을 죽이는 공산주의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기껏해야 목숨을 가져갈 뿐이다../ 마땅히 두려워 할 자는 죽은 후에 그 영혼을 지옥에 던져넣는 권세 잡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아멘~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만나는 환경은 이와 좀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세상의 권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힘보다 크신 하나님을 두려워 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마지막 심판날에 인정받는 비결입니다. 직장생활 하다가 주일에 출근을 안하고 교회에 오게 되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지 말아야 할 자리에 함께하지 않으면 낙인찍어 버리기도 합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면 기꺼이 그런 결단을 할 수도 있어야 해요!! 우리만 그랬던 것이 아니에요.. 초대교회 당시 선조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불이익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공무원이 되는데도 불이익을 당했고 예수 믿는다는 이유 만으로 갖가지 제약을 만났다고 그래요. 그래도 그들은 나는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영혼을 지옥에 던져넣는 하나님을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돌보시는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은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6절과 7절 말씀입니다. “참 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 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12:6-7) 여기서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두려워할 권세가 많으신 분인 동시에 우리를 세밀하게 돌보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참새는 가난한 자들이 값싸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음식재료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 흔한 참새도 하나님의 관여하심 가운데 있다는 거여요. 그런데 하물며 주님의 친구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있습니까?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무심하게 여기지 않으시는 분께서 여러분의 생명을 훨씬 더 귀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신뢰하십시오. 경제의 위기 속에서도, 크고 작은 어려운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자상한 돌보심을 기억하십시오. “참 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 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12: 6-7) 힘들고 어려울 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면서 생각하십시오.. “나는 많은 참새보다 훨씬 귀하다!! 이 새도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건만 하물며 나일까 보냐!!” 두 번째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걸어야 할 두 번째 길은 인자를 시인하는 것입니다. 제자가 가야 할 첫 번째 길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길이며 동시에 인자를 시인하는 길입니다. 8~9절 말씀입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人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본문을 관찰하면 두 번 반복해서 대조를 이루는 구절이 있습니다.(본문을 계속띄워 줌!!) 각 절마다 한 번씩 “사람 앞에서”와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시인하면 인자(人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도 그를 시인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사람 앞에서” 인자(人子)를 부인하면 그를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부인할 것이라는 무서운 선언입니다. 달리 말해 땅에서 인자에 대한 태도 여부가 하늘에서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인자는 예수님의 또 다른 애칭입니다. 즉 예수님을 시인하느냐 시인하지 않느냐 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사실은 핍박과 배교의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살아가는 누가의 독자들에게는 당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의 길을 걷는 성도의 삶에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만큼 사람들에 대한 정직함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대로 심판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동네에서 직장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예수믿는 사람임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숨기고 살아갑니까?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구주되심과 주인되심을 시인하고 살아갑니까? 부인하면 살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워서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임을 감추려고 합니까?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오늘 여기서 여러분이 취하는 태도는 바로 내일 여러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는 동시에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직하게 살아가면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이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빛이라면 이 세상에서 그 빛을 비춰야 합니다.. 소금이라면 이 세상으로 들어가 소금의 맛을 내며 살아야 합니다. 빛이 비추지 못하고 소금이 맛을 내지 못한다면 그 기능을 이미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맛을 내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정직해야 하니 그 맛을 내시기 바랍니다. 한 유대인의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백화점에 들러 양복과 외투를 샀다. 그들은 집에 돌아와 포장지를 뜯었다. 그런데 아들이 산 양복 주머니 안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 있었다. 반지는 어머니의 손가락에 잘 어울렸다. 그때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양복주머니에 반지가 들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건 어머니의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말 없이 아들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백화점 주인이 말했다. “옷을 사신 분이 반지의 주인이십니다. 왜 반지를 내게 돌려주려 하십니까.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본 뒤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옷을 샀을 뿐입니다. 반지를 산 적은 없어요. 저는 유대인이거든요.” 이 모습을 본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유대인의 정직을 배웠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대답에 “저는 크리스천이거든요”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실제로 초대교회에는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이 고백이 정직과 신뢰의 보증수표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성도의 영광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마지막을 보겠습니다. 최후의 심판을 믿는 제자된 우리가 걸어가야 할 마지막은 길은 어떤 위기에서도 성령을 신뢰하는 길입니다. 제자의 길은 먼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길이고, 동시에 세상을 살면서 인자를 시인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성령을 신뢰하는 길입니다.. 10절로 12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10-12절)
주님을 믿다보면 어려움과 환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길은 분명합니다. 성령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님을 붙들고 있으면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고 함께 해 주십니다.. 관원들 앞에 권세자들 앞에 섰을 때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믿음의 선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느부갓네살 왕 앞에 선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십시오. 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고 결박되었을 때 왕이 한번만 절하면 살려주겠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고합니다. 그들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6~18) 이 고백이 그들이 용감하기 때문에 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면 세상의 그 어떤 힘과 권력도 두렵지 않습니다. 담대할 수 있습니다.
바자회를 준비하면서 몇가지 어려움들 있었습니다. 담당자가 중간에 바뀌는 바람에 조건들이 바뀌고 그러면서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지만 중국에는 어떻든 no라고 그러면 우리만 손해니까!! 어떻든 잘 달래서 일을 해야지 내 고집대로 하다보면 그러칠 수가 있습니다.. 중간에 담당자가 바뀌어 계약서를 보내왔는데 좀 황당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류상으로 안 되겠다 싶어.. 담당자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특히 식사를 허락하는 문제라든지 준비인원 이런 문제는 바자회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이어서 수정을 필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성령님께서 지혜로운 말을 주시도록 구하고 사람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기도하고 갔더니 직원이 마치 우리행사를 도와주러 온 사람처럼 너무 호의적으로 대해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조건에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지극히 작은 이 일이지만 하나를 예로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우리가 비록 작은 일이지만 성도는 이런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만날 때 성령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내 힘으로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큰 일도 거스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말라!!이 말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권세앞에서도 세상 앞에서도 승리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말씀 맺습니다. 마지막 날 우리는 모든 것이 폭로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이 날 우리는 모두 칭찬받는 인생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무엇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까? 하나님만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정직하게 인자를 시인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항상 성령을 의지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런 삶을 사시어 승리하는 인생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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