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 >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십시오 홍소명 2011-10-18
  • 추천 0
  • 댓글 0
  • 조회 674

http://szgrace.org/bbs/bbsView/124/2422938

4:1-3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십시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유명한 실화입니다. 미국이 남북전쟁을 할 때였습니다. 한 번은 어느 강을 사이에 두고서 북군과 남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면 서로 간에 아주 치열한 전투를 하도록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아무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양쪽 편 진영에 깊은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병사가 적막감을 깨뜨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 한 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북군과 남군 사이에서는 서로 군가가 달랐습니다. 심지어는 애국가조차도 서로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쪽에서 이런 군가를 부르면 저쪽에서는 또 다른 군가로 서로가 서로를 응수하곤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군인은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도 잘 아는 노래입니다. Home, Sweet Home(즐거운 나의 집)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옆에 있는 사람도 따라 불렀습니다. 또 그 옆에 있는 사람도 따라 불렀습니다. 노래는 온 진영에 퍼져 나갔습니다. 급기야 그 노래는 강 건너편에 있는 상대 쪽 진영에도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함께 그 노래를 한 목소리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밤이 새도록 그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소리내어 울면서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날이 밝았습니다. 동이 텄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쪽 진영에서도 진군의 나팔소리는 울려 퍼지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더 이상 전쟁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시금 그들의 근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서로 싸워야 하는가? 따지고 보면 우리는 한 형제자매인데 왜 우리가 서로에게 충과 칼을 겨눠야 하는가?” 그 사실을 그들은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된 것을 힘써 지키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한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형제 자매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소중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3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너희는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미 하나된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믿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이미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할 거룩한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에베소서는 특별히 교회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우뚝 쏫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 곧 우리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의 전반부 1~3장까지 이 교회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 우리는 이미 태초부터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인위적으로 세워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창세전부터 하나님이 친히 계획하신 것입니다..

2장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음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이 피흘려 죽으심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물과 죄롤 죽었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얼마나 복주시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복은 모두 교회를 통해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영광이요 교회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회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말합니다. 그 첫째가 오늘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이미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우리가 힘써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제자들을 위해 하신 마지막 기도가 요17장에 나옵니다.. 거기서 주님은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들도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기도는 성령이 우리에게 임함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한 성령을 받은 자는 이미 하나가 된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그러므로 이미 하나가 된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됨과 관련해 우리에게 중요한 두 가지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됨의 동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입니다..

 

먼저 첫째로, 하나되게 하는 동기가 무엇일까요?

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순교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는 그러한 시점에서 붓을 들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가 3년 동안이나 머물면서 친히 양육했던 에베소 교인들이었습니다. 노사도 사도 바울은 눈물을 흘리면서 정말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간곡한 심정으로 그들을 권면합니다.. 그가 뭐라고 말합니까?

1절 하반부입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을 불러주셨습니까?

그들이 잘나서입니까? 그들에게 어떤 인간적인 능력이 있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은혜이지요. 그들은 원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부르신 것입니다.

21절로 5절을 보십시오.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할렐루야!!

여러분 이 사실을 꼭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잘나서, 우리에게 어떤 공로가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나 자신을 내세워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살아가야지 나 자신을 내세우면 망합니다...

 

옛날 어느 숲속에 공작새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들에게 예쁜 딸이 태어났습니다. 딸 공작새는 곱게 잘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숲에 살고 있는 공작새 총각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집을 간지 채 한 달도 안되어서 딸 공작새가 풀이 푹 죽은 채 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미 공작새는 걱정이 되어서 딸 공작새에게 물었습니다.

", 왜 그러느냐? 도대체 무슨 일이냐?" 딸 공작새는 어미 공작새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엄마, 도무지 외로워서 살 수가 없어요. 숲의 새들이 다 나를 따돌리고 있어요. 그러니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딸 공작새의 말을 들은 어미 공작새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집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딸 공작새에게 물었습니다.

", 너 아무데서나 네 꽁지를 활짝 펴 보이면서 뽐내었지? 어때? 내 말이 틀림없지?"

딸 공작새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듯이 어미 공작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이 아름다운 꼬리는 우리 공작새에게만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다른 새들에게 그것을 조금 펼쳐 보여주는 것이 뭐가 그리 잘못되었나요?"

그때 어미 공작새는 딸 공작새에게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얘야, 내가 한 번은 숲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들은 적이 있었단다.

그때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이렇듯 점잖게 타이르더구나! “여보게, 자네의 대화 가운데서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좀 빼게나. 영국의 골퍼들 사이에서는 젠틀맨 골프 상식이라는 말이 있다네. 만일 좌중에 한 사람이라도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올리지 않는다는 걸세

얘야,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니?" 딸 공작새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시집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뒤 그는 다시는 풀이 죽은 채 친정으로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는 숲속에 있는 다른 새들과 잘 어울려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생활을 해 나가면서 원래의 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지금의 포장된 나만을 생각하면 내가 누군데.” 이런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원래 우리는 너무 가치없은 존재였다는 사실입니다. 허물과 죄 가운데 가만히 놔두면 멸망받을 수 밖에 없는 무능한 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항상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다 보면 공작새처럼 자기 뽐내면서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상처만 주고 상처입고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거여요.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저 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나가는 자가 될 줄 믿습니다.. 아멘~

둘째로, 우리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나요?

이것을 잘 이해하려면 가정생활과 연관시켜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부부사이는 하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맞습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마음이 나눠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은 바뀌지 않으면서 상대방만 바뀌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이것 좀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는데아내는 남편에게 이 점을 좀 고쳐주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변하지 않고 그저 상대방만 바뀌기를 바랍니다.

따라해 봅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평생 바뀌지 않는다그러다 보니 상대방에 대해서 실망감만 점점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를 탓하기에 앞서서 나의 자세와 태도에는 문제가 없는지 우리는 이것을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2절에서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네 가지로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만 있으면 나와 너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생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켜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4가지가 무엇일까요? 먼저 첫 번째로 모든 겸손입니다.

우리가 하나되기 위해 가져야 할 첫 번째 자세는 겸손입니다. 2절 말씀을 읽어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여러분 분열은 겸손하지 못한데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사이가 좋은 사람들이 관계가 틀어지게 되는 것은 누군가 교만한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1310절 말씀에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미국 테네스의 한 마을에 교회가 있는데 왼발침례교회라는 이름의 교회가 있다고 그럽니다.. 교회이름이면 좀 고상해야 되쟎아요.. 은혜의교회, 소망교회 사랑의 교회 처럼 좀 고상해야 하는데 교회 이름이 하도 재미있어서.. 지나가던 사람마다 쳐다보면서 웃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그 이름이 궁금해서 그 마을의 노인에게 이 교회의 이름이 왜 왼발침례교회입니까?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노인이 그 교회에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더랍니다. 어느 날 이 지역교회에서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아주 세족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그런데 발을 씻겨 주려고 하다보니. 왼발을 먼저 씻겨줘야 할지? 오른발을 먼저 씻겨줘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급기야 서로가 이 문제를 가지고 다투게 된 것입니다. 그 가운데 왼발을 씻겨주는 자가 세력이 컸기 때문에.. 나중에 나가서 세운 교회이름이. 왼발침례교회라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왼발을 먼저 씻겨주든 오른발을 먼저 씻겨주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본질적인 것이 아니고 비본질적인 것을 두고 자기 의견을 굽힐 줄 모르는 그런 교만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겸손함으로 형제를 대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됨의 첫 번째 비결입니다..

 

하나됨을 위해 가져야 할 두번째 자세는 "온유"입니다. 여기서 온유란 주인이 원할 때 사용되어질 수 있도록 길들여진 짐승을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라고 한다..

여러분, 우리는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잘 살아야 합니다.. 내 의지대로 살아가다가도요.. 주님이 원하시면 일단멈춤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온유를 가리켜 절제된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Controlled power"입니다. 통제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감정을 발산하지 않습니다. 내 언어와 행동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능력도 있고, 열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브레이크를 잡을 줄 모릅니다.

노는 것에 절제가 안됩니다. 쾌락에 절제가 안됩니다. 너무 쉽게 화를 내어 버립니다. 감정에 따라 말을 함부러 내밷아 버립니다. 그런 자는 절대 바른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가정안에서도 참 유능하기는 한데 이 브레이크가 작동을 할 줄 모르다 보니.. 항상 가족들이 불안합니다.. 그런 사람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를 모릅니다. 이런 성격의 사람은 온유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의 하나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가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지도자를 아무나 하나요? 지도자라고 똑같은 지도자 입니까? 존경받고 사랑받는 지도자가 됨에는 뭔가 달라도 다른 것이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면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 백성의 원망과 불평, 시기 질투,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그들을 향해 감정대로 받아치지 않습니다. controlled power가 있었어요..

그러니 그 큰 공동체가 40년이라는 세월동안 한번도 분열되지 않고 하나되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것 아닙니까? 우리 모두 이 모세의 온유를 본받을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세 번째 하나됨을 위해 가져야 할 자세는 "오래 참음"입니다.

이 오래참음은 온유와 함께 오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오래참게 됩니다.. 그런데 오래참는 것은 좀 더 광폭적인 것입니다.. 온유는 자신을 향해 손해를 가해오는 자를 향해 가질 수 있는 자세라고 한다면 오래참음은 싫은 일이든 좋은 일이든 애매하게 일어난 일이든 어떤 순간에서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도는 오래참아야 합니다. 서로를 향해 오래 참아야 합니다. 특별히 지체를 향해 오래참아야 합니다..

목사는 성도를 향해 오래오래 참아야 하고.. 목자는 목원을 향해 오래참아야 하고, 선생은 제자들을 향해 오래 참아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참는 것입니다.. 오래참음이 없이 성급하게 판단해 버린다면 큰 일을 그르치고 말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위대한 인내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입니다.. 코치가 인내가 없다면 위대한 제자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내가 기르는 자녀, 가르치는 제자가 지금 당장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기다리십시오. 기도하면서 사랑을 주면서 기다리면 언젠가는 변화됩니다..

영혼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나 한사람 구원시키기 위해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모릅니다.. 집나간 탕자가 돌아오도록 노심초사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연약한 지체가 좀 시근없는 행동을 해도 그것가지고 나무라지 마시고 그분을 위해 기도하면서 오래참아 주십시오. 그러면 언젠가는 그분들도 여러분 같은 제자가 될 것입니다.. 이 오래참음이 있을 때 하나됨이 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 가져야 할 자세는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래참을 뿐 아니라.. 사랑가운데 용납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누가 실수를 했습니까? 그러면 사랑가운데 용납하십시오..

우리 지체를 예로 들어봅시다..

제가 얼굴에 가끔씩 뾰루지가 납니다.. 그런데 뾰루지가 보기 싫다고 함부러 다루면 얼굴이 더 상해요. 보기도 싫어지고요.. 잘 낫지도 않습니다..나중에 더 심해지면 얼굴을 수술해야 할 지경까지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뾰루지가 보기 싫어도 깨끗하게 씻고는 약도 바르고 달래가지고 없애야 빨리 없어지지. 보기 싫다고 함부러 대하면 몸은 더 상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지체들이 좀 잘못하고 실수하더라도 그것가지고 기분 나쁘다고 들추어내고 내가 가만히 두나 두고봐라!!!”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 몸이 더 아파요!! 교회가 더 아파져요.

그때는 사랑가운데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세요...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해주세요.. 함께 눈물 흘리십시오.. 그러면 상처는 빨리 아물게 되어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것이 우리가 성령의 하나됨을 지켜가는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할 거룩한 사명이 있습니다.

모든 겸손의 자세를 가지십시오.

주님이 원하시면 일단멈춤 할 줄 아는 온유의 자세를 가지십시오..

뿐만 아니라 나에게 맡겨진 지체를 향해 오래 참음으로 결실하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마지막으로 주변의 어떤 지체를 향해서도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심으로

공동체의 하나됨이 여러분을 통해 아름답게 이뤄져 갈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아멘~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우리는 제자가 되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운영자 2011.11.28 0 597
다음글 우리는 서로 섬기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운영자 2011.10.13 0 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