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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섬기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운영자 201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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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장 1절~15절 우리는 섬기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도입>

오늘도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을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많은 회사에서 대체근무를 하는 날이라 출근하신 분들이 많은 것입니다.

중국에는 도대체 주일의 개념이 없어서 큰일입니다.. 언제쯤 주일을 온전히 지키게 되는 날이 올런지.. 정말 기도하게 됩니다.

저희 큰 아들이 중국학교를 다니는데 주일날에도 학교를 나오라고 하는 겁니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인데 주일날 불쑥 학교를 안보냈다가 무슨 화를 당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담임선생께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내심 마음이 쓰였어요. 그런데 전화를 걸어 우리가족은 전부 교회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의외로 “하오더!!” 그러면서 쾌히 승낙해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주일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성수하도록 교육해야 되겠다고..

오늘 근무시간을 뒤로하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축복이 함께 하기를 축원드립니다. 아멘~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오늘은 섬김에 대한 우리 주님의 교훈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니 주님은 무엇을 하셨다고 말씀하나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애플의 창업자이자인 스티브잡스가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사랑하는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다가 죽었다고 그러죠..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축복일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축복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는 그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최후의 만찬석의 제자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실 뿐 아니라. 오늘 본문을 보니까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바로 전날 밤 매우 특별한 이벤트를 행하시면서 소중한 교훈을 주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4절 하반부를 보면, 예수님이 아예 작정을 하시고는 저녁 성만찬을 하시는 중에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시고는 대야에 물을 담아서 제자들의 발을 하나둘씩 씻기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이렇게 행하신 배경을 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당시의 풍습을 좀 이해 해야 합니다..

유대 나라는 원래 건조한 땅입니다. 요즘처럼 아주 잘 만든 구두를 신고 다니면 걱정이 없지만 그 당시에는 샌들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1킬로미터만 걸어도 온 발에 먼지가 수북히 쌓일 정도로 발이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의 문간에는 반드시 물을 담아 놓은 항아리가 있고 그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발을 씻도록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종이 있는 가정은 종이 나와서 손님들의 발을 씻겨 줍니다. 만약에 씻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자기가 발을 씻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이 순간에는 아무도 발을 씻겨줄 생각도 하지 않고, 발을 씻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늘 본문만 보아서는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는데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제자들이 다락방에 도착하자마자 서로 암투를 벌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옆에는 누가 앉을 것이냐? 나중에 누가 무슨 자리 차지할 것이냐?” 자기네들끼리 파워게임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누가 크냐하고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행동을 하느라 손이나 발을 씻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어떤 순간이냐 하면 예수님이 조금만 있으면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을 것이라고 수차례 말씀은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제자들은 그런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자기네들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비단 제자들만 그런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나의 명예, 나의 성공, 나의 행복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도 매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이렇게 파워 게임을 하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읽고 계셨던 예수님은 식사를 하시다 말고 일어나시더니 겉옷을 벗어 옆에다 놓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매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가지고 돌아 와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느 제자를 제일 먼저 씻기셨는지는 모르지만 베드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누군가의 발을 씻기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제자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예수님이 일어나서 여러분의 발을 씻으려고 대야에 물을 떠오면 적어도 예의가 있고 상식이 있는 사람 같으면 가만히 앉아있겠습니까? 당장 일어나서 만류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를 제외한 그 누구도 “주님 안됩니다.. 내 발을 씻길 수는 없습니다” 하며 만류한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몰염치한 인간들입니까?

더군다나 제자들이 발을 다 씻고 나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다 씻고 물을 갔다 버리고는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이제 그 자리에 있는 열세 사람 중 발이 더러운 사람은 예수님뿐입니다. 열두 제자는 예수님이 다 씻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센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일어나서 "예수님, 죄송합니다. 예수님 발 주세요. 제가 씻겨 드리겠습니다." 하고 나서야 조금 이해가 되는 분위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놀랍게 예수님의 발을 씻기려 일어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그런 장면은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고발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렇게 큰 은혜를 받고 사랑을 입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절대 주님을 감동시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선생이신 예수님>

이런 상황을 목격한 예수님은 다시 자리에 앉으신 채 제자들에게 참 중요한 교훈을 들려 주십니다. 12절 말씀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그리고 “주님” 곧 하나님이라 부르며 3년 동안을 줄 곧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따라다닌다고 해서 다 그렇게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어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14절입니다."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주요 선생인 내가 제자요 종인 너희의 발을 씻겼다면 너희들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은 일반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그렇죠? 심부름 가는 사람이 높습니까? 심부름 보내는 사람이 높습니까? 심부름 보내는 사람이 높죠? 이건 상식입니다. 이건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또 1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이 사실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들이 선생이다 하나님이다 하고 부르는 내가 낮아져서 너희들의 발을 씻겼다면 나의 종이요 나의 제자가 된 너희들이야말로 당연히 발을 씻겨야 된다“ 이 말씀입니다.

선생이 발을 씻기는데 제자가 발을 씻기지 않고 뻣뻣하게 서 있으면 그것은 자기가 선생보다 높다는 이야기밖에 더 되느냐? 제자는 선생이 하는 대로 따라 해야 한다. 너희들이 이것을 잘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잘 모르고 행하지 아니하면 너희들에게 화가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소중한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당시의 제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오늘날 저를 위시하여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남의 발을 씻겨 주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발을 씻겨 주셨는데 나는 발 씻기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겸손하라>

그렇다면 예수님이 발을 씻기신 이 행동에 내포되어 있는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두 가지만 생각해 보면 먼저 첫째는, 겸손의 표현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겸손해질 필요가 없는 자리에서 겸손해지셨습니다. 3절을 보시면 "저녁 먹는 중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흘이 지나면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시는 영광의 주님이 되십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이 사실을 아셨습니다. 영광을 회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면 인간적으로 볼 때 굉장히 우쭐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주님은 오히려 제자들 앞에 엎드려 대야에 물을 떠 와서 발을 씻겨 주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의 극치입니다. 제자들을 항해서 "나는 이제 하나님 나라로 가니,..신발을 벗고 내 앞에 엎드려라."라고 명령해도 괜찮을 그런 자리에서 오히려 엎드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알면 알수록 겸손해져야 하고요.. 신앙이 오래되면 오래될 수도록 남의 발을 씻길 수 있어야 합니다. 직분을 맡으면 맡을수록 겸손을 덧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가끔씩 보면 평범하게 신앙생활 할 때는 그렇게 열심을 내던 사람들이 감투를 하나쓰기 시작하면 영적으로 교만해져서 섬기는 일은 도대체 않으려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아이고 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합니까?' 아닙니다. 교회 안에 “제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합니까?”가 어디 있습니까? 도리어 남이 하지 않으려 하는 그런 일을 감당하는 것이 겸손이요.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 이야기입니다. 그 교회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을 했는데 기존 중직자들이 터주대감노릇을 하면서 도무지 섬기지는 않고 대접만 받으려고 하더랍니다... 성도들에게는 거룩하게 살라고 말하면서 본인들은 예배도 들이는 둥 마는 둥.. 당회실에 앉아서 신문이나 보고 있는 그런 분위기였데요.. 교회에 일꾼이나 중직자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다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려운 교회에 그 목사님이 가셨는데, 한 반년 지난 다음에 양육을 시작하면서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중직자들끼리 모여 가지고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높아졌다. 예수님은 높아질수록 낮아지셨는데 우리는 완전히 거꾸로 살아왔다. 이제부터라도 고치자." 그래서 토요일마다 이분들이 모여서 그 교회 화장실 청소를 전담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는 삶입니다..

 

사람이 높아질수록 낮아져야 되는 것이 주님의 교훈이고,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런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자기를 팔려는 무서운 계략을 품고 있는 가룟 유다의 발도 서슴지 않고 씻겨 주실 수 있었고, 높아지기 위해서 서로가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면서도 그들의 발을 씻어 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예수님을 본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섬기라>

둘째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섬김의 표현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모두가 예수님의 몸의 일부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손이고 어떤 사람은 발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허파요, 어떤사람은 예수님의 심장입니다. 우리는 다 지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몸을 한번 보십시오. 지체 중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지체가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혼자존재하면 썩습니다.. 심장이 심장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허파가 허파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허파는 몸을 위하고, 심장은 몸을 위합니다. 모두가 몸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교회 안에 들어와서 일단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으면 우리는 다 예수님의 몸을 위하는 지체입니다. 서로서로를 위하는 지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서로를 섬기지 아니하면 내가 죽습니다. 내가 섬기지는 않고 섬김만 받으려고 하다가는 결과적으로는 내가 병들어버립니다. 심장이 자기만을 위하고 있으면 자기 자신이 죽어버립니다. 몸이 죽는데 자기가 왜 안 죽습니까? 위가 자기만 생각하면 위염 위궤양 위암이 걸려 죽습니다.. 다른 기관을 생각하고 잘 협력해야 건강한 몸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섬김이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내 몸입니다. 그러나 내 몸만 아끼고 사랑하는 자는 이기주의자입니다. 내가 내 몸을 사랑하고 아끼고 섬기는 그 정신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때 이타주의자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네가 네 몸을 아끼고 섬기지 않느냐? 그 정신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 주라."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섬기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가장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중생 받았으면 가장 먼저 섬김을 배우십시오..그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혹 먼저 믿은 자 가운데 대접받기 좋아하고, 거만하고 목이 뻣뻣한 사람을 보시면(그 사람 때문에 실망하지 마시고) ‘저 사람은 잘못 배웠구먼’!!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그것은 주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주님은 높은 자리를 마다하시고 기꺼이 낮은 자리로 오시어 죄인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섬기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이런 섬김의 삶이 내가 사는 길이요.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도 이 섬김의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양육받는 성도에게 과제물을 내어줬습니다. 그 과제물이 무엇이냐 하면 “1주일 안에 남편의 발을 씻겨주고 감상문을 써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인이 과제물을 받기는 했는데 도무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오늘 해야지 하다가는 넘어가 버리고 내일 해야지 하고는 또 넘어가 버리고 자꾸 넘어가다가 이제 내일 성경공부 시간인데 하루밖에 안 남았습니다. '오늘은 꼭 해야 돼.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야 돼.' 아침부터 마음에 다짐하고는 저녁에 남편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오늘은 눈 딱 감고 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기다리는데 드디어 남편이 벨을 누르고 들어왔습니다. "여보, 빨리 와요. 빨리 따라 와요." 하고는 손을 잡고 끌고 갔습니다. "어디로 간다는 거야'" "아이. 글쎄 오라니까요." 그래서 끌고는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변기 위에 뚜껑을 딱 닫아 놓고는 그 위에 앉혔습니다. "여보, 여기 앉아요. 내가 보니까 당신이 회사에서 너무 시달리는 것 같고 얼굴에 피곤이 가득한데... 내가 좀 어떻게 위로를 해 주지 못해서 늘 마음이 아팠는데 오늘 내가 당신 발을 씻어 줄게요. 자 앉아요." 그리고 양말을 싹 벗기고는 따뜻한 물을 가지고 발을 씻겨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 남자는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도대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습니다. 발을 씻어 주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서먹서먹한 일이라도 그런 처지가 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묵묵히 앉아서 자기 발을 씻고 있는 아내를 내려다보는 남편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 일어나겠습니까? 여러분 상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부드러운 손으로 씻어주는 아내를 쳐다보면서 그 동안 아내에게 잘못했던 여러 가지 생각도 나게 될 것이고 미안하다는 생각도 나게 될 것이고 '참 사랑스런 아내다' 하는 그런 마음도 생길 것이고 여러 가지 감정이 생길 수 있겠지요.

또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의 발을 묵묵히 씻어 주면서 처자 먹여 살리려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뛰고 밖에 나가서 상처 입은 것, 안 들어도 될 말 다 듣고 들어오지만 가족들에게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항상 껄껄 웃으면서 가족들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남편의 그 여러 가지를 마음씀씀이를 생각하면서 아마 눈시울이 뜨거워졌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그 부부가 뿅 가버렸다고 합니다.

 

다음날 아침에 남편이 출근을 하면서 그 날 따라 봉투를 하나 건네주면서 "여보, 내가 그 동안 당신에게 옷 한번 제대로 사준 일이 없는데 오늘 이것 가지고 가서 쇼핑이나 하라고." 그래서 너무 고맙다고 그러고 남편을 보낸 후에 봉투를 열어 보니까 50만원이 들어있는 겁니다. 그러니 그 부인이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나봅니다. 감상문을 쓰라니까 이제 감상문을 써야 되지 않습니까? 감상문을 쓰다가 눈물 콧물도 흘리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좋은 남편 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마음속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남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내가 이것을 들고 가서 쇼핑하면 좀 문제가 있다.' 그래 가지고 50만원을 그대로 들고 와서 헌금을 해버렸습니다. 발을 씻겨 주면 거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치유가 일어납니다. 사랑이 회복됩니다. 마음의 여러 가지 고통이 사라집니다.

<섬김으로 얻는 축복>

예수님은 이와 같이 남의 발을 씻겨주는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무슨 복이 있을까요?

먼저,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기쁨이 사라졌습니까?

다른 사람을 섬겨 보십시오. 그러면 기쁨이 찾아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이 치유 받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애들러 박사라는 분은 자기를 찾아오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 이런 처방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가서 2주일 동안 매일마다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할까 그것만 골똘히 생각하고 한번 실천해 보세요. 2주일 동안만 그렇게 살면 당신 병은 깨끗이 낫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 나은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에 왜 병이 생깁니까? 왜 짜증스럽고 왜 불만이 쌓이고, 왜 원망스럽고 남이 미워지고 왜 용서가 안됩니까? 왜 그렇습니까?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만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기주의가 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못 얻어서 불만이 아닙니다. 없어서 불만이 아닙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에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섬기는 삶을 사십시오.. 그것이 복입니다..

저는 저희 교회에 성도 가운데 자원함으로 섬기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감동받습니다..

“그래 이것이 교회이다” 그런 자부심을 가집니다. 어떤분은 가진 재능으로 주말학교를 섬기시는 분들, 아기학교를 돌보시는 분들,, 아이들이 힘들어도 간식으로 봉사하시는 분들, 어떤 분은 성경공부 할 때 아기를 돌봐주시는 분도 계세요. 점심식사준비. 여러분 이것이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지체를 위해 기꺼이 내가 시간을 내고, 낮아지고, 희생하며 섬길 때... 거기에 참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나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섬김을 통해 성도다운 성도가 되고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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