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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운영자 201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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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요13장 34~35절

 

<아더힝클리의 사랑의 힘>

미국에서 아더 힝클리라는 이름을 가진 18살 먹은 소년이 무려 3000파운드(약1300kg)의 무게가 나가는 트랙터(농장에서 일하는 자동차)를 혼자의 힘으로 들어올린 기적같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소년은 장미란과 같은 역도선수도 아니었고 타고난 장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날 이 힝클리가 그의 아버지의 농장에서 일하다가 자기 여자친구의 비명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소녀가 언덕에 세워둔 트랙터 아래서 놀다가 갑자기 밀려 내려온 트랙터 바퀴에 이 소녀가 깔리게 되자 소리를 질렀고 이 비명을 듣자마자, 아더라는 소년은 달려가서 트랙터를 들어올린 것입니다. 이 소년의 힘은 무슨 힘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힘은 비단 트랙터뿐만 아니라, 이 세상도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유언 - 사랑하라>

예수님의 사랑의 힘은 엄청납니다.. 믿으십니까? 예수님의 사랑의 힘 때문에 세상이 멸망치 않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복음서는 저자가 요한인데 요한은 예수님이 죽으시는 그 현장에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유일한 사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요한이 우레의 아들과 같은 아주 괴팍한 성격의 사람이었는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사랑의 사도로 거듭납니다.

그가 기록한 복음서인 이 요한복음 13장에서 21장까지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설교는 특별히 중요성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 설교 말씀을 유심히 살펴보면 예수님의 교훈 중에 ‘사랑하라’는 말씀이 무려 44번이나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전체에 56번이 나오는데 그 중 4/5가량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씀이 바로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도 바로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함께 합독!!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특별히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은 공동체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형제 자매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처음에 그랬듯이 우리들 또한 원래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옆엣 분들을 한번 쳐다보십시오.. 여러분이 교회에 속하지 않고 바깥에서 우연히 만났다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런데 교회 안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때문에 서로 특별한 관계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오기 전에는 각각 만나도 큰 의미가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한 교회안에 들어옴으로 인해 우리는 한 몸의 지체가 된 것입니다.

한 성령을 받아 머리이신 예수님을 섬기고 사는 각자 지체가 된 것입니다. 더불어 예수님으로 인해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살아가는 형제 자매가 된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자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7-8,16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늘 사랑하며 살면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면 하나님께 속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고, 남편을 미워하고, 자식들을 미워하고, 김집사를 미워하고, 목사를 미워하고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단순한 것 같지만 귀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저 김집사가 믿음이 있는가?” 이것보실까요? 물론 믿음도 중요하지요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죠!! 그런데 믿음이 있다는 증거를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에게 이 하나님의 사랑이 있느냐? 보면 압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원수라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사랑이 회복되기를 축원드립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얼마 전 중국에서 한 남성이 복권으로 730여 억원이 당첨되었는데.. 그 중에 33억원을 그 자리에서 불우한 사람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를 했다고 합니다. 복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받은 700억이 넘는 돈 중에 30억원을 기부하는 것은 별것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특별한 사랑에 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은 정말 지극히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이전에 제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백혈병 걸린 남편을 간호하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부인도 얼마 전에 암이 걸리셔서 팔부분에 치료를 하셨는데 그만 남편이 말기암 환자가 되어 치료를 받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남편간호하면서 하는 말이 제 가슴에 깊히 남아 있습니다..

“제가 아파보니까? 길가에 있는 풀 한포기도 그냥 안보이고, 생명 있는 것이 모두 귀하게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생명 있는 것으로 저렇게 감사하는데.. 나는 영원한 생명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특별한 사랑을 주어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 것 얼마나 감사한지요.. 뿐 아니라 우리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시기 위해 주의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런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을 서로에게 나타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몸부림 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거룩하게 살려고 몸부림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며,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알고 기뻐합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이를 괴로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를 위해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주심을 기뻐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계획을 가지고 삽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아낌없이 바치려고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독자였지만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 세상에서 누릴 영광을 기꺼이 포기하고 주님만을 위해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이 모두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 할 이유는 우리가 바로 측량할 수 없는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3.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은 이 말씀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20-21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그냥 사랑을 교훈하시지 않고 명령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우리 주님이 친히 완성해 주신 너무나 귀한 계명이기에 새계명이라고 말씀하시며...

그것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새계명으로 반드시 지키라는 것입니다..

제 아들녀석이 유치원에 다니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그 학교에 따라야 할 규율이 있습니다. 그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학교를 다니려면 따라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새계명은 모든 성도들이 뼈속깊이 새겨야 할 너무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옆에 지체가 있는데 그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전에 한번 말씀 드린 중국의 어느 그리스도인의 이야기입니다.

계단식 논에서 농사를 짓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에 매우 가물어서 논이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는 수없이 양수기를 이용하여 멀리 논 아래에 있는 계곡에서부터 자기 논에 물을 가득 대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논에 가보니, 아래 논의 임자가 둑을 터 놓았습니다.

물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자기 논의 물이 모두, 아래 논으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화가 났지만,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이 생각나서 참았답니다. 그리고 다시 자기 논에 물을 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논에 나가 보니 또 둑을 터서 물을 다 빼 가버린 것입니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노발대발 화를 내려고 하다가 목사님께 찾아갔답니다.

‘언제까지 얼마나 사랑해야 합니까?’

그 때 목사님이 아주 난감해 하시더니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한 번 더 당했다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먼저 아래 논에 물을 대 주고 그 다음에 형제님의 논에 물을 대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정말 간도, 쓸개도 다 빼 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내가 왜 그런 놈을 위해 물을 대 주어야 하는가?’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나 죽었오’ 하는 마음으로 그 제안대로 물을 대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래 논의 임자가 찾아와서 잘못했노라고 빌면서 ‘당신이 도끼 자루라도 들고 와서, 죽여 버리겠다고 난리를 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 논에 물을 대 주다니 예수 믿으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러면서 자기도 예수 믿겠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화도 안 나고, 감정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이렇게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것이 곧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증거해 주는 표식이 됩니다.

자식은 반드시 그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종종 자녀들을 바라보며 “어쩌면 지 애비를 꼭 닮았는지.” 말할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자녀는 부모의 외모뿐만 아니라 특이한 버릇까지도 닮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찌 하나님을 닮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아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하나님의 인격을 닮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요한일서 4:11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3:35에서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될 때... 세상은 교회를 다르게 봅니다.

 

초대교회는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그 사랑을 본받아... 그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짐으로 낮아졌으며 예수님의 희생으로 희생했고 예수님의 아낌없이 주시는 그 모습으로 형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형제는 하나님 나라의 한 백성이었습니다. 한 가족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의 가족보다 더 놀라운 관계였습니다. 왜? 세상의 가족은 혈통으로 맺어진 것이지만 교회는 성령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족은 이 땅 뿐이지만 교회는 영원한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만드신 이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아도 아까운 줄 몰랐습니다...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왔으면... 초대교회 지도자였던 터튤리안(Tertullian)이라는 교부의 글에 보면 초대교인들은 종종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그리스도인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본 일이 있습니까?"라는 말로 전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성도들은 서로 뜨겁게 사랑했고, 그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갔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사랑이 없는 교회는 참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본래 사랑이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는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계 2:4,5).

 

불행하게도 이 예언의 말씀은 이루어졌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라지고 대신 교회가 회교로 점령당했습니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사랑이 없는 교회가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것처럼 사랑이 없는 성도도 더 이상 성도가 아닙니다. 다만 교회에 다니는 교인일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목사도 더 이상 목사가 아닙니다. 삯군일 뿐입니다.

저도 누군가가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미움가지고 계속 살아가는 것은 죽는 것만큼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이 미움의 마음이 없어지도록 계속해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향해 용서의 마음이 생기고, 이해의 마음이 생깁니다..

만약 목사가 누군가 미워한 채 말씀을 전하면 그 말씀이 은혜로운 말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미워하는 자가 있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 마음을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행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타락의 본성이 남아있어서,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사랑하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잘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스데반 집사를 보십시오!

그는 자신을 돌로 치는 수많은 원수들을 향하여 탓하기는 커녕 도리어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숨이 넘어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과연 스데반이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스데반도 저와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보통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죽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서로 사랑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깨달은 만큼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들이 부족하고 또 사랑하는 것이 힘들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100% 완전하게 사랑하지 못하고 부족해도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해 보세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를 받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며, 점점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가정에도 문제가 많고, 사회에도, 직장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심지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교회에 나왔다가 교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라도 문제없는 곳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문제가 많습니까?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증오심과 원망과 분노로 가득차 있습니다. 따라서 어디를 가든 문제투성이입니다.

 

여러분의 자녀 문제를 일으켰다고 야단만 치지 마십시오. 아이들의 투정이나 반항은 ‘날 사랑해달라’는 표시입니다.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는 싸인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에 대한 내 사랑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따뜻하게 안아주시고 사랑의 고백을 자주하며 더 뜨겁게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어찌 보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사랑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 어려움을 당한 사람, 골치 아픈 사람, 문제가 많은 사람을 우리 주변에 두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특별히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문제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주님이 가르쳐 주신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왜 러브스토리가 인기 있습니까?

사랑의 진가는 어려움을 당할 때 나타납니다. 모든 러브스토리의 공통점은 극한 상황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사랑했다는데 있습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합니다(아 8:6). 사랑은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죽을 사람도 살립니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교회다운 교회!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는 성도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으며, 이 세상을 구원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우리 주님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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