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 운영자 | 2011-10-04 | |||
|
|||||
왕상 18장 41절~46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가?>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나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가 알고 싶으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내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기 힘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관적인 기준으로 놓고 볼 때 믿음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방편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얼마나 크신 분이신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가요? 다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어떤 하나님을 믿고 섬기시나요? 우리가 찬양 가운데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이런 고백처럼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내 인생의 전 영역에서 나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진정한 왕으로 고백하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요?’ 물으면 대소요리문답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은 영이시며 그의 존재와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선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다” 이렇게 믿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에 대해 이런 이론적인 지식은 빠삭한데, 실제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그렇게 역사하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내가 체험하며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나는 실제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있는가?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요 잣대입니다. 오늘 예배 드리는 이 시간에도 어떤 분은 하나님을 체험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은 아무런 느낌없이 그냥 앉아 계시는 분도 계십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 예배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중요방편 기도> 여러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이론이 아닌 실제로 경험하기 원하시나요?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통로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내 삶속으로 모셔오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3장 20절 말씀에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여기서 “문을 열면~” 그랬는데 이 문을 여는 과정이 바로 기도입니다. 먼저 무엇에 문을 열어야 하나요? 예수님을 내 삶의 구주로 영접하는 일에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곳에 혹 구원의 확신 없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이라도 “예수님 내 속에 들어와 주세요!!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로 내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세요!! 나를 다스려 주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 기도하면 주님은 내 속에 들어와 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무엇에 문을 열어야 하나요?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기 위해 마음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롬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문을 열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시기만 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먹고 하나님은 나와 더불어 먹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에게로 가져오는 열쇠입니다. 기도는 하늘 보화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히4:16]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기도의 결단을 하시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달려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의 사람 엘리야> 오늘 본문을 보면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야는 기도로 말미암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고 보여주었던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 엘리야 또한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와 똑같이 두려워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하고.. 똑같이 눈물흘리기도 한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를 통해 하늘 문을 여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도 기도를 통해 엘리야가 경험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교훈입니다. 엘리야가 살았던 당시 시대적인 상황은 참으로 암울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타락하고 어두운 시대가 바로 엘리야시대 였습니다. 얼마나 타락했느냐 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을 다 우상숭배의 제단으로 만들어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다 잡아 죽이고 대신 우상 섬기는 선지자들이 우굴거리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암울한 시대에 소망을 던져준 인물이 있다면 바로 기도의 사람 엘리야였습니다. 엘리야는 온통 우상숭배자들로 가득한 그 땅에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 친히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본문 바로 앞에 보면 엘리야가 바알과 아스다롯 선지자들이 갈멜산에서 영적전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굴거리는 우상숭배자들을 향해 “진짜 하나님이 누구인지? 한번 겨뤄보자!!” 그래서 바알과 아스다롯 선지자 850인과 대결을 시작합니다. 이 대결에서 엘리야는 멋지게 승리합니다. 바알 선지자가 한나절을 바알에게 부르짖지만 우상은 절대 응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기도를 시작하자 마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제단과 제물을 불살라 버립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거기에 모인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소리칩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러분, 어떠한 절망의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기도하는 한 사람이 있는 한 소망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의 회사가 힘들고 어려워도 그 회사에 기도하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회사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비록 환란을 만났을지라도 그 가정에 진심으로 기도하는 한 영혼이 있다면 하나님은 절대 그 가정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라와 민족이 어려움 가운데 있어도 기도하는 교회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나라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은혜의 교회가 진심으로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이 땅을 버리지 않고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미래를 본다> 오늘 본문에 이 갈멜산 기도에 이어서 엘리야의 그 다음 기도가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3년 6개월 동안이나 비가 한방울 내리지 않은 극심한 가뭄의 상황이었습니다. 영이 메마르니 육도 완전히 메말라 병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뭄은 그냥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비가 올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41,42절 말씀이다.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사람의 몇가지 특징들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기도의 사람은 믿음으로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분명 아직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아직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사람은 이처럼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 속에서도 비를 볼 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비를 본 것입니다. 히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를 통해 믿음으로 비가 내리는 미래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도... 은혜의 빗소리,, 축복의 빗소리를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된다는 믿음으로 미래는 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경제가 힘들어도, 회사가 어려워도.. 지금의 가뭄만 보면서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희망찬 미래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기도는 간절함이다> 엘리야는, 그동안 긴장된 상황에서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아합 왕에게 “왕이여,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이제 먹고 마시소서.”라는 말을 하고 해발 500m되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합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땅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를 합니다. 42절 하반부에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는 점잖고 고상하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너무 고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지 외모를 보지 않습니다. 때로는 투박하게 보여도 괞챦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무어라 하든 상관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매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무릎도 꿇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항복의 표시입니다. 눈물콧물 흘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함의 자세를 보십니다. 제가 소주에 있으면서 참 아쉬운 것은 산이 없다는 거여요.. 한국에 있을 때는 가끔씩 산에 올라가 기도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야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산에 올라가면 몇 시간이고 무릎꿇고 마음껏 부르짖습니다. 그러다 보면 땀이 비오듯 몸을 적십니다.. 처음에는 힘들어도 그렇게 하다보면 나의 영혼은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여러분. 이런 기도의 야성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람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부르짖는 기도의 야성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번 새벽기도의 기회가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여러분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정말 간절하게 부르짖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아멘~
<약속을 붙들고 드리는 기도> 또한 엘리야의 기도에서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약속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엘리야가 아합에게 확신을 가지고 “비 소리가 있습니다. 먹고 마시소서!!” 확신을 가진 채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비를 내릴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18장 1절에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나님께서 미리 이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엘리야는 자신있게 아합에게 비가 올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속이 주어졌지만 등짐지고 가만히 있는다고 비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이 말씀을 붙들고 갈멜산으로 올라가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주여 비를 내려 주옵소서” 에스겔 36장에 3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황폐한 이스라엘을 에덴동산같이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7절에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는 무엇을 우리에게 말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기도하는 자를 통해 성취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앙의 비밀이 있습니다. 하늘의 보화를 어떤 자가 가져올 수 있나요? 성경이 약속하신 이 놀라운 축복을 어떻게 나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나요? 기도를 통해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그 말씀이 나의 것이 되는 겁니다. 6천명의 고아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킨 위대한 기도의 사람 조지물러 목사님.. 이 목사님은 고아원을 경영하면서 어떤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법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단 한번도 고아들을 굶겨본 적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뮬러 목사님은 고아원에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빌립보서 4장 19절 말씀을 펴놓고 손가락으로 부비며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약속하셨으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그 성경을 많이 봤으면 성경의 그 부분에 구멍이 났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기도> 엘리야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믿고 얼굴을 무릎사이에 집어 넣고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하고는 사환에게 말합니다. “얘야, 나가서 바다 쪽을 바라보아라.” “아무것도 없나이다.” “다시 나가 보아라.” “아무것도 없나이다.” 또 기도하고 “다시 나가 보아라.”라고 했으나 사환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나이다.”라고만 했습니다. 엘리야가 사환을 여섯 번이나 보내어도 사환은 여전히 구름 한 점 없다는 대답만 했습니다. 그래도 엘리야는 낙심하지 않고 기도한 후 사환을 다시 내보냈습니다. 일곱 번째로 나갔다 온 사환이 대답했습니다.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그래? 어서 왕에게 가서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빨리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라고 해라.” 조금 후에 바람과 구름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 기도를 배웁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했다면 포기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일곱 번까지 기도했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일곱 번은 완전숫자입니다. 이는 엘리야가 상황에 개의치 않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조금 전에 있었던 갈멜산 영적전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갈멜산에서는 기도하자마자 하늘로써 불이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비를 내려달라는 이 기도는 일곱 번이 되도록 응답이 없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 달라고 하면 주고 저것 달라하면 주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과 믿음을 보시고, 때와 시기를 저울질 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응답하실 때도 있고, 때가 무르익어 응답하실 때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 기도가 약속의 말씀에 의지한 기도라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라면, 그것이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기도라면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인격의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한번 만에 들어주실 때도 있고, 두 번 만에 들어주실 때도 있다. 일곱 번 만에 들어주실 때도 있다. 하나님이 포기하기 전에 우리는 포기치 말아야 한다. # 마찬가지로 인생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혼생활도 포기하면 안됩니다. 부부가 좀 맞지 않는다고 힘들다고 서로를 포기해 버리면 안됩니다. 살아가면서 이혼을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나 절대 포기하면 안됩니다. 포기하면 행복은 끝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미첼이라는 사람은 오토바이 사고로 얼굴이 흉터투성이가 되었습니다. 화상을 입어 몸이 망가졌습니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하반신을 못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가 되고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미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인생 승리’라며 강사로 초빙하여 연설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건강할 때 할 수 있었던 일은 만 가지였는데, 사고를 당한 다음에는 천 가지를 잃어버려 구천 가지밖에 못하게 되었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아파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성공했다.”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학생들이 영어가 어렵다고 영어를 포기하고, 수학이 어렵다고 수학을 포기해서 영포맨이 되고 수포맨이 되면 대포맨(대학을 포기한 사람)이 됩니다. 포기하면 안 됩니다. 기도하다 포기하면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조지 뮐러 목사님은 46년 3개월 동안 5만번을 기도해서 기도한 것마다 다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기도를 시작했다고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고, 바르게 기도했다고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한동안 기도했다고 기도가 된 것이 아니라, 응답 받을 때까지, 끝까지 해야 기도가 된다” 응답 받을 때까지, 끝까지 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뮐러 목사님이 다섯 친구를 위해 기도했는데, 한 친구는 1년 반 만에 예수님을 믿었고, 한 친구는 5년 만에 믿었고, 한 친구는 6년 만에 믿었고, 두 친구는 뮐러 목사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뮐러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그 두 친구가 교회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테스트하십니다. 어떤 기도는 바로 응답해 주시지만, 어떤 기도는 오랫동안 응답해 주지 않으시고 우리를 기도의 용장, 기도의 대가로 만드신 후에 응답해 주십니다. <기도의 믿음> 마지막으로 기도의 사람은 작은 징조 속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44절 말씀입니다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이 부분은 너무나 중요한 장면입니다. 일곱 번 기도를 했더니 사환이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난다고 대답합니다. 여러분 손바닥만한 구름이 무슨 비를 내겠습니까? 그런데 기도의 사람 엘리야는 손바닥만한 구름이 하나님의 응답임을 확신합니다. 그리고는 바로 아합에게 먼저 마차를 타고 급히 내려가라고 말한다. 그만큼 비가 내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의 사람은 지극히 작은 징조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실패한다. 사람들은 기도하고 나서 갈멜산의 불의 역사처럼 놀라운 역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고 나서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번개가 치며 소나비가 내릴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기도의 응답은 손만한 작은 구름.. 쪼그마한 구름으로 서서히 다가옵니다. 우리는 이 현상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은 손만한 구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그런 자세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큰 역사를 맛볼 수 없습니다. 지극히 작은 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주일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하면 그 교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만을 이룹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주일학교 출신이라는 것 아시죠!! 그런 그가 바른 믿음으로 자랐더라면 나라를 위해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식이 지금은 철없는 짓을 하고 시근이 없어 보여도.. 기도하는 사람의 눈에는 이런 자식 안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 아나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망나니 같은 이런 아들을 통해서도 반기문 총장 같은 세계적 인물을 만드시고, 세종대왕같은 그런 왕도 만드시고, 스티브잡스 같은 그런 기업인도 만드실지... <결론>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기도하면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게 됩니다. 기도하시되 약속을 붙들고, 포기하지 말고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은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 속에서도 온 땅을 적시는 축복의 단비를 내리실 수 있음을 믿고 기도로 승리하는 성도님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