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불의가 아닌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 운영자 | 2011-10-04 | |||
|
|||||
고린도전서13장 4절~6절 사랑은 불의가 아닌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찾기 위해 이곳에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예수님 붙들면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푸른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줄 확신합니다. 민수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내면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나님께 원망하다가 불뱀에게 물려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회개하며 모세를 찾아와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고 그것을 바라보게 하라. 그러면 누구든지 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이나 되는 말씀입니까? 독사에게 물려 퉁퉁 부어 죽어가는 사람이 놋뱀을 본다고 살겠습니까? 그런데 모세가 전한 말을 듣고 ??말도 안 되는 말?? 이라며 바라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말씀이지만 하나님 말씀이니 믿고 나와서 놋뱀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순간에 살았습니다. 그 모세의 놋뱀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 15절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떤 환경에 놓여있으십니까?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것 같은 힘든 일이 있나요? 이 시간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시고 그분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구원과 회복을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가 아카페의 사랑을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카페는 지킬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계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카페를 지켜갈 때 예수님을 꼭 닮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한 주도 이 아카페를 항상 가슴에 새기며 나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인지라 여전히 부족하고 넘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아카페를 닮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처음부터 바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젖먹이입니다. 잘 넘어지고 잘 아프고 잘 체하기도 하는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인해 성숙해 가면 딱딱한 것도 먹을 줄 알고 어지간한 문제에도 잘 넘어지지 않고 잘 아프지도 않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아카페는 어떤 것인가요? 아가페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성도는 오래 참아야합니다. 참을 수 없는 환경임에도 참는 것이 아카페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온유한 것입니다. 부드럽고 친절한 것입니다. 따뜻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냉혹하게 대하는 사람, 쌀쌀맞게 대하는 사람은 아가페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은 투기하지 않습니다. 남이 잘 될 때 질투하지 않고 축하해 주고, 남이 안되었을 때 기도해 주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나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성도는 아카페 성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나보다 남의 소중함을 더 인정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대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었지만 그는 백악관의 수위 아저씨도 존대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무례한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이런 무례함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도는 항상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알고 어디서든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이 사람과 사귀면 내가 무슨 덕을 볼 수 있을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 분이 나 때문에 덕을 봐야 되는데…….??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어느 집에 손님으로 갔으면 ??이 가정이 나 때문에 덕을 봐야 될 텐데??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교회 생활을 하면 교회가 나 때문에 덕을 봐야합니다. 그런데 내가 교회를 통해 어떤 이익을 보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용해서 복을 받은 사람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든지 도움을 주는 사람이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급하게 성내지도 악한 것을 생각지도 않는 것입니다. 급하게 화내는 것은 절대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화는 화를 부릅니다. 아내에게 성도에게 이웃에게 마음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말로 푸시고, 참고 인내하십시오. 또한 내게 손해를 끼치고 나를 해롭게 한 사람들을 마음속에 새겨두는 것.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강물이 흘러가듯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한 영혼을 다 잊어버리고 떠나보내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씀합니다. 함께 따라해 봅니다. "아카페는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불의가 무엇인가요? 불의는 악(evil)을 말합니다. 악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악을 기뻐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얼마나 완악한지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이에요. 옛날에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가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얼마나 보고 싶어합니까? 그래서 나이를 속이고 몰래 들어가 그 영화를 봅니다. 그런데 보고나면 별것 없습니다. “눈만 버렸다” 하며 후회합니다. 선악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따먹지말라 했는데 그것을 따먹고 싶어 합니다. 마귀는 자꾸 그것을 따 먹어라고 유혹합니다. 결국 따먹고 말았어요.. 그런데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고 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것 따먹고 나니 얼마나 후회합니까!! “하지 말 걸..하지 말걸.”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하면 좋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후회하고 맙니다.
사울 보십시오... 사울은 이스라엘 초대왕으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이 되더니 그만 교만해져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합니다. 적군 블레셋이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을 때 미처 군사정비로 못하고 있느니 군사들이 풀풀히 흩흐지려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다급한 나머지 왕이 자기손으로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리고 말았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고유권한인데 그것을 알고도 침해하고 맙니다. 그것 뿐 아닙니다. 아말렉 군사가 쳐들어 왔을 때는 적군의 탈취물을 남기지 말고 다 진멸하라고 그랬는데... 포동포동 살지고 좋은 짐승은 죽이지 않고 데리고 온 것입니다. “이 정도는 뭐, 해도 안 되겠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행위였습니다. 결국 사울이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순종만 했더라면 그의 왕위는 영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2번씩이나 공개적 경고에도 불구하고 순종치 않으므로 그 왕위가 폐위당하고 그 가문은 망하고 맙니다. 여러분, 왕이라도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내가 누군데” 이런 사람 아무도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시간이 그러합니다. 시간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쓰면 안됩니다. 여러분 중국에서의 이 삶이 하루하루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입니까? 하나님 앞에 후회 없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이 선교지에서 교회를 세우고 직장에서 복음전도의 기초를 다지는 이 일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모릅니다. 그것이 내가 잘되고 우리나라가 축복받는 길입니다. 무엇보다 이 타지에서 주일을 지키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일주일이 다 주님의 시간이지만 주일은 특별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영육간의 넘치는 복을 체험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주일은 예배의 자리에 나와야 합니다. 예배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일성수가 힘든 환경에 있으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성수 하도록 도와주세요!! (옆에 분들께 축복 - 주일마다 뵙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에 있어서도 악을 행치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어떤 사람이 숨기고 싶어하는 것을 드러내며 이야기하는 것도 악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 일로 자기가 심판을 받게 됩니다. 텍사스 의과대학의 스미스 교수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심장학 전문의 인데, 어느 날 갑자기 심장 이상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그 때 무의식 중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환상 중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자기를 병원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이 이런 조치 저런 조치를 취해 보지만 불가능했는지 시트로 덮더랍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방에서 나가면서??의사가 죽었다. 교수가 죽었다.??하는 말을 합니다. 그 때 갑자기 자기 영혼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더니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는 거기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심판하시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입의 말들을 일일이 심판하고 계시더랍니다. “너는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니? 왜 너는 그런 말을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니??? 스미스 교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고 덜덜 떨었답니다. 그때??스미스, 다시 기회를 줄 테니 세상에 가서 좋은 말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살다가 오너라.??하는 천사의 음성이 들렸답니다. 그 순간 그분이 눈을 떴는데, 자기가 시트로 덮여 있었답니다. 그 날 그분이 일어나 학교로 가서 7년간 휴직계를 내고 세계를 다니며 ??좋은 말을 합시다. 복음을 전합시다. 남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하지 맙시다. 험담하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 복 받을 말만 합시다.??라고 다녔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모두 입술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약3:6]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혀를 잘못 사용하는데서 악이 시작됩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시고 오늘 부터라도 당장 말의 습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옆엣 분들께 다짐. “나는 입으로 좋은 말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곧 정직함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이 최상의 정책입니다. 정직은 이어서 나오지만 진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지켜야 할 자이기 때문에 정직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얼마나 불의가 판을 치나요? 거짓이 흉흉하나요? 숨기는 것이 많습니까? 한 것을 안했다고 그러고 안한 것을 했다고 그러고..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기업하는 사람은 기업하는데로.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하는데로. 얼마나 부정직한지 모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남이 보든 보지 않든 우리는 항상 정직해야 합니다. 나에게 불리하다고 남을 속이면 안되요!!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절대 속일 수 없습니다. 마누라는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부부끼리 서로 정직하지 못하면 그때부터 불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실수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잘못했는데 변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면 됩니다. 그러면 다 끝납니다. 한번 따라해 봅시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는 책에 어떤 목사님의 글이 나온다. 이 목사님이 김천에서 설렁탕을 파는 성도의 가계에 심방을 갔는데, 이 성도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목사님, 제가 비록 설렁탕 파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설렁탕 한 그릇 한그릇 정성스럽게 만듭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 집에서는 최고급 재료만 사용하고 있었다. 제일 비싼 소뼈를 사서 24시간을 꼬박 고아 손님에게 진국 설렁탕을 대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뼈를 고는데, 고을수록 뽀얀 우윳빛 국물이 나와야 하는 최고급 뼈에서 누런 국물이 나오는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거래처에 전화를 했더니 너무 당황해하면서, 물건이 잘못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늘 하루만 커피에 타 먹는 크림을 좀 넣어 국물을 뽀얗게 만들라는 것이다. 예수 잘 믿는 그 성도가 어떻게 했겠는가? 그날 하루 가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입구에 이렇게 써 붙였다. “오늘은 재료가 좋지 않아 영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가 세상에서 이런 심정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아카페의 마음입니다.
또한 아카페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여기서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했는데 진리가 무엇입니까? 내가 생각해서 옳은 것이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은 진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려 줍니다. 진리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이 땅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예수그리스도 한분 뿐이십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머리가 뛰어났던 아인쉬타인 박사 그가 상대성 원리를 발견하고 나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발견한 상대성 원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여 묻습니다. 이런 놀라운 발견을 해 놓고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말입니까? 그는 말합니다. “나의 이 학설을 뒤집어 엎을 수 있는 또 다른 학설이 나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그러나 유일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사실이 진리입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님께서??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절에 바울은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글을 어디서 적고 있는지 아시죠?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로마감옥에 있을 때 적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비밀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모든 것이 다 갖춰졌을 때 그 때 기뻐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때는 누구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기뻐하는 조건적인 기쁨을 가진 그런 존재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비록 감옥에 있어도. 핍박을 받아도, 회사가 어려움에 놓여 있어도, 가정이 어떤 문제가운데 놓여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유명한 어떤 교회 주 장로님이라고 계십니다. 이 분의 회사에서 불이 나가지고 몇 십억짜리 회사가 잿더미가 되어버렸습니다. 당시 큰 사건이라 TV에도 나왔다고 합니다. 이 장로님은 참 주의 교회를 순수하게 섬기시는 아주 귀한 분인데도 회사가 잿더미가 되고 나니 예배를 드려도 예배가 되지 않고 찬양을 해도 아멘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고 교회에서 충성하며,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님을 위해 사는데 왜 내 회사가 잿더미가 되었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신데 자신을 그렇게 왜 만들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낙심에 절망에 한숨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야, 나는 네게 뭐냐? 네 생명인 예수는 네게 뭐냐? 아직 네게 예수가 있는데 회사가 불 탔다고 이렇게 낙심하다니, 예수가 네 회사보다 못하냐?” 그때 장로님이 깨달았습니다. “아하, 회사는 불탔어도 생명이신 주님께서 내게 계시는데 내가 이렇게 낙심하다니.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주님보다 회사를 더 중히 여겼구나. 내게는 주님께서 계시는데” 그래서 회개했습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뭔지는 모르지만 제 회사가 잿더미가 된 데는 하나님의 뜻이 계시겠지요? 우리 주님께서 계시니 감사합니다.??그리고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장로님이 예배를 마친 후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제가 오늘 신앙을 바로 회복했습니다. 제가 장로이지만, 정말 부끄러운 신앙인이었습니다. 제가 회사를 예수님처럼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주 아주 어린 신자였습니다. 이제 저는 망해도 괜찮습니다. 제게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장로님이 다시 힘을 내어 어떻게 자금을 마련하여. 회사를 새로 차리고는요. 최신식 새 기계를 들여놓고 물건을 만듭니다. 그랬더니 물건이 얼마나 잘 나오고 그리고 또한 얼마나 잘 팔리는지요. 금방 세 배, 네 배로 일어났다고 합니다. 여러분, 회사가 예수님이 아닙니다. 회사가 어려워도 예수님을 붙들고 예수님으로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 때문에 그 회사가 다시 일어날 줄 믿습니다. 만일 장로님이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망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니 회사가 불탔어도 다시 일어나고, 더 잘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남편이 귀하고, 자식이 아무리 귀해도 예수님 만큼 귀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것 다 얻어도 예수님 잃어버리면 모든 것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붙들고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