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 운영자 | 2011-08-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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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장 4절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돌이와 순이는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짝꿍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돌이가 순이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 건네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얘, 순아. 나는 너를 좋아해. 내가 너를 사랑한단 말이야. 그러니 우리 결혼하자." 말하자면 돌이가 순이에게 청혼편지를 쓴 셈입니다. 순이는 그 편지를 받고서 밤새도록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답장을 적었습니다. "얘, 돌아. 나도 너 좋아해. 그러나 미안하지만 나는 너와는 결혼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우리 집안은 모두 가족들하고만 결혼을 했거든. 우리 엄마는 우리 아빠랑 결혼하셨고, 우리 할머니는 우리 할아버지랑 결혼하셨어. 그리고 우리 이모도 우리 이모부랑 결혼하셨어. 이처럼 우리 가족은 다 집안끼리만 결혼했잖아. 그런데 너랑 나랑은 좋아는 하지만 친척도 아니고 남남이잖아? 그래서 미안하지만 나는 너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가 없단다. 돌아, 정말 미안해. 순이로부터."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여섯 살짜리 유치원 아이의 수준으로 생각하면 자기 집안은 다 가족들끼리만 결혼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이런 생각과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좀 더 시야를 넓혀서 모두 또는 전체를 생각하거나 바라보지 않고, 그저 나 또는 나와 관련된 사람 속에서만 갇혀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저 나만 잘 살면 되고, 내 가족만 평안하면 되고, 내 회사만 잘 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옛날 고린도 교회가 가졌던 문제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나누어서 서로 분쟁을 했습니다. 그들은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서로 배타적이었습니다. 전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몰랐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사랑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공동체를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적어 보내며 이런 사랑으로 사랑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속상한 일을 당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할지라도 인내하고 참는데서 사랑이 생깁니다. “[히10:36]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사랑은 온유합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사랑입니다. 억세고 거친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는 따뜻함으로 세상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시기하고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질투는 서로를 세우지 못합니다. 우리는 질투보다 서로를 존중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질투보다 남이 잘되면 칭찬해 주고 축복해 주고 함께 기뻐해 주는 것이 아카페입니다. 오늘은 이 사랑의 실천 네 번째 덕목인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살펴봅니다.
몽골의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평원에 모진 가뭄이 들었습니다. 개울에 살고 있던 개구리가 앞으로 살 일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 마침 이곳을 지나던 기러기 두 마리가 내려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개구리는 기러기에게 불쌍한 개구리를 도와주는 샘치고 큰 호수로 좀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기러기는 도와주기는 도와주는데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 영리한 청개구리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용인즉, 기러기가 각각 부리로 가지 양끝을 물고, 자신은 한 가운데 그 가지를 물고 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기러기는 흔쾌히 응하고 개구리를 나무가지에 물린 채 먼 여행을 하게 되었다. 넓은 평원을 지날 때 말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 나는 개구리를 부러워하며 말합니다. "와 저기 하늘 봐라. 비둘기가 나무가지를 물고 개구리를 운반하쟎아. 정말 굳 아이디언데 누가 저런 생각을 했을까?" 개구리는 자기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에 나무가지를 물고 있는 처지라 그냥 꾹 참았다. 다시 더 넓은 평원과 더 높은 산을 몇 개 더 넘고 또 다시 사람들과 말떼가 노니는 초원을 지나게 되었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모두 다 하늘을 쳐다보며 "야. 신기하다. 정말 보기 드문 광경이야. 아마 저건 기러기의 아이디어 일거야." 하고들 얘기했다. 이번에는 개구리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아니예요 오~~ 이건 제가 생각해낸 거예요오." 옴마!! 그 순간 개구리는 그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우화이긴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은근히 자기를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이지요. 자기를 자랑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남은 낮추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랑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사랑은 내 스스로가 나를 내세우거나, 내 스스로가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나를 낮추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것이 사랑입니다. 1. 그러면 사람들은 왜 자랑을 하는 것일까요? 자랑은 타락한 자의 본심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누구나 은근설쩍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투기는 상대방과 비교해서 자신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데서 오는 것이라면... 자랑은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려고 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드러내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다 알아 줍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남이 나를 다 알아줍니다. 그런데 그것 참지 못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마는 것이 자랑입니다. 마귀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자랑하려 했기 때문에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사14장 12절~14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여기서 계명성을 당시 바벨론이라는 나라로 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대적 마귀로 보기도 합니다. 원래 천사장 루시퍼는 아름답게 지음을 받았어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며 복종할 때 그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만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하늘로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그의 보좌를 높이려 했습니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했어요. 자신을 내세우고 싶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타락하여 진노를 받아 떨어지게 된 곳이 바로 이 지상세계입니다. 그가 마귀입니다. 이 마귀는 타락한 이후 지금까지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마귀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것이 아닙니까?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도 그와 똑같은 마음을 준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마귀가 뭐라고 말합니까? “네가 먹는 날에는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 그 결과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죄를 범하고 말았지요. 그 이후 타락한 인간은 오늘날도 끊임없이 자신을 자랑하려 합니다. 자신을 내세우려는 마음 곧 이 자랑은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결국 자신을 망하게 하는 길임을 아셔야 합니다. 수탉 두 마리가 암탉 한 마리를 놓고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한 수탉이 다른 한 수탉을 찍어서 넘어뜨렸습니다. 암탉 앞에서 초라하게 된 수탉은 부끄러워 담장 밑에 머리를 박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싸움에서 이긴 닭은 담장에 올라가 꼬끼오! 내가 이겼다!하고 소리쳤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먹이를 찾던 독수리가 내려와 그 수탉을 채갔습니다. 으스대고 잘난 체하면 이렇게 잡아먹히는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성경 에스더서를 보면 하만과 모르드게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바사제국을 다스리던 왕이 아하수에로왕 이였습니다. 어느 날 왕이 잠을 자고 있는데 왕의 문을 지키는 경호원 두 사람이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모르드개가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왕에게 알려주어 왕이 죽지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왕은 자신을 살린 모르드개에게 칭찬은커녕 상금도 주지 않고 어떤 관직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왕이 역사기록을 살펴보다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총리 하만이 왔습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제일 어리석고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만입니다. 총리에다 돈도 많고 아들도 열 명이나 둔 하만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모릅니다. 하만이 들어오자 왕이 물었습니다. 하만, 내가 존귀케 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해 주면 좋겠는가? 뽐내기 좋아하고 우쭐대기 좋아하는 하만은 왕이 존귀케 해 주고 싶은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왕이 존귀케 하시려면. 그 사람에게.. 왕이 입으시는 왕복과 왕이 타시는 말과 왕이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씌워가지고는 성중 거리로 다니게 하소서” 자기가 그런 줄 알았는데 그가 아니라 모르드개였습니다. 결국 이 일로 말미암아 하만은 망하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는 착각하며 살면 안됩니다. 마치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냥, 높임을 받을 사람인 냥 착각하며 살면 안됩니다. 그러다가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에 키가 198cm나 되는 한 외교관이 있었습니다. 그 외교관이 브라질 영사관에서 근무할 때 파티나 연회가 끝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 외교관은 아, 내 인기가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파티나 연회에 참석하러 온 부부들이 만나는 장소가 바로 그 외교관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마치고 나서 어디에서 만날까요? 아, 저 사람, 키가 큰 저 사람이 가장 잘 보이겠네요. 저 사람 옆에서 만납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외교관 옆으로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모두 그 외교관에게 인사를 하고 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착각을 많이 합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마치 내가 대단한 자인 줄 착각하고 자랑하지만 우리가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하늘아래 유한한 인간에 불과하지요... ☞한번 따라해 봅시다. 착각하며 살지 맙시다!! 2. 그렇다면 우리가 이 자랑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에 나오는 투기는 남과 비교하는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데서 극복되어 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랑은 어떻게 극복되어질까요? 이 자랑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될 때 극복되어질 수 있습니다. ☞ 따라해 봅시다. 연약하고 부족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족함을 깨달으면 낮아지게 됩니다. 연약함을 깨달으면 겸손하게 됩니다. 그것이 심령이 가난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짜 이 땅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려면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려면 우리 주 예수님을 바라보시면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십니까? 그분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적에도 계셨고, 인류를 주관하시고 다스린 분이십니다. 생과사 화와복의 권세를 쥐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육신으로 이 땅에 계실 적에 자신을 자랑하신 적이 있으셨나요? 단 한번도 없으셨어요.. 모든 권세를 쥐고 계시지만 권세를 자랑하신 적이 없으셨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지만 그것을 남용하신 적이 없으셨어요. 모든 사람에게 모든 사랑을 보여주셨지만 사랑을 자랑하신 적이 없으셨어요.. 죄도 없으시고, 부족함도 없으신 분이셨지만 우리 주님은 철저히 자신을 낮추시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낮아지심이십니다... “[히5: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기도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셨지만 기도하셨고, 눈물 흘리실 필요가 없으셨지만 눈물흘리며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셨습니다. 구원자이신 우리 예수님이 이처럼 자신을 낮추시고, 하나님을 철저히 의존하는 삶을 사셨다면..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조금 가졌다고, 그것 내세울 수 있습니까? 조금 높은 자리에 있다고 그것을 자랑할 수 있을까요? 자랑할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뭐라고 하시나요? [고후10:17]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이는 무슨 말인가요? 예수 믿으면 누구나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주님 앞에 생각해보고 자랑할 것이 있으면 자랑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 앞에 생각해보면 자랑할 것 있나요? 없어요... 내가 나를 자랑할 것 없어요... 바울은 나는 죄인중에 괴수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누가 지식이 있니? 누가 은사를 받았느니? 하면서 얼마나 자기 자랑을 많이 하고 다녔는지 몰라요!! 오늘날 어떤 사람들을 보면 명함을 주는데 명함에 감투가 얼마나 많은지요? 태어나면서 받은 상이라는 상은 다 적어놓고.. 감투란 감투를 다 적어놨어요.. 여러분, 그렇게 적는다고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나나요?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알아줄 사람은 다 알아주고요. 존경할 사람은 다 존경합니다. 자랑한다고 알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내세우게 되면... 도리어 더 비참해지게 됩니다.
3.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자랑해야 합니까? 우리가 자랑할 분은 오직 주 예수님 뿐이십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리 속에는 2가지 싸움을 싸웁니다. 하나는 나를 자랑할 것인가? 또 하나는 내 속에 예수님을 자랑할 것인가? 여러분, 여러분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예수님만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현대의술에 있어 매우 중요한 마취학의 기초가 되는 클로르 포름을 발견하였고, 의학에서 부인과를 창설하기도 한 제임스 심슨 박사가 있습니다. 이분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과학자들과 친구 그리고 친척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하자.이분이 대답합니다. "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내가 죄 많은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구주요 나의 구주시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위대한 발견은 없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는 자기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의 업적은 인류를 유익하게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영혼이 멸망당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기 영혼이 지옥 간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그는 그의 인생에 예수님을 발견한 것이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당당하게 자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 바울은 그의 인간적인 요소와 배경으로 보아 지난날에는 누구보다도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이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며, 명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은 석학이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참으로 갖출 것을 다 갖춘 당당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이전 자랑을 다 버렸습니다. 이전에는 이것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여주는 네임벨류가 되었는데.. 예수님 만나고 나니까 그런 업적이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것이지요.. 바울은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한 이후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깨닫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달리는 자랑할 것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왜 십자가만 자랑하게 되나요? 십자가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 십자가만 자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이 십자가의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가장 위대한 가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드러내는 것이요.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랑하면 주님이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자랑하고 주님 드러내면 주님 나를 높여주십니다. 함께 합독해 봅시다. [잠4:8]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할렐루야!! 우리 주님이 여러분을 높여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썩어질 이 땅의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랑한다면 오직 주님, 오직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도 이런 사랑이 임하기를 축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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