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래참습니다(고전13장4절) | 운영자 | 2011-06-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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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오래참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 목회를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저는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 것 다 해도 사랑하지 못한 목회는 나중에 결국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한 목회는 대단한 것을 이루지 못했어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스컴을 보면 70이 넘은 할머니가 이혼소송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냥 살지 왜 이혼소송을 냈느냐 물어니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남은 생애라고 편하게 살고 싶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70 평생을 살아도 사랑 없이 살면 불행한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그 사람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좀 외람된 질문이지만 이런 생각을 해 보셨나요? 홀연히 나나 내 가족 중 누간가가 갑자기 내 곁을 떠난다면? 저는 한번씩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 제 앞에 눈물이 쨚함을 느낍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제가 아내 고생만 시키고, 자식 고생만 시키고 제대로 사랑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므로 있을 때 잘하세요. 있을 때 많이 많이 섬겨주시고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지난 주에 사랑이 최고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4개 5개 국어를 하고, 하늘 방언을 말하고, 천상의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예언할 수 있는 능이 있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 몸을 귀한 일에 불사를 정도로 열심이 있어도 그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이 이렇게 귀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사랑이 동반되어야 진짜 신앙인입니다. <사랑이란> 그러면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하는 노래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사랑은 관심이요, 책임이라고 말합니다. 다 각각 사랑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지만 성경에 보면 사랑이 무엇이다!! 고 정의한 곳이 딱 한 곳 있습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딱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곧 하나님의 대명사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는 진짜 사랑은 하나님을 통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빠진 에로스, 하나님이 빠진 필레오는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을 때 그것은 진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 아카페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특별히 4절 이하는 아카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사랑의 기술을 말합니다. 사랑은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하늘로부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배워 익혀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 사랑이 없어서 서로 다투고 싸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랑을 지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래참는 사랑의 정의> 오늘 우리가 배울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인가요?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는다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해 봅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습니다” 사랑이 오래 참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랑의 기술을 말하면서 3번씩이나 반복해서 비슷한 내용을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절 앞에도 나오지요. 7절의 첫 구절도 “모든 것을 참으며” 그 마지막 구절도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의 기술 중 처음도 참는 것이고 마지막도 참는 것입니다. 사랑은 참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참는 것으로 끝납니다. 사랑했습니까? 그러면 참아야 그 사랑이 완성됩니다. 아멘~ 오늘날 시대를 가리켜 인스턴트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랑도 인스턴트로 할려고 합니다. 커피는 인스턴트로 마셔도 되고, 요리도 인스턴트로 먹어도 되요. 하지만 사랑은 인스턴트로 하면 아닙니다. 옛날에 어떤 커피회사에서 선전을 봤는데 이런 장면이 나와요. 어떤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있어요, 그 여인을 향해 남자가 ‘돌아와 내가 잘못했어!!’ 문자를 남깁니다. 그러자 여자가 이렇게 답합니다. ‘내가 니꺼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광고가 알게 모르게 사람을 쇄뇌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아시죠? ‘그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굳이 한 남자 한 여자를 사랑할 필요가 뭐 있어’ 세상에 세고 센게 남잔데 여잔데. 이런 생각이 요즘 세대에 편만해져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대학생들을 만나보면 내가 몇 명의 남자와 사귀었는지를 마치 대단한 경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옛날에는 이남자 저남자 만나면 가볍다고.. 여인들 사이에서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가 봐요.. 세태가 그만큼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게 변하면 안됩니다. 한번 더 따라해 봅시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는 것입니다” 사랑은 인스턴트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해 어떤 순간이든 오래참고 기다려 주는 가운데 사랑이 이뤄집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셨습니다> 이 사랑을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 송 가운데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여기서 이 ‘오 신실하신 주’ 이 고백 속에 저는 하나님의 사랑 언제나 오래 참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 오래 참아주시는 사랑 때문에 오늘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짧은 세월을 살았지만 인생의 고비가 몇번 있었던 것 같아요.. 특별히 목숨의 고비가 몇 번 있었는데 차를 운전하면서 아차하며 목숨을 잃어버릴 순간이 몇 번이나 되었지만 생각이 잘 나지않고요.. 그것 말고 특별히 98년도로 생각되는데.. 그때 제가 일산에 있는 모교회에 면접을 보러 갔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서울역 주변에 계시는 사촌친척 집에 신세를 졌었는데 사촌자형과 목욕탕에 갔었습니다. 당시 목욕탕 안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거기서 갑자기 쓰러졌어요. 의식을 깨어보니.. 병원에 누워있는 거여요. 쓰러지면서 바닥에 부딪혀 머리를 다쳤는데 한 10발 정도는 꿰맨 것 같아요..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어요.. 자칫 잘못해서 만약에 모퉁이에라도 받혔더라면 저는 여러분을 볼 수 없었을 거여요. 오래전 개그맨 김형곤씨가 헬스장 사우나 화장실에서 비슷한 일을 당해서 죽었쟎아요.. 그런데 제가 이런 경우를 대학원 다닐 때도 또 한번 더 겪었어요. 여러분 목사인 제가 건강해 보이지만 저는 참 약한 존재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제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저의생명에 대해 오래 참으시는 중에 저는 죽지 않고 살아있더라는 것이죠... 2003년도에 임파선 암이 생겼을 때도 그래요... 사람이 건강할 때는 세상이 자기 것처럼 생각하고 기고만장해요. 그런데 한번 큰 병이 걸리게 되면 한없이 약해져 버려요.. 저 또한 그랬어요.. 암이 걸리고 항암치료 받고 나니.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런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 부족한 저를 향해 버리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셔서 회복시켜 주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오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뿐만 아니라 저 같은 자를 세계의 중심국이라고 말하는 이 땅 중국까지 보내셔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 전하는 일에 쓰임 받도록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할렐루야!!! 죄와 허물을 놓고 보아도 그래요...하나님이 우리에게 형제가 죄를 범하고 회개하면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그러셨는데 하나님이 나같은 죄인을 얼마나 많이 용서해주셨는지 모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저 같은 자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보시며 저를 판단하셨다면 저는 아마 목사 못할 겁니다. 그러나 저 같은 허물 많은 죄인도... 하나님께 겸손히 무릎 꿇기만 하면 과거 뭍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예수 보혈로 씻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런 사랑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제가 목회를 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이사야 49장 15절에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할렐루야! 사랑은 끝까지 견디며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한번 택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에로스 사랑으로, 필리아 사랑으로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 은혜를 잊어버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고무줄에 매인 공은 뛰쳐나가도 다시 돌아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매여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밖으로 나가도 하나님의 흡인력에 끌려 다시 돌아와 하나님의 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 때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 속에서 뒹굴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시면서도 우리를 버리지 못하십니다. 기어이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품에 안아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2. 이 사랑을 받은 우리도 하나님을 향하여 오래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일을 말하면서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는 많은 사람이 예수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로라!!’ 말하며 사람들을 현혹케 할 것입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게 될 것이고 민족과 민족이 나라가 나라를 대적해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을 것이고 하늘의 징조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핍박과 박해를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기도 할 것인데 심지어 예수 믿지 않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이 대적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눅 21장 19절에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함께 한번 따라해 봅시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인내로 영혼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되 끝까지 가야 합니다. 중간에 낙오자가 되면 안되요. 우리가 믿음을 가졌지만 언제든지 타락하여 떨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노아시대를 보십시오.. 성경은 노아시대의 사람들의 삶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믿기는 믿지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져 자기 좋아하는 대로 여자를 취하고 말았어요.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지었음을 깊이 후회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지식으로만 믿고 만다면 그것은 잘못 믿는 거여요. 예수님을 사랑해도 인스턴트의 사랑으로 끝난다면 하나님은 후회하실 것입니다. 언제나 오래 참는 사랑... 주님이 나를 향해 신실하셨듯이 나도 주님을 향해 신실한 사랑을 보일 때 주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노아가 그러했습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을 믿지만 건성으로 믿고, 믿음의 모양만 있지 실제로는 정욕대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뿐이에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모습과 달리 노아는 어떻했나요?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그 시대에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언제나 오래 참음으로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럴 때에 노아는 그 당대 유일하게 구원 얻는 구원의 씨앗이 될 수 있었어요.. 이 폐역한 세대에... 여러분에게도 노아와 같은 이런 신실함이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래서 노아를 통해 그의 가족이 구원받았던 것과 같이 여러분을 통해 많은 영혼이 주님께로 인도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오래 참는 이 사랑을 우리의 삶 속에서도 나타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언제나 오래 참는 것입니다. 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다툼이 있었을까요?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참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속상한 일을 당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도 꾹 참으면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참지를 못하고 갚아주려고 하고, 복수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왜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기나요?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한쪽편에서 참아버리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신혼부부가 부부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지 않는 아내에게 남편이 화를 내며 하는 말이 지난 결혼식 때 주례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잊어버렸어.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이라는 했쟎아!! 남편을 하늘로 존중할 줄 알아야지!! 그러자 아내가 뭐라 한 줄 아세요.. 당신은 요즘 땅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쏟고 있다는 것도 몰라!! 서로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에게 에로스 사랑도 있고, 필레오 사랑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없는 사랑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like와 love는 다릅니다. 같은 말 같지만 다릅니다. 고양이가 쥐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쥐를 잡아먹습니다. 광산업자가 산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금을 다 캐고 나면 그 산을 버리고 갑니다. 이것이 like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면(love) 끝까지 버리지 못합니다. 산을 좋아하는 광산업자는 필요 없게 되면 산을 버리지만, 산을 사랑하는 등산가는 산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가꿉니다. 욥의 아내는 욥을 좋아했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돈이 있고 남편이 건강할 때는 남편으로 모셨다가 그 남편이 망하니 가출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아가페, 하나님의 사랑은 달 때나 쓸 때나 변함 없습니다. 여러분 이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이작과 존은 하버드 대학의 우등생으로 사랑하는 친구였습니다. 졸업을 앞둔 여름 방학 때 아이작은 대부호인 존의 집에 가서 그의 가족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다 존의 동생 메리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하버드 대학의 특별 우등생과 대부호의 딸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마차를 타고 신혼 여행을 출발하는 신혼 부부에게 사람들이 옥수수 봉지를 던지며 큰 소리로 결혼을 축복하는 말을 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아이작과 메리가 마차를 타고 출발하려고 할 때 사람들이 막 소리를 지르며 옥수수 봉지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 시끄러운 상황에 말이 깜짝 놀라 그만 미친 듯이 달리는 바람에 마차가 뒤집혔습니다. 아이작도 많이 다쳤지만 메리는 머리를 크게 다쳐 10세 미만의 저능아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존이 아이작에게 말했습니다. ‘아이작, 자네는 많은 학문을 연구해야 될 사람이니 내 동생과의 결혼은 없었던 일로 하게. 그래야 자네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네.“ “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하나님 앞에서 서약했어.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에는 메리를 버리지 않는다고 하나님 앞에서 약속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 약속을 깨뜨릴 수 없어. 나는 끝까지 메리를 내 아내로 사랑할 거야.” 그래서 존이 40년이 넘도록 비정상적인 여자를 아내로 사랑하며 극진히 간호하고 돌보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랑(love)입니다. 교통 사고를 당하여 불구자가 된 남편을 버리는 아내가 있습니다. 병든 아내를 버리는 남편이 있습니다. 어찌 사람이 그럴 수 있습니까? 부부는 한 몸인데 병들었다고 어떻게 버린단 말입니까? 최근 기사를 보니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벤처사장인 한 여인이 장래가 촉망되는 중증장애인을 남편으로 맞이해 결혼을 했는데.. 최근에 남편으로부터 이혼 소송을 당하고 파혼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2004년 한 때 벤처사장 뉴욕 최연소 부장검사와의 결혼이라고 해서 세간의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입니다. 특히 수백억 자산을 가지고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음에도 장애를 가진 남편을 사랑하여 결혼한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여인의 사랑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어요. 결혼할 당시에 그녀의 회사가 각종 소송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여인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하고 나서 이런 각종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까 남편을 미국에 놔두고 제대로 돌보지도 않으며 아내로써의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어찌 이런 일이.. 이건 사랑이 아니에요.. (여러분 집에 가시거들랑 꼭 아내에게 남편에게 한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 내가 교통사고 나서 불구자 되어도 날 안 버릴거지... 내가 병들어도 날 절대 안 떠날거지... 꼭 물어보시면서 사랑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축복하십니다. 히브리서 10장 36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인내가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도 하나님의 축복 곧 약속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삼만 가지가 넘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데, 인내하는 자만이 그 약속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75세 때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는데 99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인내하여 결국100살 때 아들을 얻었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 왕이 된다는 약속과 함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왕이 되기는커녕 역적이 되어 10년간 도망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인내하여 마침내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내가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인내 없이 직장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까? 인내 없이 자식을 제대로 기를 수 있나요? 인내없이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마음에 드는 남자와 여자를 만나도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만나는데 인내 없이 어떻게 살아요. 참아야지 은혼식도 하고 금혼식도 하고 다이아몬드식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참는 사랑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이 시간에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런 사랑을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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