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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가장 소중한 은사(고전13장1~3절) 운영자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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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3장 1절~3절 사랑, 가장 소중한 은사

 

“사랑, 가장 소중한 은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전하겠습니다.

 

결혼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은 다릅니다. 여인이 결혼하게 되면 생활 패턴이 달라지고 또 때가 되면 배가 불러오고 아기를 낳습니다. 결혼한 여자와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다릅니다. 결혼한 여자는 생활에 그 증거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결혼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말이 달라지고 생활이 달라집니다. 가정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두 친구가 있었는데, 한 친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3년이 지났을 때 믿지 않는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가 믿는 예수가 몇 살에 돌아가셨는지 알아?” “몰라”

“예수님이 설교한 것이 몇 편이나 되는지 알아?” “몰라”

“자네는 도대체 예수님에 대해 무얼 아는가?” “잘 몰라. 그러나 내게 일어난 일이 많아.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3년 전까지만 해도 허구한 날 술만 마시고, 그 술값 내느라 빚만 졌잖아. 또 내가 퇴근할 때가 되면 우리 가족들이 나를 피해 숨어 다녔지. 그때 내가 얼마나 나쁜 남편이었고 나쁜 아빠였는지는 자네도 알잖아. 그러나 지금의 나는 술도 마시지 않고, 빚도 다 갚았다네. 또 나는 아내와 자식을 정말 사랑한다네.. 자식들은 내가 퇴근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지금 우리 가족은 정말 행복하다네. 이것이 증거가 아니겠나.” 예수님을 믿으면 증거가 많이 나타납니다.

 

미국의 한 유명한 무신론자와 유명한 목사님이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하는 문제로 대결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교수인 그 무신론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논리 정연하게 설명했고,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것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목사님이 성령님의 도움으로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 이렇게 하도록 합시다. 앞으로 일주일 후에 모 극장에서 만나기로 하는데, 당신은 예수님을 믿다가 예수님과 교회를 버리고 잘 된 사람 열 명을 데려 오고,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예수님을 믿어서 잘 된 사람 열 명을 데려 오는 것으로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살아계신지 안계신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무신론자도 좋다고 했습니다.

일주일 후, 그 극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유명한 목사님과 유명한 교수의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신론자 교수가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예수님을 버리고 잘 된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열 사람을 다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잘 된 경우가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제게도 증거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령한 은사를 주심>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생활에 나타나는 증거도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우리에게 신령한 은사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한 성령으로 유익을 위해 우리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서 11절에 말씀하십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십니다.

그런데 고린도에 있는 교인들은 특별히 방언의 은사를 많이 받았습니다.(방언의 은사? 기도할 때 하나님과만 신령한 언어로 교통하는 것) 그리고 그들은 이 은사가 마치 최고인 줄 알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방언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은근히 멸시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로 교회가 분열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사랑이 최고>

여러분, 내 것만 최고인 줄 알고 상대방을 멸시하면 안됩니다. 상대방의 존재도 귀하게 여기고 상대방이 받은 것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사람을 통해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져 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방언만 자랑하는 고린도 교인에게 “방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은사가 있는데 방언은 여타 다른 은사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만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은사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라고 하면서 사랑을 소개합니다.

고전12장 31절을 읽어 봅니다.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이 제일 좋은 길이 무엇인가요?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모든 은사들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많은 은사가 있지만 사랑의 은사는 가장 중요한 은사인 동시에 모든 은사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방언하는 사람에게도, 통역하는 사람에게도, 지혜를 말하는 사람에게도, 지식을 말하는 사람에게도, 예언하는 사람에게도, 영들 분별하는 사람에게도, 능력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병 고치는 사람에게도 사랑은 항상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떠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금과 같은 사랑>

사랑은 그런 점에서 음식 안에 소금과 같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 맛을 낼 수 없습니다. 불고기 양념이 아무리 맛있게 보여도 소금이 없다면 못먹을 거여요. 하지만 고기 양념이 없어도 소금만 쳐서 먹어도 소금구이가 되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소금이 모든 음식에 들어가서 맛을 냅니다. 이처럼 성도의 삶 속에 이 사랑이 들어가야 성도의 맛을 낼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에로스>

우리가 잘 아는 오 헨리의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참 가난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 둘은 서로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긴 머리에 어울리는 핀을 사주고 싶어 자기의 시계를 팔아 아름다운 핀을 샀습니다. 아내는 평소에 시계줄이 없어서 시계를 차고 다니지 못하는 남편을 보며 늘 마음 아파하다가 자기 머리를 잘라서 판 돈으로 남편의 시계에 어울리는 좋은 시계줄을 샀습니다.

부부가 집에 돌아와 서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해 주었습니다. 머리카락이 없는 핀, 시계가 없는 시계 줄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부부가 서로를 향한 사랑을 알고는 함께 부둥켜 앉고 울었다고 합니다. 사랑이 있으면 가난해도 살맛이 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남녀간의 사랑을 에로스 사랑이라고 합니다. 남녀 간에 나누는 이런 사랑에도 진한 감동이 있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 드라마나 영화 좋아하시죠?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만들어도, 유명한 배우가 나와도... 그 영화에 사랑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앙코 없는 찐빵과 같아요.. 아무런 감흥도 교훈도 주지 못합니다.

작년에 종료되었지만 “추노”같은 드라마를 보면 진한 감동이 있습니다.

양반집 아들 대길이와 노비의 딸 은연이. 비록 두 사람이 맺으지기 힘든 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사랑인 은연이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사랑하는 대길의 모습을 보면서 에로스의 쨘한 사랑을 보게 됩니다.

세계인을 감동시킨「러브스토리」같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하고 깨끗한지, 보는 이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이야기 이도령과 성춘향이의 에로스 사랑도 우리를 살맛나게 해주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끼리 이런 사랑을 오래토록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그 어떤 것이든 소중한 것입니다. 버릴 것이 없습니다. 사랑은 가장 귀합니다.

 

<필레오>

사랑에는 이런 에로스의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제가 형제를 사랑하는 필레오 사랑도 있는데 이 사랑도 참으로 귀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이룬 것이 많아도..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치고받고 다투게 된다면.. 그것은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이고. 세상에도 도움이 안됩니다.

여러분, 형제들이랑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으면 서로 돕고 의지하고, 섬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의좋은 형제’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형과 함께 살던 동생이 독립을 해서 따로 나가 살게 되었습니다. 형은 동생이 걱정되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새롭게 살림을 차려서 얼마나 돈이 많이 들까?’

그래서 자기 논의 볏단을 동생의 논에 (몰래) 갖다 놓았습니다. 동생은 형님이 걱정되어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형님 댁에는 조카들이 많아서 생활비가 많이 들 텐데….’

동생도 늦은 밤에 논에 나가서 자기 논의 볏단을 형의 논에 갖다 놓았습니다. 서로 그러다가, 어느 날 밤에 형과 동생이 마주쳤습니다. “형님!” “아우!” 그 곳이 바로 천당입니다.

형제간에 으르렁거리며 살면 그것이 사는 것이겠습니까?

형은 그저 동생을 위하고, 동생은 그저 형을 위하는 필레오 사랑도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사랑인지 모릅니다.

 

<아카페>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사랑은 에로스 이상, 필레요 이상의 사랑인 아가페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3장 16절의 사랑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랑이 아가페입니다. 이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에로스는 사랑할 만한 조건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가페는 사랑할 조건이 없어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죄악 덩어리, 더러움 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자식을 사랑하는 육신의 부모의 사랑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탕자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그 사랑, 집안의 재산을 떼어가서 창기와 더불어 다 말아먹고 온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그 사랑에서 우리는 아가페의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제 멋대로 살아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 주신 그 사랑이 아가페입니다. 구원받을 조건이 없는데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그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얼마나 귀한 사랑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 또한 이 사랑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1946년, 독일의 한 농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카를로스키라는 사람이 한 농가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다가 강도로 변하여 그 가족 열 사람에게 총을 난사했습니다. 아홉 명이 죽고 카벨만이라는 주인만 살았습니다. 카를로스키는 20년형을 받고 감옥에서 20년간 복역했습니다.

그러나 가족도 없고 후견인도 없는 그는 복역을 마치고 나가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석방이 보류되었습니다. 그의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를 본 카벨만 씨가 그의 후견인이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를 자기 가족으로 영접하여 사랑하며 자기 집에서 함께 살기로 한 것입니다. 많은 독일 국민들이 이 소식을 접하고 감동을 받습니다. 기자들이 카벨만 씨 집으로 몰려가서 물었습니다. “카벨만 씨, 당신 가족을 아홉 명이나 죽인 원수를 어떻게 가족으로 영접하여 사랑한단 말입니까?” 카벨만 씨가 대답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용서받은 내가 어찌 이분을 용서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용서받은 내가 이분을 용서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카페 = 용서>

누가복음 17장 4절을 보면, 아가페 사랑은 용서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여러분, √일 년에 일곱 번 내게 잘못해도 용서하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입니다. 내게 똑같은 죄를 하루에 두 번만 지어도 내가 용서해 주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죄를 내게 하루에 일곱 번이나 저지르고는 ‘아이고, 내가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하면 그것을 어떻게 용서해 주겠습니까? 그래도 용서하는 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 사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때로는 일곱 번보다 더 많은 죄를 짓습니다. 생각으로, 말로, 생활로 하루에 일곱 번보다 더 많은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며 사랑하셔서 오늘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내가 용서해 주지 못할 형제가 없고, 용서해 주지 못할 친구가 없고, 용서해 주지 못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하면 우선 내가 편하고 내가 살게 됩니다.

미국 사상과 문학의 중요인물 에멀슨이 말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고, 미워하는 사람을 계속 미워하는 것은 한 마리의 모기를 잡기 위해서 가옥을 불태우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어느 한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그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의 종이 되어서 내 마음이 상하고 내 몸에 병이 오게 됩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말씀하십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이 즐거울 때는 오장 육부가 튼튼해지고 삶이 강건합니다. 미운 사람이 있으면 그 미운 감정 때문에 내 마음이 먼저 병들어 내가 죽게 됩니다.

 

여러분이 혹시 미워하는 사람, 원망하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그러면 이 시간 그 사람을 용서해 버리시기 축원드립니다. 여러분 분명히 아십시오.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절대 이롭지 않습니다. 계속 미워하는 것은 여러분의 영혼을 병들게 할 뿐입니다.

이 시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에게 아카페 사랑을 주옵소서... 형제를 위해 나를 포기할 수 있는 마음 주옵소서... 형제를 위해 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과 제게 이 아가페 사랑이 넘치면 상대방이 내게 (아무리) 냉랭하게 대하고 나를 배신해도.. 그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이 사람을 살립니다. 내게 용서하는 사랑이 있으면 내가 살았듯이 남편을 살리고 아내를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의 어느 교회에 믿음이 신실한 한 여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이해하시고 들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여집사님의 남편이 딴 살림을 하고 있었어요. 애인을 데리고 이 호텔, 저 여관으로 다니다 보니 돈이 많이 들자 그 남편이 애인을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여보, 미안하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만, 이 여자도 버릴 수가 없어. 이 여자하고도 같이 살아야 되겠어”

만약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 여집사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집사님은 ‘내 남편이 병이 들었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래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부자리를 펴 주고, 식사 때마다 밥상을 차려서 갖다 주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애인이 편지를 써놓고 집을 떠나갔습니다.

‘형님, 형님 같은 분을 괴롭히면 하나님께서 벼락을 치실 것 같아 겁이 나서 떠납니다. 형님은 제가 감히 쳐다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귀한 분입니다. 아무쪼록 잘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런 연락처도 남겨 놓지 않고 떠나버린 여인을 찾을 길 없습니다. 그래서 그 남편이 본부인과 잘 살았답니다.

만일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칼부림이 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아카페의 사랑이 있었기에 남편을 사랑하되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카페의 사랑으로 승리했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이토록 위대합니다.

아가페 사랑이 최고로 중한 은사인 것을 아는 바울이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사람의 방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어입니다. 그리고 천사의 말은 천사가 하는 천상의 언어입니다. 그런데 이 방언을 받아 히브리어도 하고, 러시아말도 하고, 중국어도 능수능란하게 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꾕과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심지어 천상의 말을 깨달아 그 언어를 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이는 무엇을 말하나요? 이 땅에 우리가 아무리 큰 은사를 받아 위대한 언어를 배우고 신령한 언어를 구사한다고 해도 사랑이 담겨있지 않다면 그것은 공허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이 중요합니다.

 

또 바울이 말씀합니다. 2절입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여러분, 여러분이 은혜를 받아.. 성경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도, 그리고 산을 옮길 정도의 큰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최고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무리 많이 알고 많은 능력을 받았다고 해도 이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잘못 믿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에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사랑이 없다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해도, 귀신을 쫓아내도, 권능을 행해도 그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바울이 말씀합니다.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구제와 희생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요? 그러나 그것도 사랑이 빠져 있고 다른 의도가 있다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자폭테러를 하면 영웅 취급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웅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것으로 남을 도와줘도,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줘도... 사랑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사랑이 최고입니다. 에로스의 사랑도 아름답고 필레오의 사랑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형제와 원수를 위해 기꺼이 나를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하며 살라고 말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용납해야 할 사람이 없습니까? 오늘 받아들여야 할 사람 없습니까? 이시간 눈을 깜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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