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부모를 공경하라 | 운영자 | 2011-05-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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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6:1-3 네 부모를 공경하라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제사를 드리지 않기 때문에 ‘효를 모르는 종교, 근본도 모르는 종교’라고 비난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기독교만큼 효를 강조하는 곳도 없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그것을 담아놓은 계명이 십계명인데..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십계명 중, 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5에서 10계명은 사람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계명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입니다. 부모님 공경은 어느 특정 시대만의 교훈이 아니라 인류역사 이래 계속 되어온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강산도 변하고 인심도 변합니다. 생활스타일과 패턴도 변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연의 법칙입니다. 세상의 도덕적인 기준은 달라져도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를 부모와 자식사이라고 합니다. 부부사이가 가장 가까 와서 무촌이라지만 갈라서면 남이 됩니다. 그러나 혈육의 관계는 1촌 사이지만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근래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이런 천륜마저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마지막 때> 아버지를 미성년 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여 임신을 시키지 않나!! 어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 딸을 유흥주점에 팔아넘기지를 않나... 할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 손녀를 술집에 고용하여 일을 시키지는 않나..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들이 우리주변에 발생하고 있어요. 그런가 하면 부자지간에 재산문제로 소송을 걸고 심지어는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말 상상치 못할 비 인륜적인 행동이 오늘날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마지막 때가 되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딤후 3:2에 보면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부모를 거역하는 세대가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가정이 파괴되어갑니다. 예전에는 이혼을 해도 서로가 자식을 키우려고 했는데 이제는 서로가 안 키우려고 떠 맡기거나 고아원에 맡겨버린다고 합니다. 정과 애틋한 사랑의 관계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왜 이리삭막하게 변질되어 버렸나요? 우리는 이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Ninety-thre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프랑스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어느 부대 하나가 이동하면서 숲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가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상사 한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체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세 아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릴적 우리들은 이 사랑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희생을 잘 표현한 시를 들어보십시오 . 심순덕씨자 지은 씨입니다. 제목이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입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뙤약볕 내리쪼이는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얼음 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뒤꿈치 다 헤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 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로.../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엄마.. 여러분, 이렇듯 애틋한 사랑이 바로 우리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랑을 잊고 살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잊어 버려야 할 것이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베푸신 구원과 부모님의 은혜는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복받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다하신 부모님의 사랑에 어떻게 보답해야 합니까? 첫째,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함으로 보답해야 합니다. 1절입니다.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우리는 할 수 있다면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부모님의 뜻을 순종하며 받드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순종은 주 안에서 하는 순종이어야 합니다. 어느 성경퀴즈 문제집에 나온 문제입니다. 문제를 들어보십시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성경적인 관계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 ①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② 자식은 부모를 무조건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한다. ③ 경건한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④ 부모는 자식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할 책임이 있다. 어떤 것이 틀립니까? 정답은 2번입니다. 성경대로라면 자식은 부모님을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자매가 고등학교 때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아예 집에서 나가라했는데 이것으로 인해 자매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예수를 선택할 것인지, 부모를 선택할 것인지,.. 기도하면서 이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수를 믿지 말라는 말씀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와 기도원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녀의 부모님이 "제발 집만 들어와라, 교회 나가는 것은 허락할테니" 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선택했더니 그녀는 하나님도 얻고 부모님도 얻었어요.. 부모님을 위해 계속 기도하여 부모님도 구원하고,, 자신은 목회자의 사모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주 안에서 순종한다는 것... 이것 참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몇배나 더 책임을 요구합니다. 불신 부모 앞에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순종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쉬운일이 아니어요.. 특히 명절같은 날, 믿음을 지키며 불신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신앙은 타협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과 관련되어서는 단호해야 하되... 나머지 부분에서는 배나 더 노력해야합니다. 그래서 불신자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해요... 올해 어버이날을 맞이하여서 효행상 부문 국민 표창장을 받은 부산의 김진순씨라는 분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36살밖에 안된 신세대 며느리인데 이 며느리는 남편과 결혼하자 마자 자원해서 부모님을 모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가정에 잘하는지.. 시어머니를 엄마라 부르며 친딸처럼 따를 뿐 아니라... 오랜 시간 신부전정을 앓고 계신 어머님을 위해 자기 신장을 떼서 이식 시켜 주었어요. 주변에서는 이 분을 근래 보기 드문 효부라고 칭찬이 자자하다고 해요..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 믿음 지킨다고 말만 하고 행동은 효와 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부모님을 더 열심히 돌보고, 더 사랑하고, 더 순종함으로 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2절 말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듯이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공경하라고 그러니까 공격!!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대접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십니까? 자식으로서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면 세 가지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첫째, 부모님을 공경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둘째는, 부모님을 공경하면 또 부모님이 기뻐하십니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면 부모님이 우리에게 잘해 주십니다. 셋째, 부모님을 공경하면 우리의 자녀들이 보고 배웁니다. 자녀들이 보고 배우면 우리가 죽을 때까지 행복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온 효를 할 때 자식이 반 효를 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효자가 되지 못했는데 내 자식이 효자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씨를 심지않고 추수를 기다리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낳아준 부모님이 나를 뒷바라지 한다고 꾸미지 못하고.. 얼굴이 타고.. 주름살이 깊어져도 그것 부끄러워하면 안되요... 우리는 부모님의 연약함조차 자랑스러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부모님의 연약함도 자랑스러워야 합니다” 이게 공경이에요.. 얼굴에 화상 흉터로 인하여 보기에도 흉하게 생긴 어머니를 둔 딸이 있었습니다 이 딸은 자기어머니의 얼굴이 엉망인 것이 내내 속상했습니다. 가끔 친구들의 엄마가 학교에 찾아오면 그들을 부러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얼굴에 흉터가 있는 자기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 올까봐 친구들이 자기의 엄마의 모습을 볼까봐 엄마에 대하여 감추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딸이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가지 않아서 엄마는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찾아가서 딸에게 전해 주고 왔습니다. 그 날 이 딸은 자기의 엄마의 얼굴이 학생들에게 알려지게 되자 점심을 먹지도 않고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딸은 인사도 없이 자기 방에 들어가서 울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그런 딸의 마음을 이해하고 서랍에서 자신의 옛날 사진을 꺼내어 가지고 울고 있는 딸을 안아주면서 자신의 사진을 딸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사진을 본 딸은 "이게 누구 사진이야?" '엄마의 사진이란다" "그런데 어떻게 엄마의 얼굴이"..엄마는 조용히 지나온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딸아 네가 세 살 때에 우리 집에 불이 났단다. 그때 너는 방에 있었고 엄마는 시장에서 돌아오다가 네가 방에 갇혀 있는 것을 알고 너를 구하려 불 속에 들어갔다가 화상을 입었단다" 여기까지 말을 듣던 딸은 엄마의 목을 껴안으면서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그 이후로 딸은 자기의 생명을 구해준 엄마의 얼굴의 흉터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친구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부모를 공경한다고 하는 것은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존경을 받는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구두를 만드는 집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귀족들은 구두 수선쟁이의 아들이 대통령이 된 것에 대하여 황당했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 링컨이 상원에서 대통령 취임연설을 하려고 단상에 섰을 때, 나이 많은 귀족이 일어나서 “미스터 링컨, 어쩌다 당신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는 했지만, 예전에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 식구들의 구두를 만들기 위해 우리 집을 드나들곤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기 바라오. 또한 여기에는 당신의 아버지가 만든 구두를 신고 있는 상원의원들이 있소. 그러니 당신의 출신을 잊지 마시오”라며 링컨을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링컨은 겸손히 “내가 상원에서 첫 연설을 하기 직전에 나에게 아버지를 생각하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매우 멋진 창조적인 예술가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아버지보다 더 아름다운 구두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하든, 내 아버지가 위대한 예술가였듯이 그런 위대한 대통령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압니다. 나는 결코 나의 아버지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일 나의 아버지가 만들어 드린 구두가 여러분의 발에 맞지 않거든, 나도 아버지에게서 배운 기술이 조금 남아있으니 나에게 말씀하십시오. 나는 훌륭한 제화공은 아니지만, 최소한 여러분의 구두는 수선해 드릴 수 있습니다. 연락만 주십시오. 그러면 언제라도 여러분의 집으로 달려가겠습니다” 라는 기억에 남을 만한 훌륭한 답변을 하였습니다. 이 연설에 상원의원들은 쥐죽은 듯이 잠잠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을까요? 많은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부모님이 짝사랑하게 하지 마십시오 사랑 중에 가장 가슴 아리는 사랑은 짝사랑입니다. 한편에서는 모든 것을 다 주면서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 사랑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무관심할 때 상대방이 얼마나 속이 애달는지 몰라요. 효도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한자어는 이 효도에 대해 퍽 재미있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어버지를 한자로 친(親)이라 습니다. 어버이 친자가 어떻게 씁니까? 나무 목(木)자 위에 설립(立)자를 올려놓습니다. 나무 위에서 올라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다가 볼 견(見)를 붙여 씁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나무 위에 올라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바라보는 그 애틋한 존재가 바로 어버이 인 것입니다. 한편 그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며 늙으신 어머니를 엎고 있는 모습이 한자에서는 효도 효(孝)자로 표시를 했습니다. 늙을 노(老)자 밑에 아들 자(子)자가 있습니다. 아들이 연로하신 어머님을 등에 업고 가는 모습이 효도 효(孝)자입니다. 이렇게 사랑은 먼저 부모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낳으시고 사랑으로 양육하고 보살핌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만이 자녀를 사랑하는 것으로 끝이 나면 안됩니다. 사랑은 주고 받아야 합니다. 친(親)이 있으면 효(孝)가 따라와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사랑이요, 가장 아픈 것은 사랑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짝사랑하게 하지 마십시오. 또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짝사랑하게 하지 마십시오. 두 번째 공경하는 방법은 부모님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23:22절에 보면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부모님들은 이 시대의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십니다. 인터넷도 잘 모르시고, 스마트폰, 테블릿pc 이런 용어조차 잘 모르십니다. 디지털이라고 그러면 "뭐라고 돼지털"이라고 하실 정도로 낯섭니다. 아날로드 시대를 보내신 어르신들은 디지털이 불편합니다. 얼마 전 아들에게 고모가 게임기를 보내왔어요.. 제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얼마나 잘 하는지.. 놀랬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이런 문화와 거리가 멀어요..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부모님들이 이런 문명시대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그분들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대 차이를 느끼지 않게 자녀 된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대화를 나누더라도 끝까지 경청하며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문화가 달라도 세대가 달라도 그분들의 통해 배워야 합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연로하신 분들의 지혜를 멸시하고 친구들의 말만 들었습니다. 결국 그 일로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불행을 만나게 됩니다. 어르신들의 말씀 가운데서도 배워야 할 지혜가 있습니다. 그분들의 연륜 속에 묻어나는 지혜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부모의 나이가 70이 넘어면 산 속에 내다 버리는 고려장이 있었습니다. 이 시절에 한 나라의 충신이 겪은 일화입니다. 효자인 그 충신은 늙으신 아버지를 차마 내다버리지 못하고, 자기 집 뒤뜰에 지하 굴을 파고 그곳에다가 모셨습니다. 그리고 왕에게는 법대로 산 속에 버렸다고 아뢰었습니다. 얼마 후 이웃 나라에서 이상한 문제와 함께 사신을 보내 왔습니다. 문제를 풀지 못할 경우 이를 빌미로 얕잡아 보려는 속셈이었습니다. 문제인즉, 사신이 데려온 두 필의 암말 중 어미와 새끼를 구별해내는 것이었는데, 외모를 보아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습니다. 왕궁은 발칵 뒤집혔고, 학자, 술사, 지혜자들이 모두 모여 지혜를 짜내었으나 문제를 풀 수가 없었습니다. 한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이 문제 때문에 충신도 여간 고민이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밤이 되자 그는 삶의 연륜이 많은 그의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놀라운 지혜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왕궁의 뜰에는 왕과 대신들, 그리고 이웃 나라 사신과 두 필의 말이 모두 모였습니다. 이제 충신이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여물통 두 개를 갖다 놓으시오." 잠시 후 두 필의 말 앞에 여물통이 각각 놓였습니다. 먹이를 본 말들은 여물통 앞으로 다가가 여물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계속 먹어대는데 반해, 다른 한 마리는 한 입 먹더니 슬그머니 옆의 말에게 여물통을 밀어주는 것이 아닙니까? "바로 이겁니다. 계속 먹어대는 말은 새끼요. 그 옆의 말은 어미입니다 !"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자기새끼 귀중히 여기는 것은 천륜이었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왕궁의 모든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민망해진 이웃 나라 사신은 서둘러 제 나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뻐할 줄 알았던 충신이 왕의 발 앞에 엎드려 우는 것이 아닙니까?! "왕이시여,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사실 이 문제의 해답은 저의 지혜가 아니라, 제 아버님의 지혜입니다. 지난 날 산 속에 버렸다고 아뢰었던 제 아버님은 지금 제 집 뒤뜰 지하 굴에서 살고 계십니다." 왕은 충신의 효성에 감복하고, 또한 지혜로써 자식들을 다스리는 노인의 귀중함을 깨달아 이후로 노인을 산 속에 버리는 일이 없도록 명령을 내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인류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어제를 모르면서 오늘을 말하기 어렵고, 어제를 모르면서 내일을 말하고 꿈꾸기는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수고하신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우리 인생의 선배들의 노고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교훈을 가르쳐야 해요.. 그것이 가정이 잘되고 나라가 잘되는 비결이에요.. 자녀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만 가르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어요. 역사의 교훈을 가르쳐야 하고, 부모님을 받들고 존경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날 정말 필요한 것은 지식교육보다 인성교육, 예절교육입니다. 요즘 어른들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요즘 아이를 무섭다는 겁니다. 공부는 잘해도 머리에 든 것은 많아도.. 인간이 덜된 아이어른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처럼 우리가 부모께 순종하고 공경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성경은 어떤 약속을 주시나요?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3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여기서 잘 된다는 것은 포괄적인 의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형통한 삶을 말합니다. 여러분, 저는 부모공경 잘 하는 자가 망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변에 “참 잘 사는 것 같애!!”이런 느낌을 주는 가정을 보십시오.. 여지없이 그 부모와의 관계가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은 부모공경 잘하는 자에게 생명연장의 복도 더불어 주십니다. 그런데 오래사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하게 오래살고, 예수 잘 믿으므로 오래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으로 오래사는 복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오늘은 부모공경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 공경이 우선이요 그 다음에 육신의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아 부모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십시다. 순종하십시오. 외롭게 짝사랑하도록 하지 마십시오. 부모님 일찍 여의셔서 계시지 않다면 영적 부모님들을 돌아보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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