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와 같이 되라 | 운영자 | 2011-05-11 | |||
|
|||||
마18:1-6 어린아이와 같이 되십시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 주일은 어린이를 소중하게 여기자는 취지에서 어린이 날에 맞춰 5월 첫 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어린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기업이요 선물입니다. 가정의 보배이며 이 나라와 민족, 교회의 희망입니다. 기독교 어린이 권리 선언문에는 어린이의 권리를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께서 어린이를 높여 천국을 상징하시고 어린이를 영접하여 축복하신 본을 받들어 우리는 어린이를 사랑 안에서 자라나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그 권리를 선언한다. 어린이는 완전한 인격자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어린이는 말과 행동과 생활전반에 있어서 어른과 동등한 인권상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 어린이는 배울 권리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 생활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어린이는 양육 받을 권리가 있다. 어린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부모를 위시한 어른들은 그들을 바르고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 어린이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과중한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에서 보호하며 위험과 질병과 굶주림에서 보호하고 모든 편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어린이는 평화를 누릴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크고 작은 싸움의 희생이 되어서는 안되며 압박과 불안감에서 보호하고 그들의 꿈을 해치지 않도록 내적 외적으로 평화를 지켜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선언문 앞에 우리는 부끄러운 오늘날의 현실을 만나게 됩니다. 이 땅의 많은 어린이들은 인격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로부터의 아동학대와 폭력에 시달리고 있고, 과도한 입시 경쟁에 내몰려 받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릴적부터 공부에 대해, 배우는 것에 대해 지나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최근에는 부부갈등이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무고한 자식들이 희생을 당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회의 피해자로 고통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아동성폭행 같은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보호받아야 할 우리의 자녀가 이러한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가난과 기근과 전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하루에 수만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부분이 어린이들이라고 합니다. 테러와 전쟁의 현장에서 어린이들이 무참하게 죽고 있습니다. 마약과 무기 밀거래에 어린이들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는 국가, 종교, 민족간의 갈등과 분쟁은 어린이들의 안전과 인권을 짓밟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시는 예수님>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셨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살든 시절에는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서로 뺏고 빼앗는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성인남자만 수에 들어갔지 여자와 아이들은 아예 수에 쳐주지도 않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아이들은 무시당하고 착취를 당하는 시대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시대적 상황을 뒤엎는 파격적이고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3,4절) 오늘 본문은 제자들 사이에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하는 문제로 말다툼이 일어났을 때 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 사이에서는 지금 서로 예수님 옆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이런 상황도 모른 채 예수님 옆에서 자리 하나 차지 하려는 그들의 욕심을 넘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때 예수님이 따르고 있던 어린아이 하나를 그들 가운데 세우시더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천국에서 누가 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아예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에. 누가 크냐고 다투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제자들 앞에 세우시고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다른 말로 어린아이를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어린아이를 본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애들에게 배울 것이 뭐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어린아이를 인격체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라고 하지 않고 “어린 것”이 또는 “이놈”이 심지어 “애새끼”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소파 방정환 선생의 노력으로 어린이라고 불리워 졌습니다. 어린이는 “어리신 이”라는 존댓말입니다. 이분의 노력으로 1927년 5월 5일이 어린이 날로 재정되고 어린이 주일로 지켜지게 되었어요.. 우리는 이 어린아이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왜 어린아이로부터 배워야 하나요? 그 이유가 많이 있겠지만 저는 생각하기를 가장 큰 이유가 어른들은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문제의 근원은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어린이가 만들어낸 문제는 많지 않습니다. 만든다고 할 때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고 무시해도 될 문제들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만들어낸 문제는 심각한 것들이 많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문제를 보십시오. 다 어른들의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고 어른들이 만든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린이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어린아이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로, 어린아이의 겸손함을 배워야 합니다. 4절을 보시면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천국에서 높임을 받으려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 가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곳을 기념하여 주후 4세기에 세운 큰 예배당이 있습니다. 돌로 튼튼히 잘 지어진 그 안에 들어가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그려진 성화가 있고 강단 밑에는 예수님이 나신 곳이라며 대리석에 별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당의 특이한 점은 들어가는 문이 하나뿐이며 그것도 매우 낮고 작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낮고 작은 문을 통과하려면 일단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려면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후에도 대자연 앞에서 자신은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늘 강조했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아인슈타인에게 “선생님의 그 많은 학문과 전문적인 지식은 어디에서 나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실험기구인 비이커 안에 손가락을 넣고 물을 적신 뒤 한 방울의 물을 밖으로 떨어뜨리며 “나의 학문을 바다에 비유한다면 이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는다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는 겸손합니다. 부모가 없으면 큰일 납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압니다. 부모 앞에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아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으면 살 수 없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겸손하라’ 고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야고보서 4:6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성 어거스틴(Augustine)은 모든 성도들이 갖추어야할 신앙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Gide Andre) 도 말합니다. “겸손을 생활철학으로 삼으라. 겸손은 천국문을 여는 열쇠이고, 교만은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누가 천국에서 큰 자입니까?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가 바로 천국에서 큰 자요,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거짓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가 거짓말을 것은 세상이 그만큼 타락했다는 증거입니다. 특히 교회 다니는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순수합니다. 부모님이 교회를 안 나오셨어요. 주일학교 다니는 학생에게 부모님 무슨 일이 있니? 아이는 거짓말을 못합니다. 우리 엄마 아빠 오늘 아침에 싸우셨는데요... 따르릉 전화합니다. 엄마가 받기 싫은 전화가 오면.. 애들한테 “엄마 없다고 말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식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어떻게 말하는지 아세요. “저희 엄마가 없다고 말하라고 하시던데요” 어린아이는 모르고 거짓말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어른들처럼 알면서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사오정 시리즈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손오공과 사오정이 면접을 보러갔다. 사오정은 면접보는 것이 두려워 손오공이 먼저 면접을 보고 오면 따라하기로 했습니다. 손오공이 먼저 면접을 보러 들어갔다. 면접관 : 당신의 우상은 누구입니까? 손오공 : 옛날에는 차범근이였다가 지금은 박태환으로 바뀌었습니다. 면접관 : 산업 혁명이 일어난 때는 언제입니까? 손오공 : 18세기 영국입니다. 면접관 : UFO의 존재를 믿나요? 손오공 : 남들은 그렇다고 믿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저는 믿지 않습니다. 손오공 차례가 끝나고 사오정 차례가 되었다. 손오공은 사오정에게 답을 알려주었다. 사오정은 면접을 보러 들어갔다. 근데 면접관이 사오정을 보고 바보 같아서 쉬운 질문을 하기로 했다. 면접관 :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사오정 : 옛날에는 차범근이였다가 지금은 박태환으로 바뀌었습니다. 면접관 : 당신이 태어난 연도는 언제입니까? 사오정 : 18세기 영국입니다. 면접관 : (고개를 꺄우뚱하며) UFO의 존재를 믿나요? 사오정 : 남들은 그렇다고 믿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저는 믿지 않습니다. 좀 엉뚱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린아이는 이와 같아요. 가르쳐주는 데로 받아들입니다. 배운 대로 믿습니다. 순수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될수록 마음이 변질되고 더러워집니다. 복잡합니다. 거짓말을 합니다.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세상을 오래 살아온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보다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어린아이들을 전도하기가 쉽습니다. 복음은 순수하기 때문에 순수한 어린아이가 받아들이기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가 하기 힘들다면 어린 아이를 먼저 전도하십시오.. 그러면 그 아이로 인해 가정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실 어르신들은 험한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죄도 많이 범하게 되고 험한 일도 많이 겪다 보니 마음 밭이 단단하고 마음 문이 닫혀있어서 좀처럼 전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도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복음이 잘 들어가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받게 되면.. 어린아이와 같이 마음이 순수해져요.. 그래서 나중에는 얼마나 진실하고 겸손하게 변화되는지 몰라요... 어떤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 봤는데 그분들 중에 소위 세상에서 크게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살펴 보니... 한결 같이 어린 아이같은 순진한 모습이 발견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졸부들 있쟎아요.. 조금 성공한 것 가지고... 어깨에 힘을 주고 거드름을 피우며 마치 힘 깨나있는 사람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다 과거에 고생을 많이 했거나 남을 못살게 굴었던 좋지 않은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진 순수한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중요한 선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한 영혼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마 5:3,8)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어린이주일을 맞아 여러분의 영혼과 마음이 어린이의 순수함과 깨끗함을 배워 맑은 영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어린아이의 욕심 없음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단순성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양손에 무엇인가를 들려주면 만사 오케입니다. 그리고 배만 불러도 편안하게 잠을 잡니다. 한국에서 어린이 날이라고 저희 아들에게 선물을 보낸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성산이가 생일도 다가오고 해서 물어봤어요.. 성산에 고모가 선물을 해 준다는데 뭐가지고 싶니? 우주선... 어디서 어린이 프로를 봤는지 몰라도 우주선이 갖고 싶었는가 봐요... 제가 생각했어요.. ‘참 꿈도 커다’ 자손대대로 벌어도 못사는 우주선을 사달라니... 그런데 실제로 우주선이라고 하지만 우주선인가요? 장난감 우주선을 가지고 싶다는 거지요... 아이는 필요한 만큼 가지게 되면 절대 더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욕심이 있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지... 실제로 욕심이 있다고 볼 수 없어요.. 두 아들 녀석이 욕심을 부릴 때는 그렇게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난리를 피우지만.. 하루 자고 나면 끝납니다. 나중에 ‘욕심부리지 말고 나누는 것이 더 아름다운거야!!’라고 가르치면 나눠주는 것을 보게 되요.. 욕심이 있지만 나눌 때는 나누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른들은 안그래요.. 어른들은 아무리 가르쳐도 자기들 것만 압니다. 어린아이는 그렇지 않아요.. 가르치면 나누고 베풀 줄 알아요... 가르쳐 주면 나눕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도록 쓰임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어린아이입니다. 오천명이 모인 사람들 가운데 이 어린이만 도시락이 있었겠습니까? 물론 어른들이 더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자기의 욕심이나 체면 때문에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가진 도시락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그 어린아이의 헌신을 통해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경에는 욕심 때문에 화를 입은 인생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욕심을 부리다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없습니다. 아간이라는 사람은 아이성 전투에서 모든 전리품을 불태워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짜리 금덩이 하나를 훔쳤습니다. 그 결과 아간은 가족들과 함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엘리사의 제자인 게하시는 스승 몰래 나아만 장군에게 받은 은 두 단란트와 옷 두벌을 뇌물로 받아 챙겼다가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재산을 팔아 하나님께 헌금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욕심 때문에 일부를 감추었다가 베드로 사도에게 책망 받고 죽었습니다. 아마도 어른이 되면서 우리의 마음에 욕심의 자리가 커지는 모양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를 보시며 배우시기 바랍니다. 갓난아이는 엄마의 젖만 배불리 먹고 나면 세상 걱정 없이 엄마 품에 안겨서 평안히 단잠을 잡니다. 그런데 커가면서 배만 채워지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무언가 자꾸만 세상적인 것으로 더 채워지기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세상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에는 불안해서 어찌할 줄 몰라 합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심, 자녀에 대한 욕심, 쾌락의 대한 욕심 등등, 우리가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욕심들이 우리의 마음에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 욕심 때문에 불행한 거여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욕심이 있다고 다 가져지는 것도 아니고 채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불행만 초래할 뿐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갈5: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은혜의 가족 여러분,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마시고 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결론> 영국의 낭만파 시인 월리엄 워즈워드는 ‘무지개’라는 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습니다. 어른 된 우리는 자녀를 가르쳐야 하지만 또한 어린아이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어린이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귀엽고 사랑스런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생각과 삶을 강요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우리의 영적인 스승으로 모시는 마음으로 배워야 합니다. 어린이에게서 겸손함을 배우고, 어린이에게서 순수하고 깨끗함을 배우고, 어린이에게서 욕심을 버리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이에게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 어린이 주일 어린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아 날마다 주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의 은혜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