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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따라 돕는 은혜(4월10일 설교) 운영자 201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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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4:14-16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시골에 사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가난하여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꿈을 아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 진학의 길을 열어 주십시요>라는 간절한 내용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주소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봉에 [하나님께]라고 적었답니다. 그 편지는 우체국으로 갔습니다. 우체국에서도 하나님의 주소를 알 리가 없습니다. 우체부는 고민하던 끝에 그 소년이 살고 있는 고향에 있는 전남 해남읍 교회로 그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은 이 소년의 편지를 받아서 읽어 보고는 감동을 하여 그 아이에게 교회장학금을 주면서 진학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결국 이 소년은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스위스 바젤 대학에 가서 해외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교수가 되고 결국 대학원장까지 지내게 되신 오영석 박사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때를 따라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를 따라’라는 것은 그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서 그 나라와 교회와 그 사람에게 맞게 도움을 베푸신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여러 부분에서 어려운 여건 가운데 있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세계위에 우뚝 선 국가로 발전하고 있는 것도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여러분과 저가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받아 누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 속에 이 은혜가 항상 머물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16절 말씀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 먼저 우리는 이 은혜를 얻기 위해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시기 때문에 주님께 나아오는 자는 그 누구도 외면치 않고 다 응답해 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딤전 1:14절에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은혜를 쌓아 놓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만날 때에 다른 곳으로 달려가지 말고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유혹을 당할 때도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합니다.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이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야 합니다. 홀로 어찌할 수 없는 고민이 있을 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어느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달려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건국 대학교 교수인 류태영 박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머슴입니다. 8남매 중 여섯째 아들입니다. 너무 가난하여 형제들 가운데 초등학교에 다닌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만 겨우 초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을 하긴 했는데 돈이 없어 중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었답니다. 소꼴을 먹이고 토끼를 기르면서 살아야 할 자신의 인생이 애처로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에 나아갔습니다. 5학년 때 마을에 교회가 들어 왔답니다.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며 새벽기도를 하루도 안 빠지고 13년을 다녔다고 합니다. 새벽에 나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였답니다. 진학할 수 없었지만, 꿈을 가지고 서울에 올라와 구두닦이를 합니다. 잘 곳이 없습니다. 아무 곳에나 자다가 새벽 종소리가 울리면 새벽기도를 나갔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외국 유학에 대한 감동을 주었답니다.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보냈답니다. 한국의 농촌이 이렇게 어려운데 나는 한국 농촌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 지상에서 농촌이 제일 잘 되어 있는 덴마크에 가서 공부를 하게 해 달라고 편지를 썼답니다. 덴마크의 국왕이 감동을 받아 가지고 그에게 유학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돈 한푼 없이 유학을 했답니다. 비행기 값도 보내어 주었답니다.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농촌을 살리고 싶어 농업이 잘 발달된 이스라엘 가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다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동양인 최초로 이스라엘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 와서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농촌을 살리는데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때를 따라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처럼 때를 따라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나가야 할까요?

1) 두려워 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16).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대통령에게 나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장에게 회장에게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대 제사장들은 일년 한 번밖에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명령을 어기고 들어가면 죽습니다. 일년에 한 번 들어가는 것도 두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10:19,20절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만왕의 왕보다 크신 하나님께 담대히 달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니요?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의 시간도 바로 하나님께 담대히 달려 나온 여러분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여리고라는 지방을 지나가고 있을 때에 소경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소경 바디메오의 자세를 보면 얼마나 결연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는 예수님이 다니는 길목에 자리잡고 앉아서 예수께서 지나신다는 말이 들리자... 소리를 지르기 시작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옆에 섰던 사람들이 시끄러워 나무랍니다. ‘조용히 해라!! 예수님 목소리 안들린다...’ 그러자 이 소경은 더욱 소리내어 목놓아 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예수님을 꼭 만나야 겠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해 내 병이 꼭 나아야 하겠다.’ 이런 결연한 자세를 엿볼 수 있는 태도입니다. 주님은 이 바디메오의 믿음과 그의 태도를 보시고는 그의 병을 고치시고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 이 바디메오와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특권을 가진 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해도 은혜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은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냥 되는데로 신앙생활 합니다. 신앙성장에 대한 열망도 없습니다. 분명히 나에게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를 고쳐야 하겠다는 열망도 없습니다.

그런 자세로 살아가면 평생이 지나도 절대 나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바디메오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렇게 물으시면 “내 주님 제가 낫고 싶습니다.” “제가 보고 싶습니다”이런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이런 자세로 나아가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경이라도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손가락질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가까이 하시며 불러주시고 그의 아픔을 어루만지시며 치료해 주세요.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 죄많고 허물 많지만 다 고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진홍같이 붉은 죄라도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십니다. 긍휼을 받지 못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2)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계속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유스 코스타 한번 가서 은혜 받았다고 그것 몇주 동안 우려먹으려 하면 안됩니다. 그때부터는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이제부터는 QT도 하고요. 새벽기도도 하고요. 예배 때도 빠지지 않고 나오고요... 그래야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10년 전에 받은 은혜 우려먹으려고 하는 사람 있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평생을 누려도 천만분의 1도 경험하지 못하고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돕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성령을 부어주시는 하나님, 환상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꿈을 꾸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제가 지난 수요일에도 말씀드렸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의 기적을 경험하고 나서 하나님을 향해 찬양을 불렀는데 이 찬양이 비단 그때의 찬양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찬양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홍해의 기적과 똑같은 일이 오늘 일어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각자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은혜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태양은 매일 떠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알 것은 이 때를 따라 돕는 이 은혜가 시기에 꼭 맞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비가 필요할 때 비를 내리시는 은혜, 햇빛이 필요할 때 햇빛을 내리시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다 보면 이런 하나님의 손길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교역자 같은 경우 생활자체가 빠듯합니다. 저축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당혹스러울 때가 있어요. 어떤 때는 생활비가 다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어떤 성도를 감동케 하시어..생활에 필요한 것을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시기에 꼭 맞게 채우시는 은혜.... 이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는 과정물일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결과물이 생기지 않으면 그것이 은혜가 아닌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마7:9 이하에 보면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9-11)"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로 우리 눈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돌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그것은 돌이 아닙니다. 그것은 떡입니다. 돌처럼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심을 믿는다면 그것이 당장 돌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가장 맛있는 떡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항상 그러했습니다. 요셉이 자신 앞에 펼쳐진 인생이 진짜 억울한 삶이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고 결국 총리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립니다.

모세가 40년의 세월을 광야같은 곳에서 썩고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 시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하기 위한 훈련학교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이 시기는 과정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넘어지고 자빠지지 않도록..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계속적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꼭 필요할 때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신앙이 필요합니까? 14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아야>

앤소니 로빈스라는 사람이 자신의 책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성공지침서”에서 사람이 성공하려면 자기 통제를 잘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 통제를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스스로 자기 통제가 잘 안된다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게 어디 잘 됩니까? 놀음이 행복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병임을 알면서도 그것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른 손을 자르면 왼손으로 하고 손이 없으면 발로하다가 발도 자르면 입으로 한다’는 것이 노름입니다. 그만큼 자신을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앤소니 로빈스는 여기에 길을 제시하는데 자신을 강력하게 통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신념체계를 개발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가지 신념체계를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감정이고, 둘째는 건강, 셋째는 개인적, 사회적인 인간관계, 넷째는 재정입니다. 다섯째는 시간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사람이 의존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한 신념체계를 개발하게 되면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되고... 스스로 잘 통제할 수 있습니까?

감정. 건강, 인간관계, 돈, 시간... 내 힘으로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나요?

이런 것을 의존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머리 하나 스스로 못깍습니다.

 

생명이 자기 스스로에 의해 주어 진 것이 아니듯 근본적인 것은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 구원과 관련된 문제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믿음의 도리를 꼭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확실하게 붙들어야 할, 어떤 순간에도 놓치지 않고 꽉 붙들어야 할 믿음의 도리가 무엇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유일한 신념이요. 믿음의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14절上) 예수님은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대제사장 원래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간 대제사장은 아무리 깨끗하다고 해도 그 또한 죄인 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으로, 친히 자신을 드려 십자가 제물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충족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큰 대제사장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유일한 분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복음인지 몰라요.. 죄는 인간을 멸망시킵니다. 누구든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죄를 짓고 죄의식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나 꼭 붙들어야 할 것은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어요. 그러므로 그 어떤 죄인도 이 예수님께 나아오면 죄용서를 받습니다. 아멘~

 

2) (또 하나 우리가 붙들 믿음의 도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신다는 진리입니다. 14절하(下)~15절

“14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주님은 외롭게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부활 승천하시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보니..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 제사장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겪어 보았기 때문에 충분히 동정하실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죽음의 고통 앞에서 밤새워 고민하신 분이십니다. 가난의 고통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슬픔을 아시는 분이세요. 배신의 아픔을 아는 분이세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온갖 고통을 다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문제도 주님께 가지고 나가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충분히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실수, 우리의 고통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이런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할렐루야!! 363장...

1장만 부르겠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

 

<결론>

하나님은 때를 따라 우리를 도우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완전한 대제사장이요. 우리의 모든 죄짐을 짊어지시며 십자가를 지신 부활승천하신. 예수님.. 믿음의 도리이신 예수님의 손을 꼭 붙잡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달려나가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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