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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의 복 | 운영자 | 2011-01-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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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3:9 신년예배 설교 아브라함의 복
저는 아브라함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저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같지 않은데 어떻게 조상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성경에 의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합니다. 즉 아브라함은 척박한 불신의 세계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영육의 부자가 된 모든 신자의 조상입니다. 새해에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좀 많이 하려고 합니다. 제가 올 한해 저희 교회 표어로 무엇을 정할까 기도하면서 생각해 보다가.. 문뜩 주신 마음이 아브라함과 그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네게 복을 줄 것인데 너는 복의 근원이 되어라!! 그래서 올 한해 저희 교회 표어로 “복을 나누는 공동체~”라고 세워봤습니다. 복을 나누는 공동체.... 어때요? 참 좋은 표현이죠? 성도는 복을 받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을 누릴 줄 알고 복을 나눌 수 있을 때 진정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이 복을 나누려면 복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2011년 한해는 하나님께서 주신 큰 복을 많이 많이 받기를 축원드립니다. 아멘. 그래서 제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을 가장 먼저 여러분에게 전하려고 하는 거여요. 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있지만 또한 복의 조상이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그들의 조상 이야기 할 때 서두로 아브라함을 내세웁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복을 그들이 그렇게 연모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자 그렇다면 이 아브라함의 복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1. 아브라함의 복은 믿음과 함께 시작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이 어딘지 아시죠? 갈대아 우르(그림 보여주기) 이곳은 오늘날로 말하면 완전히 믿음의 불모지를 말합니다. 주변에는 하나님의 “하”자에 대해서도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는 온통 우상과 정령숭배, 자연신을 섬기는 그런 미신으로 만연된 곳이었어요. 심지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우상을 조각하여 많은 돈을 번 우상쟁이였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배경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이 교회에 나왔더라도 여러분 낙심치 마세요. 이 아브라함은 여러분보다 더한 환경이었어니까요? 저 또한 부모님, 큰집, 사촌 등등 주변에 신앙가진 배경에서 자란 사람이 아닙니다. 둘러봐도 믿음 좋은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면)그 가운데서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걸출한 인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7장 2절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아..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방식으로 아브라함에 나타나셨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타나실 때에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가신다. 사실 저 같은 경우.. 초등학교 시절 글없는 책이라는 전도지를 통해 하나님이 저를 찾아오셨다. 어떤 분은 성경말씀을 읽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면서 하나님이 그를 찾아주셨다는 자매도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교회 곁 개울에서 물고기 잡고 있는데 교회에서 울려퍼지는 찬양소리를 들으며 하나님께 나아온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사무실에서 인생이 괴로워 죽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를 만나주셨다는 분도 계신다. 혹은 오늘과 같은 이런 예배의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16)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는 복이 가장 큰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그 무엇을 다 준다 해도 예수 믿는 복과 바꿀 수 없습니다.
원래부터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6일 동안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만들었어요. 그리고는 그에게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려라고 하시며 복을 주셨어요. 그런데 그만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한 나머지 뱀의 꾐에 빠져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 죄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복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2000년 전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복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줄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이 하나님의 복을 다시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첫 번째 아브라함의 복은 믿음과 함께 시작되었다면 이제 두 번째 주어진 아브라함의 복은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영적인 이사’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 말씀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 네가 머문 이 땅은 나를 섬기기에 너무 척박한 땅이야!! 나는 너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 그러니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래서 아브라함이 떠나오게 된 곳이 바로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사실 고향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불확실한 미 개척지 가나안을 향해 온다는 것은 모험 중의 모험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그것은 정말 무모한 짓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런 무모한 모험을 하라고 하시는지 이해가 안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는 당대 최고의 문명의 도시요..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만들어 부자로 등극하여 얼마든지 호위호식하며 잘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 부럽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나를 믿으려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 거여요... 이해할 수 없죠... 가만히 있는 사람을 왜 떠나라고 하는지. 그냥 두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을 것인데...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보는 세상은 멸망받아 죽어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죄로 인해 망해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정복할 수 없어면 떠나야 합니다. 갈대아 우리는 이미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곳이기에 그가 그곳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새로운 곳으로 보내 새로운 나라를 이룰 계획을 가지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당시 환락의 도시였던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이 롯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의 한번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고생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벧후 2장 6절~8절) 의인이 그곳에서 믿음생활 하기에 너무 힘든 환경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떠나야 합니다. 만약 롯처럼 세상에 미련을 못 버리고 그곳에 계속 남아있게 되면 의로운 심령이 상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요.. 미국 그러면 여전히 지금도 세계의 중심축입니다. 그런데 이 미국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아시죠? 가장 근본적 원인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입니다. 영국의 메리가 통치하던 시점에 청교도들이 메리의 피의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건너와서 세운 것이 이 미국 아닙니까? 이 사람들이 세상과 타협하여 영국에서 산다면 얼마든지 당대 최고의 문명을 즐기며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한번 잘 섬겨 보겠다고... 가족 친척 정든 고향 땅을 버리고 무모한 모험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세계의 중심국가를 세우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맙니다. 여러분, 이처럼 믿음의 복은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듣고 제가 여러분에게 이곳을 떠나십시오.. 그렇게 말한다고 확대해석은 하지 마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다 떠나버리면 저는 짐싸야 합니다. 여기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간다는 것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머문 죄의 환경에서 과감히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근묵자흑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먹을 가까이 하면 자신도 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먹을 가까이 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죄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죄와 가까이 하고 죄를 짓는 환경에 머물게 되면 아무리 의인이라도 심령이 상하게 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협하게 되며 타락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은... 죄의 자리에서 과감히 떠날 때에 여러분에게 임하게 됩니다. 죄가 만연한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새해에는 이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3. 세 번째 아브라함의 복은 예배의 복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에 도착하여 한 일이 무엇인가요? 재단을 쌓았습니다. 구약성경에 재단을 쌓았다는 것은 제사드렸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오늘날 예배와 일치합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아브라함의 행적 속에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나오는 행위가 재단을 쌓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비교적 투명하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2:7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8절에도 “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13:4 “4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13:18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비중을 크게 두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예배는 너무너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약속의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 땅이 너무 생소하고 너무 낮썰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빼놓지 않은 것은 예배드리는 거였어요.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신 분이 무엇이 중요한지 잘 몰라서 방황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예배중심의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복이 통체로 여러분의 가정과 삶 속에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예배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시간과 마음 그리고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특별히 공식적인 예배를 빠지지 마시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예배를 사모하십시오... 말씀을 좀 몰라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중심입니다. 진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그 하나님의 복을 받고자 하느냐? 이 중심이 중요합니다.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다 알고 갇춰져서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면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데.. 그런 중심을 가지고 나아오는 자를 우리 하나님은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예배를 통해 복받는 은혜의 성도님 되시기 바랍니다. 제가 예배를 드릴 때 마음이 중요하다고 그랬는데... 여러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세를 보면 얼마나 마음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특별히 예배시간을 지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여러분이 동사장이나.. 바이어를 만나러 갈 때 어떻습니까? 미리 기다리죠..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도 최소한 30분정도 전에 가서 기다리는 것이 예의입니다. 호텔에 들어올 때보면 가끔씩 직원들이 입구에 대기해서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한눈에 좀 높으신 분이 오는가 보다!! 알 수 있어요.. 하물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 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가 준비없이 그분을 뵐 수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을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것... 이것이 성도가 복받는 비결입니다. 레위기 10:3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출20:7“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시29:2]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할렐루야!! 새해에는 예배의 승리자가 되어 복받기를 축원드립니다. 4. 실패 가운데서도 복은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인간이기 때문에 믿음생활 하면서 완벽할 수 없어요. 그도 실패하고 넘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언제였나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자 마자 그 땅에 흉년이 들은 거여요... 여러분, 우리가 겪어보지만 외국에 나와서 먹고사는 문제가 걸리게 되면 모든 것이 제로점입니다. 온갖 생각을 다 하게 되요.. 저도 돈이 없을 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다 납니다. 아마 아브라함도 그 땅에 먹을 것이 없어니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해낸 생각이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지금 이곳에는 먹을 것이 없지만 그래도 이 땅 가까운 애굽은 옛날부터 비옥한 땅이고 잘 사는 곳이니.. 그곳으로 가자!!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먹고 살기 힘든데 물불 가릴 것이 어디 있어요. 일단 살고 봐야죠!! 그래서 별 고민 없이 애굽으로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가면 자기를 위해 양식이 예비되어 있을 것이고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국 그 나라 왕과 신하들의 표적이 되고 부인이 급탈당할 뻔한 위험을 겪고 그곳에서 도망치듯 다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환란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지켜주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세상의 유혹에 빠져들어 갈 때도 있고, 실수로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도 그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빨리 그곳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주심에도 깨닫지 못하고 그곳에 머물게 되면 복은 물건너가고 맙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것은 그가 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도 넘어졌습니다. 실수하고 실패도 했습니다. 자기 한몸 살겠다고 권력 앞에 아부하고 아내를 누나라고 속이는 그런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것 보면 아브라함의 인간미를 볼 수 있쟎아요. 저는 아브라함의 이런 인간적인 부분이 공감이 많이 가요. 그런데 이런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승리하는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살지마!! 그를 때 그는 털고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비결이었습니다. 저는 은혜의 교회 모든 지체들이 이런 은혜로 한해를 사시길 축원합니다. 비록 실수하고 실패하고 넘어질지라도 하나님이 붙들어 세우실 때 털고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5.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의 복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온전한 순종을 통해 더 큰 복으로 나아가라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하나님께 크게 결단해야 할 날이 몇 번 닥쳐 옵니다. 그것을 TEST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TEST를 잘 통과하면 엄청난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그러했고,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 가운데 가장 큰 시험이라고 한다면 바로 하나님께서 그가 100세 때 허락하신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었어요.. 여러분이라면 만약 늦둥이 아들을 내게 바치라 그러면 어떡하겠어요... 내가 이 아들을 어떻게 낳은 자식인데... “하나님을 차라리 안 믿고 말지.. 어떻게 금쪽같은 새끼를 바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두말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반응합니다. 창22: 2,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위대한 결단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리고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그렇게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낳은 이삭이 자신이 잘나서 얻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100세 때 아들을 얻었지만 당시 아브라함과 사라는 씨가 말라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실제로 아들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기르면서도 “이 아이는 내 힘으로 얻은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아이야!!” 이런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인간인데 왜 부정이라는 것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이 아들을 바치라고 하시니 기꺼이 순종하면서 생각합니다. “나에게 100살 때 아들을 주셨다면 아들을 바치라고 할 때도 하나님이 계획이 있으시겠지.. 그냥 바치라고 하시겠어..” “이 아들을 데리고 가시면 더 좋은 아들을 주시겠지.. 하나님은 불가능도 가능하게 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신데.... 그깟 못하겠어” 그러면서 아들을 진짜 바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심은 아들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려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TEST는 항상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믿음을 보십니다. 우리의 순종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큰 복을 주십니다. 창 22:15~18절 말씀을 보십시오.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24:1 “1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할렐루야!! 여러분, 올 한해 아브라함의 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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