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합촌을 다녀와서 | 김진일 | 2014-03-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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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안휘성 삼합촌을 다녀왔습니다. 작년 말부터 관심을 가지게 된 내륙을 향한 구제사역이 봉사활동으로는 처음으로 시작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촌의 도서관을 새롭게 단장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아침 6시 새벽기도를 마치고 봉사자들을 태우고 목적지로 바로 출발했습니다. 이른 새벽시간에 봉사자를 위해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해 주신 분도 계셨고, 간식을 준비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활동을 위해 필요한 물품을 미리 준비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남성도 4분, 여성도 3분 이렇게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미리 성도님들이 가져다 주신 물품들도 모두 싣고 갔습니다. 구제가정을 방문할 때 드릴 라면도 준비를 했습니다. 날씨도 참 좋았습니다. 이전에 두번씩이나 겨울에 갈 계획을 세웠지만 날씨 때문에 연기 된 것을 생각하면 참 감사했습니다. 촌장이 톨게이트까지 픽업을 하러 왔습니다. 촌장은 고향이 시골사람답게 소탈했습니다. 드디어 삼합촌에 도착했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을 했는데 오전에 작업을 하려는 계획이 좀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곳사람들이 이미 점심을 먹기 위해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인들은 귀한 손님이 오면 한 두시간 가량을 식사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갔을 때 그 정도 식사를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가지고 간 음식도 내어놓고 그들이 준비한 음식을 함께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활동에 들어갔는데 계획이 좀 수정이 되어.. 도서관에 페인트칠을 하는 시간에 저와 여성도님은 불우가정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촌장과 함께 네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전에 한번 돌아봤던 가정처럼 여전히 살아가는 환경은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있다면 촌에서 살아가는 많은 가정이 불우한 것 만큼 또한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부모를 모시고 살아가면서 자녀들 또한 편부 편모 밑에서 자라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향 사람이 아닌 외지인과 결혼을 하다보니, 살기가 힘들어지면 가정을 버리고 고향으로 가버린다고 합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살아가기 힘들다고 해도, 자라나는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는지 부모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정서적인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교회가 이런 가정에 조금의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정을 돌아보며 드린 기도가 이 땅에 사랑의 손길 뿐 아니라 복된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날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이 속히 돌아오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돌아와 보니 페인트칠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괞찮은 페인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금방 말라버려서 그런지 두 번 칠하는데도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함께 도와 일을 빨리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넓지 않은 공간에 페인트칠과 정리정돈을 하고 나니 새로운 공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방학 때에 주로 이용한다는 회의실도 단장하고 의자도 새로 배치해 주기로 즉석에서 결의를 했습니다.. 예상외로 늦게 시작한 작업이지만 효과적으로 역할 분담을 통해 일찍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봉사활돌을 하면서 오늘 이 일은 내륙을 향한 사역의 첫걸음이라는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이 일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 동네를 시작으로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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