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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여는 부르심 김진일 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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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11:10-30절 개역개정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창세기 1110~30(459 누가 주를 따라) 약속을 여는 부르심

 

지금 성경의 흐름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노아호수 심판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노아와 세아들 셈함야벳은 자손이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시날이라는 땅에 니므롯같은 용사가 생겨 백성들을 끌어모으고 바벨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이때까지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이 바벨탑은 단순히 사람이 흩흐짐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가 인간유토피아를 만드는 교만된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벌을 내리사 하나였던 언어를 혼잡케 해 버립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살지 못하고 흩흐지게 됩니다. 셈함야벳 혈통을 따라 각 지역으로 흩흐집니다. 물론 셈함야벳이 같은 언어였다고 말할 수 업습니다. 같은 혈통이라도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어떻든 셈은 오늘날 중동과 아시아 지역으로 함은 아프리타 지역으로 야벳은 유럽지방으로 흩흐져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은 이후 펼쳐가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구속사의 흐름을 살펴봅니다. 우리는 노아홍수 정도 일어났으면 사람들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살았겠지!! 이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각 지역으로 흩흐진 사람들은 거기서 문명을 이루며 급속히 신앙심을 상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셈의 후손이었던 아브라함을 통해 새로운 민족을 세우고자 계획을 하기에 이릅니다

오늘은 이 셈을 통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어져 오는 믿음의 족보에 대해 살펴봅니다.

이 족보의 특징을 보면 시대를 지나오면서 사람의 나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셈의 첫아들 아르박삭이 500살을 살았고, 그 아들 셀라는 400, 그아들 에벨은 403, 벨렉은 430, 르우는 209(벨렉과 르우 사이 나이가 갑자기 절반으로 줄어듦) , 스룩은 207, 나홀 200, 데라는 205, 아브라함은 175

 

그리고 이 족보의 기록은 셈의 후손 가운데 아브라함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몇 세에 누굴 낳고 몇 살까지 살았다~ ” 이것만 기록합니다. 마치 한 목적지를 향해 급하게 달려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면서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에 와서 26절에 “11: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지금까지 혈통을 이어가는 한 사람만 말하다가, 데라에 와서는 그가 낳은 세아들의 이름을 모두 언급합니다. 흐름이 좀 다릅니다. 여기서부터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게~ “데라가 부인이 한 명이 아니었을까요?” 70살에 세아들을 동시에 낳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아브람 나홀 하란이 썀상둥이 였을까요? 흐름상 70세부터 순차적으로 세아들이 태어난 것으로 보는게 일반적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이어 나오는 가족간의 결혼관계라든지 나이 계산이 그것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라가 205세에 죽는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가 75세라고 했기 때문에 아브람은 훨씬 나중에 데라가 130세쯤 되어 태어난 늦둥이였을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일은 일찍 젊어서도 할 수 있지마 나이 들어 늦깍이 때도 얼마든 할 수 있습니다. 소명만 있으면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이 핑계되지 말기 바랍니다.

 

셈의 족보 말하며 27절 보면 갑자기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그러면서 흐름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뭔가 한 사람을 말하고 싶은 것이지요. 그가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이 아브라함이 왜 중요하냐 하면 앞으로 펼쳐질 성경의 대 서사의 중심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을 시작하셨고 성경의 역사는 곧 이 이스라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27절 말씀입니다. “11: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여기서 아브람이 마치 장자인 것처럼 나오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아브라함은 한 참 후에 데라가 130세 되어서야 태어납니다. 그런데 먼저 언급된 것은 아브라함의 중요성 때문에 가장 먼저 언급된 것입니다. 그가 노아의 새로운 인류를 이어받아 새로운 믿음의 조상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70세에 먼저 태어난 사람은 나홀이나 하란이었을 것입니다.

 

28절 이어서 봅시다. 11: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 이 표현을 보아 하란이 먼저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가 데라가 70세에 태어났지만 데라가 하란으로 떠나기 전 195세 되기 전에 일찍 죽은 것입니다. 슬픈 가정사이지요!! 집안에서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게 되면 부모로써는 한이 됩니다. “내가 잘 못 키워서 그런가? 내가 부덕해서 그런가이런 생각을 하며 두고두고 한이 되어 남아 있어요.

11: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 데라의 세아들이 나중에 다 장가듭니다. 아브라함은 사래라는 여인과 결혼하고, 나홀도 결혼을 하는데 죽은 하란의 딸 밀가와 결혼합니다. 그러니까 하란이 자식을 낳았는데 딸은 밀가이고 아들은 이스가입니다. 그리고 이 딸 밀가는 작은 아버지였던 나홀과 결혼을 한 겁니다. 요즘 관점으로 보면 뭐 이런 가족이 있어~ 근친이 어떻게 결혼해!!” 이런 생각하지만 당대는 이런 부분이 일시적으로 허용이 되는 문화였습니다. 족장시대는 아브라함도 여종하갈이 있었고, 야곱도 두부인과 두첩이 있었습니다.. 일시적인 문화였어요. 이런 문화는 문화로 받아들여야지 이상한 잣대로 들이되면 성경을 잘 못 해석 할 수 있습니다.

11: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아브라함이 결혼을 몇 살에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에게도 풀지 못한 이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의 데라 가족의 삶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습니다. 우리가 짧은 본문으로 그들의 스토리텔링을 듣지만 ~행복한 가정이다!! 복이 넘치는 가정이다!!” 이런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왠지 뭔가 한군데 막혀 있는 것 같고, 하는 일들도 잘 안되는 그런 느낌입니다.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 믿고 그 명령을 따르기로 작정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집사 설교를 보면 “7: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지금의 갈데아 우르)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7: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7: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먼저 나타나사.. 그가 머문 땅을 떠나라 하십니다. 우상섬기는 땅, 소망이 없는 땅, 하나님 모르는 백성들이 거하는 땅 영적으로 눌림이 있는 그 땅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 주체가 아브라함이 아닌 데라가 갈데아 우르를 떠난 것으로 묘사합니다.

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11: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 저는 이 표현이 이해가 됩니다. 지금 족보를 말하는 시점에 데라는 언급함으로 예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데라도 아브람과 함께 갈데아우르는 떠난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정황을 보면 이랬을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꿈과 소명을 주셨습니다. 2) 그리고 아브라함은 아버지와 가족을 설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 그리고 아내 사래만 따라 나서기로 결단합니다.

사실 한 사람이 오래동안 머문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소명을 받았기 때문에 이 결단을 과감히 했지만 아비 데라도 함께 떠났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 그 결단에는 그의 아픈 가정사가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고자 했던 이 결단은 참 위대하고 놀라운 결단입니다.

추측키로 이 데라도 예수님 믿고 나중에 하란에서 열심히 성경공부도 하고 하나님 섬기며 살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유추할 수 있느냐 하면 잘 보세요!! 나중에 아브라함에게서 이삭과 야곱이 태어나쟎아요. 그런데 이들과 계속 연결되는게 하란에 있는 가족공동체였어요. *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가나안 족속이 아닌 믿음의 자손에서 취하고 싶어 보낸 곳이 어니냐 하면 나홀의 성입니다. 이 나홀의 성이 바로 하란입니다. 이 나홀이 누굽니까? 데라의 아들이쟎아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형인 나홀도 나중에 아버지 따라 하란으로 건너온 거예요. 거기서 신앙교육하면서 믿음의 씨를 심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나중에 야곱도 집을 떠나 머문 곳이 바로 이 나홀의 손자 라반의 집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흐름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이 믿음의 씨는 아브라함에게서 시작이 되었지만 데라의 결단력도 높이 싸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는 원래 우상쟁이였어요!! 하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만나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다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환경을 떠나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믿음의 노마드~ 유목민의 걸음이 그가 믿음의 조상의 아비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다 보면 이 가정을 잘 지켜나가는게 쉽지 않다. 살다보면 슬프고 아픈 일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은 믿음의 끈이다. 이 믿음을 끝까지 붙들면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은혜있기를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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