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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덮음과 드러냄, 복과 저주의 길 | 김진일 | 2026-0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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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성경본문] 창세기9:18-29절 개역개정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창세기 9장 18절~29절 (384 나의 갈길 다가도록) 덮음과 드러냄, 복과 저주의 길
오늘은 홍수심판 이후 일어난 한 사건입니다. 노아 포도주 사건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 가족은 먹고 살아야 했기에 일을 했습니다. 20절 보니 노아가 농사를 시작했는데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홍수 이후 황량한 땅을 개량해서 포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21절에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당시 배경은 이렇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뭘하다 망설이다. 포도농사를 지었습니다. 씨를 뿌리고 싹이 나고 나무가 되어 포도열매자 맺히기 시작합니다.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자 먹기도 하고 보관하기도 합니다. 요즘 같으면 냉장보관도 하겠지만 당대는 그냥 열매를 따서 발효를 시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발효된 포도는 자연스레 포도주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노아는 이 포도주를 마셨을 것입니다. 한잔 두잔 마시다 보니 나도 모르게 포도주에 취해버렸어요. 취하게 되면 몸에 열이났을 것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신을 잃고 장막 안에서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잠이 들게 된 것이지요. 이는 노아가 의도했다기 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두고 세아들이 각각 다르게 반응을 합니다. 이 세아들의 반응은 장차 앞으로 그 후손의 운명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 됩니다. 먼저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 장막으로 들어갑니다. 그의 행동을 보세요. 22절입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짧은 한 구절이지만 함의 이 행위가 그와 그 후손에게 치명적인 저주가 되고 맙니다. 일단 함은 아버지를 대하는 자세가 매우 불경합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인류를 보존하시고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을 낳은 부모를 하나님을 섬기듯 존경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함은 그러지 못했어요.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것은 그분의 모습이 어떠하든 존재 자체를 존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행위가 좀 부족하고 연약하더라도 그것으로 판단하면 안됩니다. 부모라고 완벽할 수 없어요.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을 범할 수도 있어요. 인간인데 왜 그런 모습이 없겠습니까? 우리가 부모를 존경한다고 할 때 부모의 실수와 잘못 그것을 존경하라는게 아니에요. 그것을 본받아라는 말도 아니에요. 그런 모습은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지요. 하지만 그러한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부모이기 때문에 그 존재를 공경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가장 기본적 도리입니다. 일반적인 말로 효도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불구로 제대로 걷지 못해도, 알콜중독에 빠져있어도. 성격이 모나고 부족해도.. 나에게 큰 데미지를 입힌 아픈 경험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기 때문에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존경할 줄 아는 것.. 이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함은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존경의 마음 공경의 마음이 없었어요. 이건 천륜이기 때문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가지고 있어야 할 마음입니다. 그런데 함은 그 마음가짐이 되어있지 못하다 보니 아버지의 치부를 보자.. 그것을 다 까발려버린 것입니다. 그가 가장 먼저 이 장면을 발견하고는 어떻게 합니까? 밖으로 나가 샘과 야벳 두 형에게 고자질을 해댑니다. <셈과 야벳의 자세> 하지만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함이 아버지의 그 치부를 고자질하는 이야기를 듣자.. 이 둘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23절이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아마 셈이 주도적으로 그렇게 하자고 한 것 같아요. 이 둘은 함을 말을 듣고는 아버지의 치부를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옷을 가져다가 어개에 메고는 뒷걸음쳐 장막에 들어가서는 아버지의 하체를 살포시 덮어드립니다. 일부러라도 아비의 치부를 보지 않으려 한 거예요. 이 자세가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부모를 대하는 기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노아시대 횡횡한 성적인 방종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었던 모든 사람이 그러한 삶에 물들어있었어요. 아마 노아의 세아들도 동시대 사람이었으니 그런 문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함의 태도를 보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방탕한 문화와 완전 단절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치부도 너무 쉽고 가볍게 생각한 것입니다. 반면 셈과 야벳은 그런 문화와 단절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기 때문에 행동에서 절재와 거룩이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는 교훈도 바로 그러해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접하는 세상의 문화가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 맞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담대히 행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단호히 NO하는 용기도 필요한 것입니다. <노아의 축복과 저주> 나중에 노아는 술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이 세아들이 한 행위를 듣고는 각자에게 축복과 저주를 선포합니다. 자식이 좀 잘못했다고 아비로써 저주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노아시대 특히 홍수이후 새로운 인류를 시작해야 할 그 시점에는 노아와 자식들의 행동하나하나가 후대의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노아가 한 말한마디가 곧 기준이요 역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노아는 세아들의 행위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기준을 선포한 것입니다. 함의 행위는 저주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25절 말씀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절에도 가나안이 셈의 종이 되고~ 27절에도 가나안은 그(야벳)의 종이 된다. 물론 함의 죄가 아들 가나안의 저주로 이어지고 이 가나안이 장차 형성하게 될 가나안문화의 주범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함이 아닌 가나안 이름을 이렇게 주도적으로 말하는 것은 문맥상 좀 맞지 않는 거 같아요. 여기 이 이야기에서 가나안을 주도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가나안이 세속문화의 주범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함이 지금 이런 자세를 가지게 된 것도 아들 가나안의 영향이 미친 것입니다. 가나안은 홍수 이후에 태어난 아들이지만 거룩한 자녀로 살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거예요!! 자식교육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예수 잘 믿는게 아니에요.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이 가나안을 향한 저주는 뭡니까?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 원한다” 종들의 종이 된다는 것은 자자손손 종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노예생활을 할 것임을 예언한 겁니다. 이 저주는 이어 나오는 셈과 야벳을 향한 축복과 연결되는데요. 9: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9: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샘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적인 장자 혈통으로 쓰임받게 될 것이며, 야벳은 창대하여 문명을 꽃피우는 혈통으로 쓰임받을 것인데 그들은 셈의 장막에 거할 때 참된 복을 누릴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렇게 노아의 축복과 저주로 시작된 신인류는 함의 후손이 흑인혈통으로 아프리카에 거주하고, 셈의후손은 황인 혈통으로 중동과 아시아에 거하고 야벳후손은 백인으로 유럽에 거주하며 번성해갔습니다. 지금까지 노아의 이 예언은 현재진행형에 있습니다. 이 세아들의 모습을 보며 오늘 누군가의 실수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한번 생각해 보며 기도하기 바랍니다.
1. 상대를 깊히 이해하는 인생이 되라!! 아비 노아가 왜 포도주를 그렇게 정신없이 마시며 취했을까? 그리고 치부까지 드러내었을까? 자식이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함부러 그 치부를 들추고 손가락질 하지 않았을 거예요.. 누군가의 아픔을 볼 때 함부러 판단하려 하지 맙시다. 먼저 상대방의 아픔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2. 들추는 인생이 아닌 덮어주는 인생이 되라!! 그리고 누군가의 아픔을 보았다면 치부를 보았다면 그것을 들추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함이 아비의 치부를 들춰내듯이, 교회 어떤 사람은 목사의 치부를 보고 여기저기 다니며 까발리고 들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대 옳지 못합니다. 목사 뿐 아니에요. 모든 다른 사람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추는 것은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지 해결하지 못해요.. 하나님은 예수보혈로 우리 치부를 덮어주는 분이십니다. 셈과 야벳이 그랬어요. 오늘 우리도 이런 사람으로 쓰임받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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