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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한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법 | 김진일 | 2026-0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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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성경본문] 창세기6:8-9절 개역개정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세기 6장 8절~9절 악한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법 <성경전체의 구성> 성경은 전체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 이 성경전체 내용을 세단어로 요약하라고 말하면 창조, 타락, 구속(구원)입니다. 창조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창세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고 우리 인간도 만드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신앙은 창세기 1장 1절을 믿음으로 고백하는데서 시작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나는 이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가 우리의 신앙은 거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창조의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따라 당신의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고 만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창조된 인간이 결국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유일한 규율인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죄가 이 땅에 들어오고, 죄와 더불어 사망이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 지은 인간을 그냥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의 제2위이신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는 구원입니다. 이 예수님은 장차 수 천년 뒤에 때가 되면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시겠지만 예수님으로 구원을 이루실 것이라는 많은 예표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아담과 하와가 죄지어 부끄러워 할 때에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그들을 유혹한 뱀을 향해 그 후손이 여인의 후손에게 며리가 상할 것이라는 말씀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인류의 타락 이후의 모든 인류의 역사가 죄로 인한 심판과 구원의 역사의 반복임을 볼 수 있습니다. < 타락 구속의 요약판 – 노아홍수 이야기 > 오늘 노아 이야기도 2개의 테마로 이뤄집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노아시대 하나님이 심판하실 수 밖에 없는 배경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구원입니다. 그런 가운데 노아를 통해 이루시는 구원을 살펴볼 것입니다. 먼저 노아시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지구상에 많은 심판이 있어 왔어요. 전쟁으로 인한 심판, 전염병으로 인한 심판 혹은 자연재해로 인한 심판 이런 심판들이 있어왔지만 대부분 한 나라나 특정 지역에 국한 된 것이었지 온 세상을 향한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땅의 모든 생명을 향한 심판은 노아홍수사건이 유일무이합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왜 중요하냐 하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종말의 때가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24: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 그러기 때문에 노아 이야기를 잘 살피며 우리의 시대도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면 노아시대 모든 생명이 다 죽는 홍수 심판이 왜 내려졌을까요? 이유가 있겠지요? 하나님이 아무 이유없이 심판을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지어도 참고 또 참으시다가.. 도저히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 될 때.. 결국 심판을 내리는 거예요. < 하나님의 아들들의 타락 > 그러면 세상이 어느 정도 길레 하나님이 온 인류를 홍수심판으로 완전히 파괴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신 것일까요? 이는 마지막 시대의 우리가 마주할 세상이기도 합니다. 2절 말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이는 성적인 타락이에요. 이는 심판 때 나타나는 대표적 특징이에요. 마귀는 인간을 성적으로 타락시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믿음의 후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딸들’은 불신자의 자손 가인의 자손을 말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 속한 여인들의 아름다운 외모에 빠져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을 아내로 맞았다는 거예요. 이것은 단순히 예쁜 여인과 결혼한 것이 아니에요. 믿음이고 신앙이고 다 팽개치고 자기 눈에 예쁘다고 생각되는 여인이면 전부 앞 다투어 취하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는 거예요!! 이것은 사회건 교회건 다 똑같습니다. 예쁘고 잘 꾸미고 오면 눈길을 주고, 관심을 가져주니까 너도나도 전부 예뻐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외모지상주의입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런 말이 있쟎아요. 10대가 꾸미면 꽃단장이고, 20대가 꾸미면 화장이고, 30대가 꾸미면 분장이고, 40대가 꾸미면 변장이고, 50대가 꾸미면 위장이고, 60대가 꾸미면 포장이고, 70대가 꾸미면 환장이고 80대가 꾸미면 끝장이다. 미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어요. 특별히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것은 결혼관계가 완전 무너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귀는 심판의 시대에 가정을 무너트립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한 남자가 한 여인과 만나 가정을 이루도록 정해놓으셨어요. 그런데 노아시대 가정의 이 기준은 완전히 깨져버렸어요.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만났다 헤어질 수도 있고 second, third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러분 가정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종말의 시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짝지어주신 남편 부인에게 잘하기 바랍니다.
< 영이 함께 하지 않음 > 결국 구별되어야 할 하나님의 자녀가 그렇게 살지 못하자 3절에 뭐라 말합니까?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선언이에요. 우리가 비록 육적인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죄책감을 느끼기기도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을 거둬 가버리시면 이런 영적감수성도 양심도 무뎌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르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져 버려요. 성경에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아시죠? 그에게서 하나님이 성령을 거둬 가버리셨어요.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통제가 안되는 악마같은 인간이 되쟎아요.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성령을 거둬가지는 않으세요!! 하지만 죄를 지어도 돌이킬 수 있을 때 돌이켜야지 반복적인 죄가운데 노출되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내버려 두십니다. 그러면 죄를 지어도 죄인 줄 모르고 계속 거기에 빠져들고 결국 심판에 이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 아무쪼록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기 바란다. 감동하실 때 깨우치실 때가 복된 시간임을 믿고 속히 돌이키기 바란다. -> 학생들도 뭘 하다가 성령님이 거기서 멈춰~~ 그러면 멈춰야 해요. 우리도 세상에서 가지 말아야 할 길에 빠질 때 성령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생각하면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결국 이렇게 성령을 거둬가 버린 인생에게 거인들이 태어납니다. 4절을 보면 노아시대 네피림이 있었다고 하는데 하나님 아들과 사람의 딸들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 용사들인데 명성 있는 사람이었다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힘을 가진 거인들을 말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성령이 떠난 육적 욕망에 사로잡힌 인생이 힘과 권력까지 거머쥐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온 세상을 자기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만들겠지요. 그러면 따르는 다른 사람들도 다 따라할 것입니다. <마음과 계획이 항상 악함 – 하나님의 한탄 그리고 심판 >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할 그들이 타락하여 육적인 사람이 되어 버릴 때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됩니다. 5절 보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도 항상 악합니다. 이미 세상은 죄로 가득차 있는데 사람의 마음조차 전부 악한 것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 그 시대의 상태를 보려면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보면 됩니다. 오늘 저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면 그래도 바르게 살아야겠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인생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 바랍니다. 아직 여전히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는 숨쉬는 모든 순간 모든 생각도 계획도 전부 나쁜 생각 뿐인거예요. 그래서 이런 세상을 보며 하나님은 세상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십니다. 실수 없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을 지으시며 큰 기대를 가지셨는데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 인생을 보며 아파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고쳐 쓸 수 없기에 쓸어버리려 작정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홍수심판을 내리기로 작정하신 것이지요. < 노아를 통해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 > 그런데 이런 심판의 와중에도 하나님이 비추시는 구원의 빛이 있었어요. 그가 바로 노아입니다. 모든 사람이 타락의 길을 걸어갈 때 노아만은 다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노아를 통해 방주를 짓게 하셨고 인류를 다시 새롭게 시작하십니다. 그러면 이 노아는 어떤 길을 걸어갔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어떤 길입니까? 2가지만 말씀드리려 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인생 > 첫 번째로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다른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은 육체적 쾌락을 쫓아 살았아요. 그러다 보니 성령이 떠나가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도 임하지 않습니다. 이게 치명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겁니다. 하지만 노아에게는 여호와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는 성령을 붙들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는 육체의 쾌락을 쫓아가지 않았어요.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가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게 됩니다. 저는 2026년 올 한해 우리 모두에게 이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축원드립니다. (말씀 가운데, 예배가운데, 교제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게 되면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악해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을 구원할 도구가 될 수 있어요. # 요셉 보세요!! 그가 17세에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어요.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러 있으니 그는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환경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애굽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게 하십니다.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여기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는 이게 바로 은혜를 말합니다. 노예가 된 요셉이지만 이 은혜가 임하니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올 한해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이 은혜가 나에게 머물도록 하는 것입니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고,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식들 좋은 학교 보내는 것도 중요하고, 인생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 머무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은혜를 놓치지 마십시오. 은혜를 놓치면 모든 것을 다 놓치게 됩니다. 반면에 은혜를 붙들면 다 붙들게 됩니다. 그러면 이 은혜를 입기 위해 필요한게 뭘까요? 이게 핵심입니다. 노아가 온 인류의 홍수심판에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핵심입니다. 8절을 한번 더 보시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 표현에서 은혜를 입었다가 영어식 표현으로 But Noah found favor in the eyes of the LORD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긍휼을 발견했더라~이 말이다. 은혜를 입으려면 하나님의 마음속으로 생각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생각으로 가득하다면 은혜 충만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예수님이 우리 은혜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예수님이 우리 목사님 어떻게 생각하실까? 예수님이 우리 김집사 어떻게 생각하실까? 예수님이 나의신앙생활 어떻게 생각하실까? 예수님이 내 기도생활 어떻게 보실까?” 이처럼 주님 생각으로 충만하면 은혜충만한 거에요. 그러면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은혜로 충만한 것입니다. 2026년에는 이 은혜를 경험해 보는 복된 해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이 반전을 주목해 보기 바랍니다. 이전 분위기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이전세대의 모든 역사를 뒤로하고 노아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이 노아의 족보라~ 노아부터 새로 시작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은혜의 역사를 새로 시작하겠다는 거예요!!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은 예수 제대로 믿는 우리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이렇게 시작하는 노아에 대해 의인이요 당대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인이다는 것은 절대적 의가 아닙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어요.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상대적 의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연결되어 바른 삶을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당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의로운 행위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는 세상에, 바른 삶을 살고자 몸부림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적 목표, 세상적인 성공을 쫓아 살아갑니다. 그게 꼭 잘못되었다 말 할 수 없지만,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정신이 팔려 보다 본질적인 가치를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그게 전부다고 그게 최고입니다. 저희 조카가 작년에 결혼을 했어요. 교회는 다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는 것 같지 않아요. 전화하면 주말에 어디 놀러갈 계획이다. 뭐할 계획이다. 먹고 마시고 자기를 위해 즐겁게 보내는데 시간과 마음이 다 가있는 거예요. 요즘 젊은이들이 워라벨 그러면서 일하면 놀아야 한다!! 이런 생각이 많아요. 그래서 주말되면 공항이 북적됩니다. 물론 즐길 때는 즐겨야지요. 그런데 이런 세상 즐거움에 빠져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건 잘못된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해 가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인으로 완전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희생과 헌신을 각오해야 합니다. 시간의 희생없이 예배에 목숨걸 수 없고, 말씀과 기도생활 할 수 없어요. 헌신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거에요. 오늘날 같은 세상에 이런 희생없이 하나님을 잘 믿기란 어려운 거예요. 특별히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하는데 이 동행은 앞에서 나온 에녹의 삶과도 같은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바랍니다. 요즘 유투브가 일상이 되어 있는데 유투브랑 동행하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차를 타도 유투브, 지하철을 유투브, 길을 가도 유투브 온 세상이 매일 쏟아지는 영상에 중독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좋은 영상도 있지만 우리 뇌를 병들게 하는 요소들도 많아요.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시기 바래요. 그게 내 영이 사는 길입니다. 새벽 첫 시간부터 주님과 동행을 한번 결단해 보십시오. 잠을 깨면 가장 먼저 뭘 합니까? 대부분 폰에 손이 가게 되어 있지요. 잠시만이라도 폰을 곁에 두고 주님의 이름을 불러봅시다. 오늘 노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모인 우리 모두에게 임하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 의로운 삶을 위해 몸부림치며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한 주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노아로 인해 구원의 방주를 짓게 하셨듯... 부족한 나도 구원의 도구로 쓰임받는 복된 은혜 함께하길 축원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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